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마천 사기

사기_평준서(平準書)

*본편은 2년 전 페북에 올린 글 평준서  1,2의 합본하여  재편집한 것입니다. 

 

사기의 본기 세가 열전에 나오는 많은 내용들은 학자나 유명 작가들이 그들의 글에 인용한다. 그러나 사기 서()는 내용의 중요도에 비해 많은 이들이 연구하거나 쓰질 않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내용이 일반적으로 익히 알아온 사마천의 사기(史記)다움(?)이 부족해서 일런지 모른다. 즉 내용이 문학적 감수성과 역사적 흥미 등이 부족해서 읽는 재미가 다소간 떨어지기도 한다. 일반적인 역사가와는 달리 사마천은 고대 중국의 모든 제도를 망라한 책을 별도로 펴내는데 그것이 사기서(書) 이다. 그 내용은 중국 고대의 예의, 음악, 군사, 역법, 천문, 봉선, 치수, 경제를 담고 있다.

 

한 고조 본기에 드러나는 한무제는 그리 많은 치적에도 불구하고 많은 내용이 전쟁 영토확장 그리고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미신, 봉선(封禪: 제왕이 태산에 올라가 하늘과 땅에 올리는 제례 행위)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황제로서의 치적에 대해서는 인색한 기록만 남겨져 있다. 이는 치적보다 실적을 부각하려는 사마천의 의도가 숨겨진 것이라 보인다.그리고 그 봉선의 기록은 사기 서에도 나와 있다. 진시황 이전의 봉선과 한 고조부터 한 무제까지의 봉선 내용을 담고 있으며 많은 비중으로 봉선 의식을 다루고 있으나 그 내용은 다소 부정적인 내용이 많다. 예를 들자면 봉선하는 도사들의 비리나 불로장생의 도를 이룰 수 있다고 황제를 속여 국고를 축나게 하는 것들로 내용이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보면 사마천이 봉선서를 통해 한무제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기 서의 내용중 평준서를 좋아한다. 말 그대로 국가가 개입하여 물가를 고르게 하여 기준을 삼아 나간 다는 것이다. 평준의 뜻과는 달리 그 내용은 위정자의 잘못된 정책과 그 정책에 기생하는 상인 계급의 부의 축적 등이 지금의 글로벌 경제 초입의 혼탁한 시절을 잘 말해주고 우리를 돌아보게 해주는 잘 닦인 거울과 같다. 사마천이 쓴 평준서의 내용이 어느 하나 지금 현재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다. 미국의 달러 패권을 가지고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깡패 짓이 당시 한나라가 문경지치의 부를 기반으로 한 한무제의 패권적 영토확장과 닮아 있다.

 

  

한왕조 초기 문경지치, 한무제의 치적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사기 서를 참고하면 된다. 한왕조가 일어나고 70여년 동안 세상은 평화롭고 백성을 배를 불리며 외환(흉노)의 걱정이 사라진 평화의 시대가 전개된다. 그 국부와 국력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과 그 부로 인해 한 국가가 부패로 쇠락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사마천의 역사적 사실을 글로서 위정자의 잘못을 징치 한다는 춘추필법(春秋筆法)이 아주 잘 나타나있는 글이기도 하다. 원문의 내용에 구구절절 사마천의 숨결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가 나라 곳간에 흘러 넘치자 한무제의 오만함도 극에 달해 이웃 국가를 무시하며 침략하게 된다. 그 첫 타깃이 흉노가 되며 전쟁을 일으키고 요동을 거쳐 한반도 한사군 설치 등 이웃 국가를 병탄 하며 국력을 소진하게 된다. 이를 지금에 미루어 보면 이상하게도 오버랩되는 부분은 미국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국부와 국력은 달러 패권을 등에 업고 군사 경제 문화 대국으로 소련과 중국의 주변국을 경제 문화적으로 침탈해가며 경제적인 속국을 만들어 버린다. 거기에 끊임없는 군비가 소모되고 작금에 이르러서 미국은 동맹국에게 군사 주둔비를 명목으로 일명 삥을 뜯고 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달러 패권을 기반으로 하여 전세계 자본을 휩쓸고 돌아다니며 이익을 갈취해가는 구조를 더욱 강고히 해 나가는 것이다.

 

세계 제2의 패권국인 중국은 천조국인 미국과 자웅을 겨루어 보고자 자국 통화를 기반으로 일대일로를 주창하고, 주변국으로 하여금 자국의 편을 들라고 경제적인 패권으로 종용을 하고 있다. 이는 화폐 주조권을 지니고 한왕조에 대들고 반란을 일으켰던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글에서 보인 역사적으로 닮아 있음을 본다. 그 천조국 미국과 대등해지려는 중국 그리고 그것을 무력과 경제력으로 누르려는 미국….

 

한무제 당시 반역을 일으킨 오왕(吳王, 유비(劉濞))의 역사적 관계 속에서 미루어 보면 아직은 중국의 미국에 대한 시비 걸기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또한 미국은 한무제와 같은 오만함으로 나라를 쇠락의 길로 이끌어가는 것을 분명하게 보고 있다. 군비의 과다 지출로 지방과 중앙 정부 재정이 바닥이 나자 공경대부와 관리는 군비를 댈 수 없게 되었으나 이런 전쟁은 상인들의 부만 축척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그 시대에도 있었다. 이는 마치 전쟁이후 일본과 미국의 군수 물품을 제조하여 거부가 된 마쓰시다 미쯔비시 등의 그룹 등과 이를 기반으로 상업적 성과를 거두는 상인계급의 출현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가늠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한 로스차일드 가문 등과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이런 상인 자본계급의 탐욕과 어리석은 위정자들로 인해 제국은 망해가는 것이다.

 

‘봉군저수앙급어부상(封君低首仰給於富商)- 작위와 봉토를 받은 제후가 상인들에게 물자를 얻기 위해 머리를 숙인다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글로벌 기업들에게 각 나라의 관리뿐만 아니라 결국 그 대통령이나 총리까지 머리를 조아린다는 이 통렬한 글귀가 2100여년전 중국 한나라 시대에 있었던 것이다. 패권을 다투는 국가의 위정자들은 상인계급의 부를 무시할 수 없고 의지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상황이 아래 글에 아주 자세히 녹아있다. 사마천은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며 한무제의 다른 국가의 침탈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무제는 소금과 철의 정부가 전매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균수법을 시행하고, 매관매직을 시행하며 징역이나 부역을 돈으로 대신 하여 모자란 군비를 충당하였음에도 세수가 부족해지자 한나라 정부는 화폐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매관 매직을 한 상인계급은 소금과 철의 매점매석으로 이익을 거두어가고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화폐개혁으로 인해 인플레가 발생하고 상인계급들과 거부들은 현물사재기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시켜나간다.

 

이것도 현재의 글로벌 시장경제에서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너나 할 것 없이 양적 완화를(말이 좋아 양적 완화이지 화폐가치의 하락을 이끌어내는 정책이다.) 시행하자 지금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은2100여 년 전 한나라의 상인들과 마찬가지로 부를 독점해나간다. 특히 한국에서 일어나는 부동산의 인플레는 주거비의 증가를 가져오고 현물과 현금을 모두 가진 기득 자본가들에게 동전 한 닢까지 빼앗겨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아직은 공산품과 농산품 등 생활용품의 인플레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통제하니 못하는 인플레는 일어날 것이고 이로 인해 민중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질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평준서에 아주 사실적 묘사를 통해 나타나 있다.

 

물극필반(物極必反) 모든 사물은 극성하면 반드시 쇠함으로 돌아간다. 역경과 노자도덕경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끝을 보고 있다. 아직은 어딘지 모를 일이다. 미국은 더 이상 지구에서 이뤄 낼 것이 없으니 지구촌을 대상으로 깡패짓을 하며 돌아다닌다.그 처음이 소련이었고 소련이 붕괴되자 남미를 그리고 달러 패권을 기반으로 동아시아와 마지막 남은 타깃 중국을 대상으로 싸움을 걸고 있으나 이는 미국의 마지막 몸부림이라 보인다.미국은 스스로 자멸해 갈 것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1. 매점매석(買占賣惜)의 기원

 

상인의 이익 추구 관점에서 매점매석은 기원 전이나 기원후 다 마찬가지다 즉 자본주의의 시작은 철기문명 도입으로 경작면적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잉여생산물의 교환이 시작되며 태동되었고 화폐의 사용을 통해 꽃 피워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권력과 통치 권력의 결합을 미연에 막고자 그 상인의 자식은 정계 진출을 막은 내용도 있음을 본다. 또한 잘못된 정책이 화폐 발행권을 민간에 이양 이것이 통화량의 증가를 가져옴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한 폐해는 물가의 상승이고 자산 가격의 폭등을 유발한다.

 

 

한나라 시절의 매점매석은 소금과 철등 국가 기간산업에서 생산되는 산물을 상인들이 독과점하고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였다. 이를 한 무제는 국가 세수확보를 위해 소금과 철을 국가 전매 사업으로 지정하여 운영을 한다. 그러나 그 과실을 백성과 같이 나누어야 했으나 그의 토목공사와 전쟁비용으로 충당한 것이다.

 

오늘날 자본의 매점매석을 살펴보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와 각종 원자재의 매점매석이 자행된다. 글로벌화 된 자본 통제받지 않는 자본은 선물시장에서 그들의 거대 달러 패권을 기반으로 폭압적 매점매석을 자행한다. 이로인해 개도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중위소득이하 대중들은 그들이 매점 매석을 통해 앙등한 물가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앙등은 임대료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로인해 주거비 인플레가 발생하고,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서민들이 입고 먹는 소비재마저 급격히 올려놓아 삶의 질을 더 낮추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흔히들 국민의 부유한 척도 기준을 GDP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일 뿐이다. 나라가 부유하다하여 백성이 부유한 것은 아니다. 즉 국민들이 실생활에 소비하는 의식주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하느냐를 본다면 GDP가 낮은 나라보다 오히려 더 궁핍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소득 대비 의식주의 실질 비용인데 그 실질 비용이 증가를 하면 즉 국민은 가난해지는 것과 같다. 이를 역으로 보면 비록 GDP는 낮더라도 국민의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이 낮으면 낮을수록 국민은 넉넉하진 않으나 부족하진 않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200년 전

 

그 기록을 돌아보면

 

1 漢興(한흥),接秦之獘(접진지폐),丈夫從軍旅(장부종군려),老弱轉糧馕(로약전량양),作業劇而財匱(작업극이재궤),自天子不能具鈞駟(자천자부능구균사),而將相或乘牛車(이장상혹승우차),齊民無藏蓋(제민무장개)。於是為秦錢重難用(어시위진전중난용),更令民鑄錢(경령민주전),一黃金一斤(일황김일근),約法省禁(약법성금)。而不軌逐利之民(이부궤축리지민),蓄積餘業以稽市物(축적여업이계시물),物踴騰糶(물용등조),米至石萬錢(미지석만전),馬一匹則百金(마일필칙백김)。

 

중략법령을 간소하게 하고 금령을 줄였다. 그러자 법을 지키지 않고 이익만 추구하는 백성(상인)이 매점매석하여 시장의 물가가 크게 올라 쌀 한섬은 만전 말 한필은 백금이 되었다.

 

 

2 天下已平(천하이평),高祖乃令賈人不得衣絲乘車(고조내령가인부득의사승차),重租稅以困辱之(중조세이곤욕지)。孝惠(효혜)、高后時(고후시),天下初定(위천하초정),復弛商賈之律(복이상가지률),然市井之子孫亦不得仕宦吏(연시정지자손역부득사환위리)。量吏祿(량리록),度官用(도관용),以賦於民(이부어민)。而山川園池市井租稅之入(이산천원지시정조세지입),自天子以至于封君湯沐邑(자천자이지우봉군탕목읍),皆各為私奉養焉(개각위사봉양언),不領於天下之經費(부령어천하지경비)。漕轉山東粟(조전산동속),以給中都官(이급중도관),歲不過數十萬石(세부과수십만석)。

 

효혜제와 고후 시기에는 천하가 안정되자 상법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그 자식들이 관리가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상인이 돈으로 권력을 사지 못하게 막은 것과 같다.)

 

3 至孝文時(지효문시),莢錢益多(협전익다),輕(경),乃更鑄四銖錢(내경주사수전),其文為(기문위)「半兩(반량)」,令民縱得自鑄錢(령민종득자주전)。故吳諸侯也(고오제후야),以即山鑄錢(이즉산주전),富埒天子(부랄천자),其後卒以叛逆(기후졸이반역)。鄧通(등통),大夫也(대부야),以鑄錢財過王者(이주전재과왕자)。故吳(고오)、鄧氏錢布天下(등씨전포천하),而鑄錢之禁生焉(이주전지금생언)

 

효문제 때 협전은 더욱 많아지고 가벼워져 별도의 사수전을 주조했는데. 반량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백성으로 하여금 주조도 가능케 하였다. 때문에 오왕(유비)은 소유한 산에서 나는 철로 주조하여 그의 부유함이 천자에 비등할 정도였고 그 후에 결국 반역하였다. 등통은 대부로서 그 역시 돈을 찍어내어 그의 재산이 왕을 능가하였다 때문에 오왕 유비 등통의 돈이 천하에 퍼지니 주조권을 금지하였다.( 미국이 금리와 환율을 통해 세상을 통제하기 시작하다)

 

15 其明年(기명년),山東被水菑(산동피수치),民多饑乏(민다기핍),於是天子遣使者虛郡國倉廥以振貧民(어시천자견사자허군국창괴이진빈민)。猶不足(유부족),又募豪富人相貸假(우모호부인상대가)。尚不能相救(상부능상구),乃徙貧民於關以西(내사빈민어관이서),及充朔方以南新秦中(급충삭방이남신진중),七十餘萬口(칠십여만구),衣食皆仰給縣官(의식개앙급현관)。數歲(수세),假予產業(가여산업),使者分部護之(사자분부호지),冠蓋相望(관개상망)。其費以億計(기비이억계),不可勝數(부가승수)。於是縣官大空(어시현관대공)

 

이듬해 산동지방에 수해를 입어 많은 백성이 굶주리자 이에 천자는 사신을 파견하여 그 지방의 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휼하였으나 오히려 부족하여 부유한 호족에게 물자를 빌렸으나 여전히 부족하였다.

而富商大賈或財役貧(이부상대가혹대재역빈),轉轂百數(전곡백수),廢居居邑(폐거거읍),封君皆低首仰給(봉군개저수앙급)。冶鑄煮鹽(야주자염),財或累萬金(재혹루만김),而不佐國家之急(이부좌국가지급),黎民重困(려민중곤)。於是天子與公卿議(어시천자여공경의),更錢造幣以贍用(경전조폐이섬용),而摧浮淫并兼之徒(이최부음병겸지도)。是時禁苑有白鹿而少府多銀錫(시시금원유백록이소부다은석)。自孝文更造四銖錢(자효문경조사수전),至是歲四十餘年(지시세사십여년),從建元以來(종건원이래),用少(용소),縣官往往即多銅山而鑄錢(현관왕왕즉다동산이주전)

 

그러나 부유한 상인들 중에 혹자는 재물을 축적하고 빈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화물을 실은 수레가 수백 량에 이르렀으며, 읍 안에서 매점매석을 하여 물자를 독점했다. ()으로 봉해진 자들도 모두 머리를 숙이고 물자를 빌릴 정도였다. 혹자는 철기를 주조하고 소금을 만들어, 재물을 만금이나 축적했으나, 국가가 위급할 때에 돕지 않았기 때문에 서민들만 이중삼중으로 괴롭게 되었다. 이에 천자와 공경들이 상의하여 별도로 새로운 동전과 화폐를 만들어서 조정의 재정으로 쓰고, 경박하고 음란하며 불법적으로 토지를 겸병한 자들을 억누르려고 했다.

 

2. 인플레이션과 상인 그리고 고민령

 

당시 철은 전쟁의 무기 그리고 돈을 주조하는 재료였고 소금은 백성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필 수 불가결의 재화였다. 이를 민간 경제에 맡긴 결과 이익만 좇는 상인들에 의해 매점매석이 되니 이를 징치 하고자 공근과 함양이 정부 통제 아래 두자고 주창한 것이다. 천자의 승인을 득한 후 소금과 철의 정부 전매 정책을 시행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지방정부의 많은 관리들이 상인계급 출신이었고 그로 인해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상인이 권력을 얻는 것을 경계하였으나 한무제의 무리한 영토확장정책과 봉선에 무리한 지출로 매관매직을 통해 세수를 확보할 수밖에 없었고, 그 정책으로 세력을 키운 상인들은 염철에 대한 독점적 권한은 더욱 강해지게 된다. 즉 어떠한 정책도 시장에 먹히지 않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를 미루어 현재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보노라면 그 자산 가격(부동산 주식 등..)의 상승의 과실을 지금의 위정자들과 상인들이 독차지하는 것이니 어떠한 정책도 보내 의도한 바를 달성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취한 양적 완화의 정책은 자산 인플레를 초래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은 바로 산업자본 금융자본 정부 등일 것이다. 거기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중위 자산 이하의 백성들이 고스란히 당하고 있는 것이고 중위 자산 이하의 국민들의 부를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그리고 부동산에 치부하는 사람들이 고스란히 가져가고 있다.

 

그런 폐해를 한무제는 민전제를 통해 혁파하고자 한다. 부과된 세금을 속인 것을 고발한 자에게 그 민전제를 통해 거둬들인 벌금의 반을 주는 제도를 시행한다 이것이 고민령이다. 민전제 시행 후 상인들의 고발이 많아지고 중등 이상의 상인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고는 채워져 갔다. 이 계기가 많은 수의 상인계급의 몰락을 가져온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무제는 다시 영토확장에 힘써 국고를 탕진해가니 징수된 세금과 벌금은 일반 백성에게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한무제의 가장 큰 실정은 이 채워진 국고를 통해 부국은 하였으나 백성의 고단한 삶은 돌보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영토확장의 정책을 버리고 봉선 의식을 간소화하여 민중의 삶을 돌보았다면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되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大農上鹽鐵丞孔僅(대농상염철승공근)、咸陽言(함양언):「山海(산해),天地之藏也(천지지장야),皆宜屬少府(개의속소부),陛下不私(폐하부사),以屬大農佐賦(이속대농좌부)。願募民自給費(원모민자급비),因官器作煮鹽(인관기작자염),官與牢盆(관여뢰분)。浮食奇民欲擅管山海之貨(부식기민욕천관산해지화),以致富羨(이치부선),役利細民(역리세민)。其沮事之議(기저사지의),不可勝聽(부가승청)。敢私鑄鐵器煮鹽者(감사주철기자염자),釱左趾(체좌지),沒入其器物(몰입기기물)。郡不出鐵者(군부출철자),置小鐵官(치소철관),便屬在所縣(편속재소현)。」使孔僅(사공근)、東郭咸陽乘傳舉行天下鹽鐵(동곽함양승전거행천하염철),作官府(작관부),除故鹽鐵家富者吏(제고염철가부자위리)。吏道益雜(리도익잡),不選(부선),而多賈人矣(이다가인의)。

 

대농(大農)은 염철승(鹽鐵丞) 공근, 동곽 함양과 다음과 같이 상주했다. 부식(浮食, 덕에 비해 식록이 많은 사람)과 기민(奇民, 친히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제후)들은 산과 바다의 화물(소금과 철)을 멋대로 독점해 치부하고 가난한 백성을 노비처럼 부리고 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 중략…. 그리하여 철과 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관부를 세우고, 원래부터 염철을 경영했던 부자들을 관리로 임용했다. 이로 인해 관리제도는 더욱 난잡하게 되었고, 능력있는 관리를 뽑지 않았고, 관리 중에 상인 출신이 많아졌다.

 

23 商賈以幣之變(상가이폐지변),多積貨逐利(다적화축리)。於是公卿言(어시공경언):「郡國頗被菑害(군국파피치해),貧民無產業者(빈민무산업자),募徙廣饒之地(모사광요지지)。陛下損膳省用(폐하손선성용),出禁錢以振元元(출금전이진원원),寬貸賦(관대부),而民不齊出於南畝(이민부제출어남무),商賈滋眾(상가자중)。貧者畜積無有(빈자축적무유),皆仰縣官(개앙현관)。異時算軺車賈人緡錢皆有差(이시산초차가인민전개유차),請算如故(청산여고)。諸賈人末作貰貸賣買(제가인말작세대매매),居邑稽諸物(거읍계제물),及商以取利者(급상이취리자),雖無市籍(수무시적),各以其物自占(각이기물자점),率緡錢二千而一算(솔민전이천이일산)。諸作有租及鑄(제작유조급주),率緡錢四千一算(솔민전사천일산)。非吏比者三老(비리비자삼로)、北邊騎士(북변기사),軺車以一算(초차이일산);商賈人軺車二算(상가인초차이산);船五丈以上一算(선오장이상일산)。匿不自占(닉부자점),占不悉(점부실),戍邊一歲(수변일세),沒入緡錢(몰입민전)。有能告者(유능고자),以其半畀之(이기반비지)。賈人有市籍者(가인유시적자),及其家屬(급기가속),皆無得籍名田(개무득적명전),以便農(이편농)。敢犯令(감범령),沒入田僮(몰입전동)。」

 

상인들은 화폐의 주조가 자주 변하자 물건을 축적하여 이윤을 추구했다. 이에 공경 대신들은 다음과 같이 상주했다. “…. 중략.....중략..... 이런 사실을 고발하는 자에게는 몰수한 민전의 반을 지급해야 합니다. 상인으로 시전에 등록한 자나 그 가족들은 모두 전답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해 농민에게 이익을 주어야만 합니다. 감히 명령을 위반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전답과 동복(僮僕)을 몰수해야 합니다.”

 

 

35 卜式相齊(복식상제),而楊可告緡遍天下(이양가고민편천하),中家以上大抵皆遇告(중가이상대저개우고)。杜周治之(두주치지),獄少反者(옥소반자)。乃分遣御史廷尉正監分曹往(내분견어사정위정감분조왕),即治郡國緡錢(즉치군국민전),得民財物以億計(득민재물이억계),奴婢以千萬數(노비이천만수),田大縣數百頃(전대현수백경),小縣百餘頃(소현백여경),宅亦如之(댁역여지)。於是商賈中家以上大率破(어시상가중가이상대솔파),民甘食好衣(민투감식호의),不事畜藏之業(부사축장지산업),而縣官有鹽鐵緡錢之故(이현관유염철민전지고),用益饒矣(용익요의)。

 

복식(卜式)이 제나라 왕의 재상이 되었다. 그리고 양가(楊可)가 주관하는 고민(告緡, 자산을 자진 신고하지 않는 사람을 고발)이 천하에 두루 퍼져, 중산층 이상의 상인들은 대부분 고발되었다. 두주(杜周)가 고발된 사람들을 다스렸는데, 사건을 뒤집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이에 어사(御史), 정위(廷尉), 정감(正監) 등의 관원들을 조로 나누어 군군에 파견하여 고민 사건을 처리했다. 그 결과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재산은 억으로 계산할 정도였고, 노비의 수는 천만, 경작지는 큰 현의 경우에는 수백 경(), 작은 현의 경우에는 백 수십 경 정도를 얻었고, 주택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이에 중등 이상의 상인들은 대부분이 파산했고, 백성들은 겨우 달게 먹고 좋은 옷을 입는 것에 만족해야지 사업에 종사하면서 재산을 축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정은 소금과 철을 관영하고 민전을 고발한 연유로 재정이 더욱 풍요로워졌다. 함곡관을 더욱 확장되고, 경성에 좌우보(左右輔)를 설치했다.

 

 

 

'사마천 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춘추오패_진목공  (1) 2022.10.18
오패중 단연 으뜸 초장왕(楚莊王)  (1) 2022.10.08
진(晉) 제국의 興亡盛衰  (2) 2022.10.02
사기 세가_춘추 오패 제환공  (2) 2022.09.17
사마천 사기를 마치며....  (0) 2022.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