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리스트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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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定法
44 궤사(詭使)편에서 읽어낸 고독한 비판자의 아픔(孤憤)
孤憤(고분)과 公憤(공분) 공법(公法)이 바로 서야 사사로운 탐욕(私)이 발붙이지 못한다는 명제는, 단순히 고대 군주를 향한 조언을 넘어 모든 문명사회가 지탱해야 할 가장 엄정한 질서의 마지노선입니다. 텍스트의 글자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의 전체 맥락을 직시하려는 사유의 끝에서 마주한 현실이 분노를 지나 깊은 비애감으로 수렴되는 까닭은,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이 정책의 실패 이전에 '공(公)과 사(私)의 전도'라는 시스템의 구조적 파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론의 실종과 진영이라는 '사학(私學)'의 지배언론과 평론이 비판의 기능을 잃고 권력에 기대어 무오류의 교조주의나 권력 편향으로 흐르는 현상은, 한비자가 고발한 '사학성군(私學成群: 사사로운 학파가 붕당을 이루어 무리지음)'의 현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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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전
계문자(季文子), 삼환(三桓)의 등장
계문자(季文子), 삼환(三桓)의 등장 노나라의 역사는 기원전 1042년(백금) ~249년(노경공)까지 이어진다. 주나라 문왕의 아들 주공 단(旦)이 형인 무왕에게 받은 봉토를 그의 아들 백금(伯禽)에게 다스리게하던 주나라의 혈족 국가이다. 춘추의 기록은 노은공 즉위(BC722) 부터 노애공 27년(BC 468)까지의 기록이다. 그 왕조의 다스림 중 노나라 군주의 통치 권력이 작동한 시기는 노 문공 18년(BC 609 : 노은공이래 113년) 기록이고 그 나머지는 삼환(三桓:계손 맹손 숙손)의 대부가 정치권력을 잡은 시기이다. 이 삼환이 정권을 잡은 기간은 노 선공원년부터 애공 27년 141년이나 지속된다. 이에 노나라 정권이 삼환에게 넘어가게 된 결정적 계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노 문공에게 두명의 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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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
질투와 권력욕의 화신_여태후
여태후의 본병은 여치(呂雉)이다. 아버지 여공에 의해 패현에서 건달 노릇을 하던 유방에게 반강제로 결혼은 하였다. 당시 유방은 과부인 조 씨와 정을 통하여 훗날 제나라 왕이 되는 유비(劉肥)를 낳은 상태에서 여치를 본처로 맞아들인 것이다. 한고조 본기와 여태후 본기를 통해 그려지는 여태후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보면,평민의 여식으로 태어나 통일 한나라 황제의 황후로서 그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할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한왕으로 등극하는 시점부터 한고조와 부부로서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본인이 누렸어야 할 여자로서의 행복은 척부인과 박부인 그리고 여러 후궁들(諸姬)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다. 한고조와 여태후사이에 적장자 유영(劉盈)과 노원공주를 낳게 된다. 이 유영이 훗날 효혜제가 된다. 사마천이 후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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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주역 공부법 _ AI(제미나이)의 제안서
*. 태산준령 (泰山峻嶺)과도 같은 동양고전의 최고봉 주역공부를 어떻게하면 효율적인지 AI의 제안서 입니다. 주역공부를 하시는 분들을 위해 같이 공유해드립니다. 기본적으로 ctext.org의 원문을 보고 , 남회근선생님의 주역계사전을 참조하며 공부했습니다.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주역(周易)의 학술적 체계와 ctext.org 원문 기반 단계별 학습 방법론 주역의 기원과 다층적 텍스트 구조의 이해주역(周易)은 동아시아 지성사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자, 우주와 인간사의 변화 원리를 기호화한 고도의 상징 체계로 평가받는다. 본래 이 텍스트는 기원전 1000년에서 750년 사이의 서주(西周) 시대에 형성된 점복 매뉴얼인 '주역(周易)'에서 출발하였으나, 한대(漢代) 이후 유가의 오경(五經) 중 으뜸으로 자리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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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계사전 상8장_3000년을 관통하는 군자의 언행
1. 설계자와 해석가: 상(象)과 효(爻)의 탄생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추상화' 작업은 3,000년 전 문왕(文王)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함(賾)을 마주하며, 그 본질적인 구조를 상(象)이라는 기호로 고정했습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리얼리티(Reality)의 세계를 명료한 심볼(Symbol)의 체계로 번역해 낸 인류 최초의 정보 설계였습니다. 뒤이어 공자(孔子)는 이 정적인 지도 위에 효(爻)라는 시간(음양의 변화)의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공자는 변화라는 객관적인 사실(Fact) 속에 인간의 주체적 결단이라는 가치(Value)를 심었습니다. 문왕이 '세상은 무엇인가(Reality to Symbol)'를 그려냈다면, 공자는 그 지도 위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Fac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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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疑》 _ 2 측근을 주의하라
앞서 한비자가 "법과 술이라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론을 펼쳤다면, 이번 단락은 역사 속의 생생한 반면교사(인물)들을 제시하며 군주의 목을 조여오는 구체적인 '인간 위협'이 무엇인지를 고발하는 대목입니다. 1. 원문 배경 (Background)한비자가 보기에 나라가 망하는 원인은 강력한 적국의 침략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원인은 군주의 가장 가까운 거리(대궐 안, 침실 옆)에서 군주의 마음을 조종하는 '간신들'이었습니다.앞 단락에서 "인의(도덕)를 부르짖는 자들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경고한 한비자는, 이번 단락에서 실제 역사 속에서 나라를 말아먹은 6명의 간신을 실명으로 저격합니다. 그들이 칼이나 군대로 왕을 위협한 것이 아니라, 교묘한 말과 심리전으로 왕의 눈을 가려 시스템을 무력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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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定法
44 궤사(詭使)편에서 읽어낸 고독한 비판자의 아픔(孤憤)
孤憤(고분)과 公憤(공분) 공법(公法)이 바로 서야 사사로운 탐욕(私)이 발붙이지 못한다는 명제는, 단순히 고대 군주를 향한 조언을 넘어 모든 문명사회가 지탱해야 할 가장 엄정한 질서의 마지노선입니다. 텍스트의 글자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시대의 전체 맥락을 직시하려는 사유의 끝에서 마주한 현실이 분노를 지나 깊은 비애감으로 수렴되는 까닭은,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혼란이 정책의 실패 이전에 '공(公)과 사(私)의 전도'라는 시스템의 구조적 파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론의 실종과 진영이라는 '사학(私學)'의 지배언론과 평론이 비판의 기능을 잃고 권력에 기대어 무오류의 교조주의나 권력 편향으로 흐르는 현상은, 한비자가 고발한 '사학성군(私學成群: 사사로운 학파가 붕당을 이루어 무리지음)'의 현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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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疑》_1 인의와 지능으로 다스리지 마라
설의」는 『한비자』 55편 중 44번째 편으로, 편명 그대로 "의심스러운 것(疑)을 설명한다(說)"는 뜻입니다. 군주가 신하를 파악하고 평가할 때 겉모습에 속아 판단을 그르치는 문제, 즉 충신(忠臣)과 사신(詐臣)을 구별하는 어려움을 다룹니다. 법가 사상의 핵심 전제인 "군주는 신하를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이 편의 출발점입니다.핵심 논지 1. 겉모습과 명성에 대한 경계한비자는 청렴하고 명망 높아 보이는 신하일수록 오히려 군주의 판단을 흐리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명성·언변·외견상의 절조는 실제 그 신하가 군주에게 충성하는지와 무관할 수 있으며, 오히려 이런 평판을 이용해 사적인 세력을 키우고 붕당을 형성하는 자들이 위험하다고 봅니다.2. 역사적 찬탈 사례의 나열이 편의 상당 부분은 신하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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