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 五
五(오)、《詩(시)》曰(왈):「不躬不親(부궁부친),庶民不信(서민부신)。」傅說之以無衣紫(부설지이무의자),緩之以鄭簡(완지이정간)、宋襄(송양),責之以尊厚耕戰(책지이존후경전)。夫不明分(부부명분),不責誠(부책성),而以躬親位下(이이궁친위하),且為下走睡臥(차위하주수와),與夫揜弊微服(여부엄폐미복)。孔丘不知(공구부지),故稱猶盂(고칭유우)。鄒君不知(추군부지),故先自僇(고선자륙)。明主之道(명주지도),如叔向賦獵(여숙향부렵),與昭侯之奚聽也(여소후지해청야)。
《시경》에 이르길,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 태부(太傅:관중이나 환공의 스승)는 이를 풀이하여 자색 옷을 입지 않도록 권하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 정간공(鄭簡)과 송양공(宋襄)을 이용하며, 농사와 전쟁을 존중하고 중시한다. 분명한 구분이 없고, 진실을 요구하지 않으며, 친히 낮은 자리에 앉아 낮은 자들과 함께 자고, 헌 옷을 입는다. 공자가 이를 알지 못하여 '우(猶盂:바리밥그릇)'와 같다고 칭하였다. 추군(鄒君)이 이를 알지 못하여 먼저 스스로를 벌하였다. 현명한 군주의 도는 숙향(叔向)이 사냥을 맡은 것과 같고, 소후(昭侯)가 듣는 것과 같다.
說五
齊桓公好服紫(제환공호복자),一國盡服紫(일국진복자),當是時也(당시시야),五素不得一紫(오소부득일자),桓公患之(환공환지),謂管仲曰(위관중왈):「寡人好服紫(과인호복자),紫貴甚(자귀심),一國百姓好服紫不已(일국백성호복자부이),寡人奈何(과인내하)?」管仲曰(관중왈):「君欲何不試勿衣紫也(군욕하부시물의자야),謂左右曰(위좌우왈),吾甚惡紫之臭(오심악자지취)。」於是左右適有衣紫而進者(어시좌우적유의자이진자),公必曰(공필왈):「少卻(소각),吾惡紫臭(오악자취)。」公曰(공왈):「諾(낙)。」於是日郎中莫衣紫(어시일랑중막의자),其明日國中莫衣紫(기명일국중막의자),三日境內莫衣紫也(삼일경내막의자야)。
제 환공이 자주색 옷을 좋아하자, 온 나라가 자주색 옷을 입었다. 그 당시에는 다섯 가지 색 중 자주색이 가장 귀했다. 환공이 이를 걱정하며 관중에게 말하길, '내가 자주색 옷을 좋아하니, 자주색이 매우 귀해졌다. 온 나라 백성들이 자주색 옷을 좋아하는 것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관중이 말하길, '군주께서 자주색 옷을 입지 마시고, 좌우에 말하길, "나는 자주색 냄새를 매우 싫어한다"라고 하십시오.' 이에 좌우에 자주색 옷을 입고 나오는 자가 있으면, 공이 반드시 말하길, '조금 물러나라, 나는 자주색 냄새를 싫어한다.' 공이 말하길, '알겠다.' 그리하여 하루 만에 궁중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 자가 없었고, 다음 날에는 나라 전체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 자가 없었으며, 사흘 만에 경내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 자가 없었다.
一曰(일왈)。齊王好衣紫(제왕호의자),齊人皆好也(제인개호야)。齊國五素不得一紫(제국오소부득일자),齊王患紫貴(제왕환자귀)。傅說王曰(부설왕왈):「《詩(시)》云(운):不躬不親(부궁부친),庶民不信(서민부신)。今王欲民無衣紫者(금왕욕민무의자자),王以自解紫衣而朝(왕이자해자의이조),群臣有紫衣進者(군신유자의진자),曰益遠(왈익원),寡人惡臭(과인악취)。」是日也(시일야),郎中莫衣紫(랑중막의자);是月也(시월야),國中莫衣紫(국중막의자);是歲也(시세야),境內莫衣紫(경내막의자)。
첫째, 제왕이 자주색 옷을 좋아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주색 옷을 좋아하게 되었다. 제나라에서 다섯 가지 색 중 자주색이 가장 귀해졌다. 제왕이 자주색이 너무 귀해진 것을 걱정하자, 태부(왕의 사부)가 풀이하며 왕에게 말하길, '《시경》에 이르길, "몸소 하지 않고 친히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믿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왕께서 백성들이 자주색 옷을 입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왕께서 스스로 자주색 옷을 벗고 조회를 하십시오. 신하들 중 자주색 옷을 입고 나오는 자가 있으면, "더 멀리 가라, 나는 자주색 냄새를 싫어한다"라고 하십시오.' 그날 궁중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 자가 없었고, 그 달에 나라 전체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 자가 없었으며, 그 해에 경내에서 자주색 옷을 입는 자가 없었다.
각자의 직분을 다하면 우환이 없다
鄭簡公謂子產曰(정간공위자산왈):「國小(국소),迫於荊(박어형)、晉之間(진지간)。今城郭不完(금성곽부완),兵甲不備(병갑부비),不可以待不虞(부가이대부우)。」子產曰(자산왈):「臣閉其外也已遠矣(신폐기외야이원의),而守其內也已固矣(이수기내야이고의),雖國小猶不危之也(수국소유부위지야)。君其勿憂(군기물우)。」是以沒簡公身無患(시이몰간공신무환)。
"정간공이 자산에게 말하길, '우리나라는우리 나라는 작고, 형(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끼어 압박받고 있습니다. 지금 성곽이 완전하지 않고, 병기와 갑옷이 준비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할 수 없습니다.' 자산이 대답하길, '신은 외부를 막는 것을 이미 멀리 했고, 내부를 지키는 것을 이미 견고히 했습니다. 비록 나라가 작으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군주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에 정간공이 죽을 때까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子產相鄭(자산상정),簡公謂子產曰(간공위자산왈):「飲酒不樂也(음주부악야),俎豆不大(조두부대),鍾鼓竽瑟不鳴(종고우슬부명),寡人之事不一(과인지사부일),國家不定(국가부정),百姓不治(백성부치),耕戰不輯睦(경전부집목),亦子之罪(역자지죄)。子有職(자유직),寡人亦有職(과인역유직),各守其職(각수기직)。」子產退而為政五年(자산퇴이위정오년),國無盜賊(국무도적),道不拾遺(도부습유),桃棗蔭於街者莫有援也(도조음어가자막유원야),錐刀遺道三日可反(추도유도삼일가반),三年不變(삼년부변),民無飢也(민무기야)。
자산이 정나라의 재상이 되었을 때, 간공이 자산에게 말하길, '술을 마셔도 즐겁지 않고, 제사 음식이 크지 않으며, 종과 북, 피리와 거문고가 울리지 않으니, 나의 일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가 안정되지 않으며, 백성들이 다스려지지 않고, 농사와 전쟁이 조화롭지 않으니, 이는 자네의 죄이다. 자네는 직책이 있고, 나도 직책이 있으니, 각자 자신의 직책을 지키도록 하게.' 자산이 물러나 정치를 행한 지 5년 만에, 나라에 도둑이 없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으며, 길가에 자란 복숭아와 대추를 따는 사람이 없었다. 길에 떨어진 송곳과 칼이 3일 만에 돌아오고, 3년 동안 변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았다.
송양지인, 스스로 인의를 행하려다(宋襄之仁 송양지인)
宋襄公與楚人戰於涿谷上(송양공여초인전어탁곡상),宋人既成列矣(송인기성렬의),楚人未及濟(초인미급제),右司馬購強趨而諫曰(우사마구강추이간왈):「楚人眾而宋人寡(초인중이송인과),請使楚人半涉未成列而擊之(청사초인반섭미성렬이격지),必敗(필패)。」襄公曰(양공왈):「寡人聞君子曰(과인문군자왈):不重傷(부중상),不擒二毛(부금이모),不推人於險(부추인어험),不迫人於阨(부박인어액),不鼓不成列(부고부성렬)。今楚未濟而擊之(금초미제이격지),害義(해의)。請使楚人畢涉成陣而後鼓士進之(청사초인필섭성진이후고사진지)。」右司馬曰(우사마왈):「君不愛宋民(군부애송민),腹心不完(복심부완),特為義耳(특위의이)。」公曰(공왈):「不反列(부반렬),且行法(차행법)。」右司馬反列(우사마반렬),楚人已成列撰陣矣(초인이성렬찬진의),公乃鼓之(공내고지),宋人大敗(송인대패),公傷股(공상고),三日而死(삼일이사),此乃慕自親仁義之禍(차내모자친인의지화)。夫必恃人主之自躬親而後民聽從(부필시인주지자궁친이후민청종),是則將令人主耕以為上(시칙장령인주경이위상),服戰鴈行也民乃肯耕戰(복전안행야민내긍경전),則人主不泰危乎(칙인주부태위호)?而人臣不泰安乎(이인신부태안호)?
송 양공이 초나라 사람들과 탁곡에서 싸웠다. 송나라 사람들은 이미 진열을 갖추었고, 초나라 사람들은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 우사마 구강이 달려와 간언 하길,초나라 사람들은 많고 송나라 사람들은 적습니다. 초나라 사람들이 반쯤 건너고 진을 치지 못했을 때 공격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양공이 말하길, “나는 ‘중상을 입히지 않고, 백발의 노인을 사로잡지 않으며,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지 않으며, 진을 치지 않으면 북을 울리지 않는다’고 군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지금 초나라 사람들이 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공격하면 의를 해치는 것이다. 초나라 사람들이 모두 건너 진을 친 후에 북을 울려 군사를 진격시키도록 하라.' 우사마가 말하길, '군주께서는 송나라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시고, 배와 마음이 온전하지 않으시며, 오직 의를 위해서만 그러십니다.' 양공이 말하길, '진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처벌하겠다.' 우사마가 진영으로 돌아가니, 초나라 사람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양공이 북을 울리니, 송나라 사람들이 크게 패배하고, 양공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어 삼일 만에 죽었다. 이는 스스로 인의를 실천하려다 화를 입은 것이다. 반드시 군주가 몸소 실천해야 백성들이 따르는 것이라면, 이는 군주가 농사를 짓고 전쟁에 나서야 백성들이 농사와 전쟁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면 군주는 매우 위험해지고, 신하는 매우 불안해질 것이다.
말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다
齊景公游少海(제경공유소해),傳騎從中來謁曰(전기종중래알왈):「嬰疾甚(영질심),且死(차사),恐公後之(공공후지)。」景公遽起(경공거기),傳騎又至(전기우지)。景公曰(경공왈):「趨駕煩且之乘(추가번차지승),使騶子韓樞御之(사추자한추어지)。」行數百步(행수백보),以騶為不疾(이추위부질),奪轡代之(탈비대지),御可數百步(어가수백보),以馬為不進(이마위부진),盡釋車而走(진석차이주)。以煩且之良(이번차지량),而騶子韓樞之巧(이추자한추지교),而以為不如下走也(이이위부여하주야)。
제 경공이 소해를 유람하던 중, 전기(전령)가 와서 말하길, '영(군주의 영아)께서 병이 심하여 곧 죽을 것 같으니, 공께서 늦을까 두렵습니다.' 경공이 급히 일어나 전령이 다시 왔다. 경공이 말하길, '빨리 번차에 수레를 메고, 추자(마부) 한추로 하여금 몰게 하라.' 몇 백 걸음을 가다가 주자가 빠르지 않다고 생각하여, 경공이 직접 고삐를 잡고 몇 백 걸음을 더 갔다. 그러나 달리는 것이 시원치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고삐를 빼앗아 직접 몰아 수백 보를 가다가 말이 더 더디 가니 수레를 풀고 뛰어갔다. 번거롭지만 좋은 마차와 마부 한추의 솜씨가 있었지만, 결국 뛰어가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魏昭王欲與官事(위소왕욕여관사),謂孟嘗君曰(위맹상군왈):「寡人欲與官事(과인욕여관사)。」君曰(군왈):「王欲與官事(왕욕여관사),則何不試習讀法(칙하부시습독법)?」昭王讀法十餘簡而睡臥矣(소왕독법십여간이수와의),王曰(왕왈):「寡人不能讀此法(과인부능독차법)。」夫不躬親其勢柄(부부궁친기세병),而欲為人臣所宜為者也(이욕위인신소의위자야),睡不亦宜乎(수부역의호)。
각자 할 일이 다르다
魏昭王欲與官事(위소왕욕여관사),謂孟嘗君曰(위맹상군왈):「寡人欲與官事(과인욕여관사)。」君曰(군왈):「王欲與官事(왕욕여관사),則何不試習讀法(칙하부시습독법)?」昭王讀法十餘簡而睡臥矣(소왕독법십여간이수와의),王曰(왕왈):「寡人不能讀此法(과인부능독차법)。」夫不躬親其勢柄(부부궁친기세병),而欲為人臣所宜為者也(이욕위인신소의위자야),睡不亦宜乎(수부역의호)。
위 소왕이 관직 일을 하고자 하여 맹상군에게 말하길, '과인이 관직 일을 하고자 한다.' 맹상군이 말하길, '왕께서 관직 일을 하고자 하신다면, 법을 읽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왕이 법을 열 장 넘게 읽다가 잠이 들었다. 왕이 말하길, '과인은 이 법을 읽을 수 없다.' 몸소 권력을 잡지 않고 신하가 해야 할 일을 하려 하니, 잠이 드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孔子曰:「為人君者猶盂也,民猶水也,盂方水方,盂圜水圜。」
공자가 말하길, '군주가 되는 자는 마치 그릇(발우)과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그릇이 네모나면 물도 네모나고, 그릇이 둥글면 물도 둥글다.'
鄒君好服長纓,左右皆服長纓,纓甚貴,鄒君患之,問左右,左右曰:「君好服,百姓亦多服,是以貴。」君因先自斷其纓而出,國中皆不服長纓。君不能下令為百姓服度以禁之,乃斷纓出以示民,是先戮以蒞民也。
추군이 긴 끈을 좋아하자, 좌우 신하들이 모두 긴 끈을 착용했다. 끈이 매우 비싸지자, 추군이 이를 걱정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물었다. 좌우 신하들이 말하길, '군주께서 긴 끈을 좋아하시니, 백성들도 많이 착용하여 비싸진 것입니다.' 군주가 먼저 자신의 끈을 잘라내고 나가자, 나라 전체에서 긴 끈을 착용하지 않게 되었다. 군주가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려 금지할 수 없었으나, 자신의 끈을 잘라내어 백성들에게 보여준 것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백성을 다스린 것이다.
叔向賦獵(숙향부렵),功多者受多(공다자수다),功少者受少(공소자수소)
숙향이 녹을 분배할 때,공이 많은 자는 많이 받고, 공이 적은 자는 적게 받았다.
몸으로 다스리지 마라
韓昭侯謂申子曰(한소후위신자왈):「法度甚易行也(법도심역행야)。」申子曰(신자왈):「法者見功而與賞(법자견공이여상),因能而受官(인능이수관)。今君設法度而聽左右之請(금군설법도이청좌우지청),此所以難行也(차소이난행야)。」昭侯曰(소후왈):「吾自今以來知行法矣(오자금이래지행법의),寡人奚聽矣(과인해청의)。」一日(일일),申子請仕其從兄官(신자청사기종형관),昭侯曰(소후왈):「非所學於子也(비소학어자야)。聽子之謁敗子之道乎(청자지알패자지도호)?亡其用子之謁(망기용자지알)。」申子辟舍請罪(신자피사청죄)。
한 소후가 신자에게 말하길, '법도를 시행하는 것이 매우 쉽다.' 신자가 대답하길, '법이란 공로를 보고 상을 주고, 능력에 따라 관직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군주께서 법도를 세우고 좌우의 청을 듣고 계시니, 이것이 법을 시행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소후가 말하길, '나는 지금부터 법을 시행하는 것을 알겠다. 과인은 무엇을 들어야 하겠는가?' 어느 날, 신자가 자신의 형을 관직에 임명해 달라고 청하자, 소후가 말하길, '이는 자네에게서 배운 바가 아니다. 자네의 청을 들어주면 자네의 도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자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신자가 물러나 죄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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