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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관중_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위정자, 철학자

 

 

관중(管仲)의 이름은 이오(夷吾BC 725? ~ BC 645)로서 중국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 정치가이며 사상가이다.  당시 제나라의 주요 산업은 어업 제염업, 양잠, 제철 이를 기반으로 상업이 발달하였다. 관중이 자라온 영상지역도 강을 통한(수운水運) 무역거래가 이루어진 곳으로 관중의 성장 배경에 있었다. 사기 관안 열전에서 관포지교(管鮑之交) 일화가 언급된다. 포숙이 관중의 현명함을 알아보고 대해준 일과 제나라 조정에 () 일어나 관중은 공자 규를 포숙은 소백(훗날 환공) 모시고 제후의 자리를 다투다 결국 포숙이 모시던 공자 소백이 제나라 환공이 된어 포숙의 추천으로 관중이 재상이 된다는 일화가 쓰여져 있다.

 

사마천이 관안열전에 기록한 내용을 좀더 깊게 들여다보면 관중보다 포숙아의 덕성을 드러내는구절이 많이 나온다. 관중과 포숙아가 장사하던 시절 관중이 이익을 많이 취해도 포숙은 흠결 삼지 않았고, 3번이나 벼슬에서 낙마하더라도 관중의 능력의 문제라기보다 군주와 때를 잘못 만난 것이라 이해를 해주었다. 또한 공자 소백이 환공이 되자 사로잡혀 죽게 되었을 환공을 설득하여 관중을 재상의 자리에 올려준 일이다.

 

사마천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관중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관중과 포숙의 프렌드십, 그리고 자신보다 나은 역량의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과 관중을 따라 국정운영의 보조자가 되는 위대한 팔로워십의 탁월함인 것이다. 군집을 이루는 모든 형태의 조직에서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가치가 바로 리더십과 팔로워십이다. 2700여 년 전여년전 관자와 포숙아가 보여준 가치는 국가 운영을 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여 제나라를 첫번째 춘추 오패의 자리로 올라서게 만든 것이다. 관포지교의 고사에서 우리가 간과(看過)한 부분이 바로 포숙아의 팔로우십이다. 포숙아가 관중을 제 환공에게 천거하며 말한 부분이 관자(管子) 소광(小匡)에 잘 드러나 있다.

 

桓公自莒反於齊(환공자거반어제),使鮑叔牙宰(사포숙아위재),鮑叔辭曰(포숙사왈):「臣(신),君之庸臣也(군지용신야),君有加惠於其臣(군유가혜어기신),使臣不凍飢(사신부동기),則是君之賜也(칙시군지사야),若必治國家(약필치국가),則非臣之所能也(칙비신지소능야),其唯管夷吾乎(기유관이오호)!臣之所不如管夷吾者五(신지소부여관이오자오):寬惠愛民(관혜애민),臣不如也(신부여야)。治國不失秉(치국부실병),臣不如也(신부여야)。忠信可結於諸侯(충신가결어제후),臣不如也(신부여야)。制禮義可法於四方(제례의가법어사방),臣不如也(신부여야)。介枹(개주집포),立於軍門(립어군문),使百姓皆加勇(사백성개가용),臣不如也(신부여야)夫管仲民之父母也(부관중민지부모야),將欲治其子(장욕치기자),不可棄其父母(부가기기부모)。」公曰(공왈):「管夷吾親射寡人中鉤(관이오친사과인중구),殆於死今乃用之可乎(태어사금내용지가호)?

 

중략 …. 제가 관이오보다 못한 점이 다섯 가지 있습니다: 백성을 너그럽게 사랑하는 점, 국가를 다스리면서 기강을 잃지 않는 점, 충성과 신의로 제후들과 동맹을 맺는 점, 예의를 제정하여 사방에서 본받게 하는 점, 투구를 쓰고 북채를 잡고 군문에 서서 백성들 모두를 용맹하게 하는 점에서 제가 관이오보다 못합니다. 관중(管仲)은 백성의 부모와 같은 사람입니다. 자식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부모를 버릴 수 없습니다

 

관중은 제나라의 지리적 경제적 잇점을 이용 사농공상(士農工商) 골고루 키워내고 경제를 발전시켜 부국강병의 제나라를 만들어간다. 포숙과 장사를 경험을 토대로 상업에 힘을 실어 백성을 부유하게 만들고 국가 재정을 확충하며 국력을 강화, 중원 제일의 패권국으로 발돋움해 간다.그가 표방한 대외 정책중 하나가 바로 존왕양이(尊王攘夷)이다.   의미는 실추해가는 주(周) 왕실의 권위를 세우는 일이고 양이는 중원을 침략하는 오랑캐( () ())으로부터 중원을 보호하고 물리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덕에 제환공은 제후를 아홉번 소집하여 회맹을 하고 패주로 천하를 휘어잡을 있는 명분을 얻은 것이다.

 

-管鮑之交(관포지교)

 

포숙이 제환공에게 관중을 천거하다

 

管仲曰(관중왈):「吾始困時(오시곤시),嘗與鮑叔賈(상여포숙가),分財利多自與(분재리다자여),鮑叔不以我貪(포숙부이아위탐),知我貧也(지아빈야)。吾嘗鮑叔謀事而更窮困(오상위포숙모사이경궁곤),鮑叔不以我愚(포숙부이아위우),知時有利不利也(지시유리부리야)。吾嘗三仕三見逐於君(오상삼사삼견축어군),鮑叔不以我不肖(포숙부이아위부초),知我不遭時也(지아부조시야)。吾嘗三戰三走(오상삼전삼주),鮑叔不以我怯(포숙부이아겁),知我有老母也(지아유로모야)。公子糾敗(공자규패),召忽死之(소홀사지),吾幽囚受辱(오유수수욕),鮑叔不以我無恥(포숙부이아위무치),知我不羞小而恥功名不顯于天下也(지아부수소석이치공명부현우천하야)。生我者父母(생아자부모),知我者鮑子也(지아자포자야)。」

 

관중이 말하였다. “내가 처음 어려웠을 , 포숙과 장사를 하여 이익을 나눌 내가 많이 가졌으나,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그가 나의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찍이 포숙을 대신해 어떤 일을 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곤궁하게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시운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벼슬하여 군주에게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현명하지 않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전쟁에 나갔다가 달아났으나, 포숙은 나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여 소홀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는 유폐되고 붙잡혀 굴욕을 당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른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내가 사소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나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패권의 기본원칙_尊王攘夷(존왕양이)

政也(기위정야),善因禍而福(선인화이위복),轉敗而功(전패이위공)。貴輕重(귀경중),權衡(신권형)。桓公實怒少姬(환공실노소희),南襲蔡(남습채),管仲因而伐楚(관중인이벌초),責包茅不入貢於周室(책포모부입공어주실)。桓公實北征山戎(환공실북정산융),而管仲因而令燕修召公之政(이관중인이령연수소공지정)。於柯之會(어가지회),桓公欲背曹沫之約(환공욕배조말지약),管仲因而信之(관중인이신지),諸侯由是歸齊(제후유시귀제)。故曰(고왈):「知與之取(지여지위취),政之寶也(정지보야)。

 

그가 정치를 할 때, 재난을 잘 이용하여 복으로 만들고, 패배를 전환하여 공으로 만든다. 경중을 귀하게 여기고, 저울질을 신중히 한다. 환공이 실제로 소희에게 화가 나서 남쪽으로 채를 공격하자, 관중은 이를 이용해 초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에 공물을 바치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환공이 실제로 북쪽으로 산융을 정벌하자, 관중은 이를 이용해 연나라로 하여금 소공의 정치를 따르게 했다. 어가의 회합에서 환공이 조말과의 약속을 어기려 하자, 관중은 이를 이용해 신뢰를 지켰고, 제후들이 이로 인해 제나라에 귀의했다. 그러므로 "주는 것을 알아야 얻는 것이 정치의 보배이다"라고 말한다.

 

관중의 지상 과제_富民(부민)

 

관중의 사상과 국가 운영에 관련된 모든 정책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管子(관자)라는 책이다. 첫 편명이 牧民(목민)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이 관자를 읽고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저술하였다고 전해진다. 2500여 년여년 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에 의해 다시 깨어난 책이기도 하다.관자의 목민 편에는 위정자가 백성을 기르는 기본 원칙을 아주 간결하고 직관적 언어로 잘 드러나 있다 實而知禮節(창름실이지례절),衣食足而知榮辱(의식족이지영욕)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 관자는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하여야 예절을 알아 다루기가 쉬워지고 옷과 음식이 풍족해야 염치를 알아 백성들 스스로가 단속하며 군주의 명령을 따르며 법을 지키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관자의 牧民(목민) 다산의 牧民(목민) 저작 모두 백성을 위한 올바른 통치와 관리의 역할 강조하지만, 시대적 배경과 구체적인 내용에서 차이가 있다.. 잠시 다산의 목민을 들여다보면 목민관 지방 수령등이 반드시 지켜야할 관리의 덕목이다. 조선개국이래 이어져온 유교사상에 반대되는 실학사상을 백성의 이익관점에서 지방 관리의 덕목과 행정 원칙 내용을 다루고 있다. 국가의 존재이유는 오롯이 백성인 것이니 백성이 행복하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의 내용도 바로 지방 백성의 부민의 관점에서 내려간다. 벼슬살이의 요체는 외민(畏民)임을 강조하며 백성을 두려워하는 정치 백성이 주인인 정치를 말하는 것이다. 애민(愛民), 위민(慰民), 균민(均民), 양민(養民), 교민(敎民), 휼민(恤民)이라는 단어에 다산의 민중에 대한 사랑은 드러나 있다.

 

관자의 맨처음 편명 목민(牧民) 화두는 바로 부민(富民)이다 부국(富國) 아니다.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14자의 글이 바로 관자를 대변하는 말이 되고2400여 년을 지나 조선의 실학자 다산의 사상에서 꽃을 피워낸 것으로 보인다.

 

凡有地牧民者(범유지목민자),務在四時(무재사시),守在倉廩(수재창름)。國多財(국다재),則遠者來(칙원자래),地辟舉(지피거),則民留處(칙민류처);倉廩實(창름실),則知禮節(칙지례절);衣食足(의식족),則知榮辱(칙지영욕);上服度(상복도),則六親固(칙륙친고)。四維張(사유장)則君令行(칙군령행)。故省刑之要(고성형지요),在禁文巧(재금문교),守國之度(수국지도),在飾四維(재식사유),順民之經(순민지경),在明鬼神(재명귀신),祇山川(기산천),敬宗廟(경종묘),恭祖舊(공조구)。不務天時(부무천시),則財不生(칙재부생);不務地利(부무지리),則倉廩不盈(칙창름부영);野蕪曠(야무광),則民乃菅(칙민내관),上無量(상무량),則民乃妄(칙민내망)。文巧不禁(문교부금),則民乃淫(칙민내음),不璋兩原(부장량원),則刑乃繁(칙형내번)。不明鬼神(부명귀신),則陋民不悟(칙루민부오);不祇山川(부기산천),則威令不聞(칙위령부문);不敬宗廟(부경종묘),則民乃上校(칙민내상교);不恭祖舊(부공조구),則孝悌不備(칙효제부비);四維不張(사유부장),國乃滅亡(국내멸망)

 

땅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사계절을 중요하게 여기고, 창고를 지키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곳에서도 사람들이 오고, 땅이 개간되면 백성들이 머물게 된다.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윗사람이 법도를 지키면 육친이 굳건해진다. 가지 기둥이 바로 서면 군주의 명령이 행해진다. 그러므로 형벌을 줄이는 요점은 문란함을 금하는 있고, 나라를 지키는 법도는 가지 기둥을 꾸미는 있으며, 백성을 따르는 경륜은 귀신을 밝히는 있다. 산천을 공경하고, 종묘를 존중하며, 조상의 옛것을 공경해야 한다. 천시를 따르지 않으면 재물이 생기지 않고, 지리를 따르지 않으면 창고가 가득 차지 않으며, 들판이 황폐하면 백성들이 떠나고, 윗사람이 법도가 없으면 백성들이 방자해진다. 문란함을 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음란해지고, 가지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형벌이 번성한다. 귀신을 밝히지 않으면 어리석은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고, 산천을 공경하지 않으면 위엄과 명령이 들리지 않으며, 종묘를 존중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조상의 옛것을 공경하지 않으면 효도와 우애가 갖추어지지 않는다. 가지 기둥이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는 멸망한다.

 

여기에 나라를 받치는 네가지 기둥 사유(四維) 말한다. 바로 유명한 예의염치(禮義廉恥)이다. 모든 백성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덕성이 바로 예의 염치이다라 주장한다. 이것들 하나라도 결여되면 국가는 기울고 두개가 결여되면 위태로우며 세개가 끊어지면 뒤집히고, 네개 모두가 없으면 멸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를 돌아보면 과연 예의가 실종되고 염치는 사라져 갔으며 무례함과 뻔뻔함만 남아있다. 예의도 없고 염치도 없는 정치 행태가 이루어지고 오히려 당당해하는 그들을 보면 정치적 앞날을 넘어 국가 존망의 위기의 나락을 떨어져 감을 느낀다.

 

國有四維(국유사유)一維則傾(일유절칙경),二維則危(이유절칙위),三維則覆(삼유절칙복),四維則滅(사유절칙멸)。傾可正也(경가정야),危可安也(위가안야),覆可起也(복가기야),滅不可復錯也(멸부가복착야)。何謂四維(하위사유)?一曰禮(일왈례)、二曰義(이왈의)、三曰廉(삼왈렴)、四曰恥(사왈치)。禮不踰節(례부유절),義不自進(의부자진)。廉不蔽惡(렴부폐악),恥不從枉(치부종왕)。故不踰節(고부유절),則上位安(칙상위안);不自進(부자진),則民無巧軸(칙민무교축);不蔽惡(부폐악),則行自全(칙행자전);不從枉(부종왕),則邪事不生(칙사사부생)。

 

국가에는 네 가지 벼리가 있으니, 하나가 끊어지면 기울고, 두 개가 끊어지면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뒤집어지고, 네 개가 끊어지면 멸망한다. 기울면 바로잡을 수 있고, 위태로우면 안정시킬 수 있으며, 뒤집어지면 일으킬 수 있지만, 멸망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 네 가지 기둥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 둘째는 의(), 셋째는 염(), 넷째는 치()이다. 예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는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며, 염은 잘못을 숨기지 않는 것이고, 치는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도를 넘지 않으면 윗자리가 편안하고,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백성들이 교활해지지 않으며, 잘못을 숨기지 않으면 행실이 저절로 온전해지고,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으면 사특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管仲任政相齊(관중기임정상제),以區區之齊在海濱(이구구지제재해빈),通貨積財(통화적재),富國彊兵(부국강병),與俗同好惡(여속동호악)。故其稱曰(고기칭왈):「倉廩實而知禮節(창름실이지례절),衣食足而知榮辱(의식족이지영욕),上服度則六親固(상복도칙륙친고)。四維不張(사유부장),國乃滅亡(국내멸망)。下令如流水之原(하령여류수지원),令順民心(령순민심)。」故論卑而易行(고론비이역행)。俗之所欲(속지소욕),因而予之(인이여지);俗之所否(속지소부),因而去之(인이거지)

 

중략…. 네 가지 덕목이 바로 서지 않으면 나라는 멸망한다. 명령을 흐르는 물처럼 내려 백성의 마음에 순응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논의는 낮추고 실행은 쉽게 해야 한다. 풍속이 원하는 것을 주고, 풍속이 싫어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관자의 경제 활성화 정책

관자의 저작 연대는 다소간 논란은 있으나 전국시대 제나라 직하학궁에서 관자의 후학이 관중이 재상으로 있던 시절 관자의 언행과 그가 시행한 정책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공인된다.춘추시대 제나라에서 남겨진 관자의 행정의 기록들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직하학궁에서 오랫동안 연구되어 경세(經世) 제민(濟民)의 의 방법론이 연구되어 저술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관자의 기본 토대는 목민, 형세, 권수, 입정, 승마, 칠법, 유관, 등은 관중의 핵심 사상을 말하고 있고 그 밖의 편에서는 정치, 행정, 경제, 법률,, 철학, 군사, 자연과학등의 지식을 집대성한 국가경영의 지침서인 것이다. 이를 미루어 서구 유럽에서 필적할 만한 사상가나 철학가를 찾아보면 보이지 않는다. 굳이 비견하자면 플라톤 국가’ ‘아리스토 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 군주론’ ‘애덤스미스 국부론을 일정 부분 합본하여 본다면 맞을듯하다. 그러나 그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사상에 그치지 않는 실학적 관점에서의 국가를 40여 년간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즉 이론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한 나라의 재상이란 직위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 경제 철학적 사상을 펼쳐 적용해 나간 것이다. 이를 자산으로 삼아 제나라는 전국시대까지 동제(東帝)라는 칭호를 받으며 강성하였다. 결국 그가 만든 프로세스와 시스템은 제나라 국정에 그대로 심어지고 자라나 수백 년을 이어져 간다.

 

관자는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사농공상(士農工商) 네 가지 형태의 직업군으로 구별하고 각기 다른 구역에 나누어 살도록 하였다. 주요 목적은 산업의 전문화를 꾀하고 적절한 산업배분 정책을 통해 부민(富民)의 방도를 삼았으며 정보를 교환하여 전문성을 확보하여 산업 경쟁력강화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중농(重農) 정책으로 백성의 배를 채우고 중상(重商) 정책을 써서 국가의 부를 축적해 패권국의 기틀을 다져간 것이다. 이후 국가의 적절한 개입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고 가격조절 기능을 수행하여 인플레이션을 막아 국가 경제를 안정시킨다. 특히 소금과 철의 국가 전매 관리를 실시함으로써 더욱더 안정적인 국가의 재원을 확보하게 된다.

 

관자에서 보이는 특별한, 지금의 경제학자들이 보아도 무릎을 치고 감탄할 정책이 나온다. 즉 국가 정책을 통한 민간 소비 진작, 민생경제 안정화를 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자 권(卷) 12는 치미(侈靡) 장이다.풀이한다면 크게 베풂, 많이 소비함이다. 소비를 강조하는 대목으로 민생경제가 좋지 않을 때 소비를 진작하여 민생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소비하게 하여 가난한 자들이 그들을 위해 종사하면 여러 경제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교적 관점에서 배치되는 사상이다. 유가적관점은 청렴을 말하고, 수신의 관점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말한다. 그러나 관중은 이와 달리 현실의 백성의 고단함을 보고 그 빈천을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정책의 하나로 사치(奢侈)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 오늘날의 전 세계경제를 돌아보아, 만약 미국이란 소비 국가가 소비를 하지 않고 절용(節用)을 외치고, 선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극도로 소비를 위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면 수출 중심의 한국경제는 아마도 망할 것이고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설 것이다. 물론 소비 중심의 경제사상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問曰(문왈):「興時化若何(흥시화약하)?」莫善於侈靡(막선어치미);賤有實(천유실),敬無用(경무용),則人可刑也(칙인가형야)。故賤粟米而如敬珠玉(고천속미이여경주옥),好禮樂而如賤事業(호례악이여천사업)。本之殆也(본지태야),珠者陰之陽也(주자음지양야),故勝火(고승화)。玉者陰之陰也(옥자음지음야),故勝水(고승수)。其化如神(기화여신)。故天子臧珠玉(고천자장주옥),諸侯臧金石(제후장김석),大夫畜狗馬(대부축구마),百姓臧布帛(백성장포백)。不然(부연),則強者能守之(칙강자능수지),智者能牧之(지자능목지),賤所貴而貴所賤(천소귀이귀소천)。不然(부연),鰥寡獨老不與得焉(환과독로부여득언),均之始也(균지시야)。

 

질문: “때를 헤아려 경제적 가르침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변: “많이 소비하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쌀과 보리를 천하게 여기고, 옥과 구슬을 존중하며, 예악을 좋아하고 사업을 천하게 여기면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옥은 음의 양이므로 불을 이기고, 구슬은 음의 음이므로 물을 이깁니다. 그 변화는 신묘합니다. 그래서 천자는 옥과 구슬을 보관하고, 제후는 금과 돌을 보관하며, 대부는 개와 말을 기르고, 백성은 베와 비단을 보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 자는 그것을 지킬 수 있고,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천한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것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면, 홀아비, 과부, 고독한 노인들이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균등의 시작입니다.”

 

眾而約(중이약)。實取而言讓(실취이언양)。行陰而言陽(행음이언양),利人之有禍(리인지유화),言人之無患(언인지무환),吾欲獨有是(오욕독유시),若何(약하)?是故之時陳財之道(시고지시진재지도),可以行(가이행),今也利散而民察(금야리산이민찰),必放之身然後行(필방지신연후행)。公曰謂何(공왈위하),長喪以(장상이)𪑺其時(기시),重送葬以起身財(중송장이기신재),一親往(일친왕),一親來(일친래),所以合親也(소이합친야),此謂眾約(차위중약)。問用之若何(문용지약하)?巨瘞堷(거예암),所以使貧民也(소이사빈민야)。美壟墓(미롱묘),所以文明也(소이문명야)。巨棺槨(거관곽),所以起木工也(소이기목공야)。多衣衾(다의금),所以起女工也(소이기녀공야)。猶不盡(유부진),故有次畜也(고유차축야),有差樊(유차번),有藏(유예장),作此相食(작차상식),然後民相利(연후민상리),守戰之備合矣(수전지비합의)。

 

중략…. 분묘를 크게 함은 가난한 빈민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분묘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문양을 조각하는 사람을 밝게 하는 것입니다. 큰 관을 만드는 것은 목공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많은 옷과 이불을 만드는 것은 여공을 고용하는 방법입니다. 여전히 부족하니, 차례로 축적하고, 차등을 두어 매장하고, 이것을 만들어 서로 먹고 산 뒤에야 백성이 서로 이롭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준비가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관자의 국가 운영 정책

 

경제 정책 농업 생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여 제나라의 경제 기반을 강화하고, 중상(重商)정책을 통한 상업을 활성화하여 제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제나라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소금과 해산물 등의 거래를 장려하고, 상업 활동을 촉진했다. 조세 제도를 개혁하여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였다.

 

복지정책 거의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복지 정책은 환과고독(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늙은 사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다. 노인을 어른으로 봉양하고, 어린이를 사랑하고 보호하며, 고아를 구휼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아울러 장애인보호 정책, 홀아비와 과부를 결혼시키는 정책, 병자를 구휼하고, 곤궁한 사람들을 살피고 지원하며, 국가 유공자 보훈 정책, 흉년에 대비한 빈민구제책도 수립하여 시행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이 관자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법과 질서 법을 만들어 국가의 운영의 근본으로 삼고, 형벌로 악행을 규제했으며, 사유(四維): (), (), (), ()를 국가의 기강으로 삼아 백성을 다스렸다.

 

군사 운용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거나 침략하는 행위를 반대하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군대 운용에 관한 글은 병법(兵法)에 기본적으로 들어있다. 그리고 제환공에게 정치할 때 경계해야 할 사항을 말한 편이 관자의 참환(參患) 편에도 나온다. 그중 군대 운영의 기본원칙을 제환공에게 설명하는 장이 있다. 국가의 내우외환이 일어나는 원인과 대책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특히나 관중의 기본적인 군대운용 원칙이 잘 드러나 있기도 하다. 군비 운용중 특히 전쟁에서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점을 들어 군비강화의 문제를 기술하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신중함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가 일으킨 러. 우 전쟁의 측면에서 잘 드려다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한계를 통찰할 수 있다.

 

故凡用兵之計(고범용병지계),三驚當一至(삼경당일지),三至當一軍(삼지당일군),三軍當一戰(삼군당일전);故一期之師(고일기지사),十年之蓄積殫(십년지축적탄);一戰之費(일전지비),累代之功盡(루대지공진);今交刃接兵而後利之(금교인접병이후리지),則戰之自勝者也(칙전지자승자야)。攻城圍邑(공성위읍),主人易子而食之(주인역자이식지),析骸而爨之(석해이찬지),則攻之自拔者也(칙공지자발자야)。是以聖人小征而大匡(시이성인소정이대광),不失天時(부실천시),不空地利(부공지리),用日維夢(용일유몽),其數不出於計(기수부출어계)。故計必先定而兵出於竟(고계필선정이병출어경),計未定而兵出於竟(계미정이병출어경),則戰之自敗(칙전지자패),攻之自毀者也(공지자훼자야)。

 

군대를 세 번 훈련하는 비용은 한번 출정하는 경비에 해당하고 세번 출정하는 경비는 한번 적국을 포위하는 경비에 해당하고, 세번 포위하는 경비는 한번 적국과 전쟁하는 경비에 해당한다. 따라서 한번 군대를 일으키는 경비는 10년 동안 축적한 경비를 쓰는 것이고 한번 전쟁하는 경비는 몇 세대 동안 축적한 경비를 쓰는 것입니다

 

기원전 600여 년 전 중국 제나라에서 관중이 40여 년간 시행한 정책은 고스란히 관자에 담겨 있다. 그중 부민을 최우선 국가 운영 과제로 설정하고 프로세스화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치의 근본원리도 백성을 위하는 것이고 경세제민의 기본인 물가 조절, 조세정책과 경제 정책도 어찌 보면 백성을 위하는 일이다. 군대 운영 원칙도 반드시 백성의 입장에서 백성이 수고롭지 않게 운영하라 말한다. 이를 미루어 보면 이론이 아닌 바로 실학적 관점에서 써내려 간 위대한 고전 중의 하나이다. 깨어있는 위정자들은 보고 읽고 숙독하여 체화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