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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그 위대한 스승 1. 공자의 역사적 이해 생몰연대는 BC 551 ~ 479년 서주(西周)의 제후국인 노나라 무관 숙량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다. 그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키는 구척 장신에 머리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언덕(丘) 형태로 되어있다. 후대 역사가들의 고증에 의해 공자의 초상화를 보면 미남이 아니라 우락부락하고 때로는 추남의 형태로 그려지고 있다. 공자는 유학의 시조이자 춘추시대 위대한 정치가 교육자 그리고 사상가이다. 당시에는 상갓집 개(喪家之狗)라는 오명(汚名)과 춘추의 여러 나라들이 패권을 다투는 전국상황에서 따르기 힘든 이상정치를 실현하려 애쓴 고독한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상은 정치적으로 요 순 우 삼황오제의 이상적 정치와 노나라의 시조인 주공 단(旦..
공명_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음 功名(공명)_天時(천시) 人心(인심) 技能(기능) 勢位(세위) 明君之所以立功成名者四(명군지소이립공성명자사):一曰天時(일왈천시),二曰人心(이왈인심),三曰技能(삼왈기능),四曰勢位(사왈세위)。非天時雖十堯不能冬生一穗(비천시수십요부능동생일수),逆人心雖賁(역인심수분)、育不能盡人力(육부능진인력)。故得天時則不務而自生(고득천시칙부무이자생),得人心則不趣而自勸(득인심칙부취이자권),因技能則不急而自疾(인기능칙부급이자질),得勢位則不進而名成(득세위칙부진이명성)。若水之流(약수지류),若船之浮(약선지부),守自然之道(수자연지도),行毋窮之令(행무궁지령),故曰明主(고왈명주)。 현명한 군주가 공을 이루고 명성을 얻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 첫째가 천시 둘째가 인심 셋째가 기술과 능력 넷째가 세위(권세와 지위)이다. 하늘의 시간이 맞추지 않으..
오월동주(吳越同舟)_그 같은 듯 다른 역사 1. 오나라와 오자서(伍子胥) 사마천 사기에서 세가의 첫 편명은 오태백 세가이고, 열전의 첫 편명은 백이열전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장남이면서 군주의 자리를 받지 않고 동생들에게 양보하였다. 태백은 고공단보의 장남으로 막내 계력의 아들이 뛰어남을 알고 스스로 제위를 계력에게 넘겨주어 계력의 아들이 후에 주나라 시조인 주 문왕이 된다. 백이도 고죽국의 맏이로 아버지 묵태조가 막내 숙제에게 자리를 물려주려는 뜻이 있음을 알고 막내에게 양위하려 하였다. 막네 숙제도 마찬가지로 군주의 자리에 뜻이 없어 둘다 국외로 떠나자 대신들은 하는 수 없이 둘째 아들 아빙을 군주로 세우게 된다. 오태백 세가에는 연릉 공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합려의 숙부 일대기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싣고 있다. 계찰도 마찬가지로 군주의 자..
춘추오패_진목공 1. 서쪽의 패주 진목공 성은 영(嬴)이고, 씨(氏)는 조(赵), 이름은 임호(任好)로 진목공(秦缪公)으로 일컬어진다. 진나라가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는 비교적 늦다. 주평왕(재위 BC 770~720)이 서융과 신후의 공격을 받고 서주가 망하여 낙읍으로 수도를 옮길 때 이때 진양공이 군사를 일으켜 서융을 막고 주평왕을 낙읍으로 호송하여 그 공을 치하하며 제후의 반열로 올려준 것이다. 초기 진나라는 서쪽 서융과 같은 변경에 위치하여 오히려 서융(西戎)에 가까운 후진국이었다. 진 목공의 계보를 살펴보면 춘추(春秋)시대 진(秦)나라의 군주(君主)로 진덕공(秦德公)의 작은 아들이자 진선공(秦宣公), 진성공(秦成公)의 아우이다. BC 659년부터 BC 621년까지 재위에 있으면서 백리혜(百里奚), 건숙(蹇叔), 유..
27. 용인_법칙 없이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법칙 없이는 다스려지지 않는다 聞古之善用人者(문고지선용인자),必循天順人而明賞罰(필순천순인이명상벌)。循天則用力寡而功立(순천칙용력과이공립),順人則刑罰省而令行(순인칙형벌성이령행),明賞罰則伯夷(명상벌칙백이)、盜跖不亂(도척부란)。如此(여차),則白黑分矣(칙백흑분의)。治國之臣(치국지신),效功於國以履位(효공어국이리위),見能於官以受職(견능어관이수직),盡力於權衡以任事(진력어권형이임사)。人臣皆宜其能(인신개의기능),勝其官(승기관),輕其任(경기임),而莫懷餘力於心(이막회여력어심),莫負兼官之責於君(막부겸관지책어군)。故內無伏怨之亂(고내무복원지란),外無馬服之患(외무마복지환)。明君使事不相干(명군사사부상간),故莫訟(고막송);使士不兼官(사사부겸관),故技長(고기장),使人不同功(사인부동공),故莫爭(고막쟁)。爭訟止(쟁송지),技長立(기장립),則彊..
오패중 단연 으뜸 초장왕(楚莊王) *본편은 춘추좌전 초장왕의 일부를 편집하여 올립니다. 중복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초장왕은 개인적으로 그리고 요즘말로 간지나고 인싸의 표현이 딱 들어 맞는 군주이다. 불비불명, 문정경중, 절영지연등 군주로서 가져야되는 자질이 잘 표현된 고사들이다. 춘추좌전 기록에 의하면 초장왕은 노 선공 14년 (기원전 613)에 왕이 되었다. 초나라의 제22대 군주(재위: 기원전 613 ~ 기원전 591)이다. 이름은 려(侶)이다. 초성왕의 손자이자 목왕의 아들이며, 공왕의 아버지이다. 목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공자 섭(攝)이 모반을 일으켜 초장왕은 잡혀 갖히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나 초나라 내에 공자 섭의 반대 세력에 의해 섭공자가 축출되고 장왕은 구출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사기 초세가에는 풀려..
26. 守國之道_나라를 지키는 길 법이 공정하면 상하가 일치된다 聖王之立法也(성왕지립법야),其賞足以勸善(기상족이권선),其威足以勝暴(기위족이승폭),其備足以必完法(기비족이필완법)。治世之臣(치세지신),功多者位尊(공다자위존),力極者賞厚(력극자상후),情盡者名立(정진자명립)。善之生如春(선지생여춘),惡之死如秋(악지사여추),故民勸極力而樂盡情(고민권극력이악진정),此之謂上下相得(차지위상하상득)。上下相得(상하상득),故能使用力者自極於權衡(고능사용력자자극어권형),而務至於任鄙(이무지어임비);戰士出死(전사출사),而願為賁(이원위분)、育(육);守道者皆懷金石之心(수도자개회김석지심),以死子胥之節(이사자서지절)。用力者為任鄙(용력자위임비),戰如賁(전여분)、育(육),中為金石(중위김석),則君人者高枕而守己完矣(칙군인자고침이수기완의)。 성왕의 법을 만들어 세움에 그 상은 선행을 권..
진(晉) 제국의 興亡盛衰 1. 진(晉) 제국의 잔혹사 진(晉, 기원전 1042년 ~ 기원전 376년)은 주나라 무왕의 둘째 아들 당숙 우(唐叔虞)가 형인 주(周) 성왕에게 삼감의 난이 평정된 이후 그 땅을 받아 세운 나라이다. 숙우의 아들 섭보(燮父)가 도읍을 진수(晉水) 가로 옮겨 진(晉)으로 개명하였다. 진제국의 위치는 그 당시 제나라 초나라 진(秦)보다 영토와 인구 측면에서 비등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왕실이 약화된 계기는 공족들간의 오랜 내전으로 인한 왕실 가계의 인구 증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순장(殉葬)제로 인한 폐단이 그를 모신 대신과 시종 가족들까지 함께 죽임을 당하는 결과로 왕권강화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숙우부터 9대 목후까지 특별한 역사적 기록은 없다. 그러나 목후 비왕이 죽고 동생 상숙이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