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비자/32. 外儲說左上

《外儲說左上》_經(경) 2

經(경)2

 

二(이)、人主之聽言也(인주지청언야),不以功用為的(부이공용위적),則說者多棘刺白馬之說(칙설자다극자백마지설);不以儀的為關(부이의적위관),則射者皆如羿也(칙사자개여예야)。人主於說也(인주어설야),皆如燕王學道也(개여연왕학도야);而長說者(이장설자),皆如鄭人爭年也(개여정인쟁년야)。是以言有纖察微難而非務也(시이언유섬찰미난이비무야),故李(고리)、惠(혜)、宋(송)、墨皆畫策也(묵개화책야);論有迂深閎大非用也(론유우심굉대비용야),故畏震瞻車狀皆鬼魅也(고외진첨차상개귀매야);言而拂難堅确非功也(언이불난견학비공야),故務(고무)、卞(변)、鮑(포)、介(개)、墨翟皆堅瓠也(묵적개견호야)。且虞慶詘匠也而屋壤(차우경굴장야이옥양),范且窮工而弓折(범차궁공이궁절)。是故求其誠者(시고구기성자),非歸餉也不可(비귀향야부가)。

 

둘째, 군주가 말을 들을 때, 그 효용을 목표로 삼지 않으면, 말하는 자는 가시와 흰 말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예의의 목표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쏘는 자는 모두 예와 같게 된다. 군주가 말을 들을 때, 모두 연왕이 도를 배우는 것과 같고, 길게 말하는 자는 모두 정나라 사람이 나이를 다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말에는 세밀하고 미묘한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 , 묵 모두가 책략을 그렸다. 논의에는 깊고 넓은 것이 있지만, 그것이 유용하지 않다. 그래서 진동을 두려워하고 수레의 형상을 바라보는 것은 모두 귀신과 같다. 말이 어려움을 거스르고 견고하지 않으면, 그것은 공이 아니다. 그래서 무, , , , 묵적 모두가 단단한 호리병박과 같다. 또한 우경은 장인이었으나 집이 무너졌고, 범은 공을 다했으나 활이 부러졌다. 그러므로 그 진실을 구하는 자는 돌아와서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說二

 

쓸모없는 것에 연연하지 마라

宋人有請為燕王以棘刺之端為母猴者(송인유청위연왕이극자지단위모후자),必三月齋然後能觀之(필삼월재연후능관지),燕王因以三乘養之(연왕인이삼승양지)。右御(우어)、治工言王曰(치공언왕왈):「臣聞人主無十日不燕之齋(신문인주무십일부연지재)。今知王不能久齋以觀無用之器也(금지왕부능구재이관무용지기야),故以三月為期(고이삼월위기)。凡刻削者(범각삭자),以其所以削必小(이기소이삭필소)。今臣治人也(금신치인야),無以為之削(무이위지삭),此不然物也(차부연물야),王必察之(왕필찰지)。」王因囚而問之(왕인수이문지),果妄(과망),乃殺之(내살지)。治人謂王曰(치인위왕왈):「計無度量(계무도량),言談之士多棘刺之說也(언담지사다극자지설야)。」

 

송나라 사람 중에 나무의 가시 끝에 원숭이 암컷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연왕에게 신청해 온 자가 있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목욕재계를 한 다음 그 원숭이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연왕은 그에게 3승의 땅을 주었다. 그러자 우측의 시종과 장인이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듣기에 임금님께서 열흘 동안이나 술자리를 폐하시지 못하옵니다. 그 송나라 사람은 임금님께서 그토록 오래 동안을 재계하면서까지 쓸모없는 물건을 구경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라 알고 계시기에 3개월이라는 기한을 정했을 것입니다. 무릇 조각이하 함은 조각하는 것이 반드시 작습니다. 지금 대장장이(冶人)로서 이를 조각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리 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왕이 반드시 이를 살펴야 합니다. 한번 조사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왕이 그 송나라 사람을 체포하여 조사한 결과 과연 망령된 망이어서 그를 죽였다. 대장장이는 왕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무계를 재는데 저울을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나무의 가시 끝에 원숭이를 만들어 붙이겠다는 말이가 됩니다.

 

一曰(일왈)。燕王好微巧(연왕호미교),衛人曰(위인왈):「能以棘刺之端為母猴(능이극자지단위모후)。」燕王說之(연왕설지),養之以五乘之奉(양지이오승지봉)。王曰(왕왈):「吾試觀客為棘刺之母猴(오시관객위극자지모후)。」客曰(객왈):「人主欲觀之(인주욕관지),必半歲不入宮(필반세부입궁),不飲酒食肉(부음주식육),雨霽日出視之晏陰之間(우제일출시지안음지간),而棘刺之母猴乃可見也(이극자지모후내가견야)。」燕王因養衛人不能觀其母猴(연왕인양위인부능관기모후)。鄭有臺下之治者謂燕王曰(정유대하지치자위연왕왈):「臣為削者也(신위삭자야),諸微物必以削削之(제미물필이삭삭지),而所削必大於削(이소삭필대어삭)。今棘刺之端不容削鋒(금극자지단부용삭봉),難以治棘刺之端(난이치극자지단)。王試觀客之削能與不能可知也(왕시관객지삭능여부능가지야)。」王曰(왕왈):「善(선)。」謂衛人曰(위위인왈):「客為棘削之(객위극삭지)?」曰(왈):「以削(이삭)。」王曰(왕왈):「吾欲觀見之(오욕관견지)。」客曰(객왈):「臣請之舍取之(신청지사취지)。」因逃(인도)

 

일설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연나라 왕은 미세 가공기술을 좋아했다. 어느 날 위나라 사람이 와서 말했다. “저는 나무의 가시 끝에 암원숭이를 조각할 수 있습니다.” 연왕은 기뻐하며 5승의 녹을 주었다. 잠시 후에 왕이 말했다. “나무의 가시 끝에 어미 원숭이를 조각한 것을 꼭 보고 싶다.” 위나라 사람이 말했다. “임금님께서 그것을 꼭 보고 싶으시면, 적어도 반년 동안은 후궁들의 방에 들어가시면 안 되며,또 그동안 음주와 육식을 삼가셔야 하며, 그리고 비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 날 때에 볕과 그늘사이에서 보시면 가시 끝에 반드시 어미 원숭이가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연왕은 어미 원숭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정나라 야인(冶人:대장장이)이 연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저는 조각칼을 만드는 자입니다.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 할지라도 조각 칼로 파기 마련이고, 또 깎이는 조각품은 칼보다 크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나무의 가시 끝에는 칼질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왕은 그 말을 인정하고 위나라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가시 끝에 조각을 하는 데 쓰는 연장은 무엇이냐.” 위나라 사람이 대답했다. “끌로 합니다.” 왕이 말했다. “그 끌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 위나라 사람은 숙소에 가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는 달아나버렸다.

 

원칙이 있으면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兒說(아설),宋人(송인),善辯者也(선변자야)。持白馬非馬也服齊稷下之辯者(지백마비마야복제직하지변자),乘白馬而過關(승백마이과관),則白馬之賦(칙고백마지부)。故籍之虛辭則能勝一國(고적지허사칙능승일국),考實按形不能謾於一人(고실안형부능만어일인)。

 

아열은 송나라 사람으로 말을 말이 유창하였다. 백마는 말이 아니라는 지론을 가지고 제나라 웅변가들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백마를 타고 국경을 통과할 때, 마세를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백마의 세금을 돌아보았다.) 이런 사실로 볼 때 공론(헛된 논리)으로는 한 나라 사람들을 이길 수 있지만 사실을 고찰하고 실질을 조사하게 되면 한 사람(검문소의 관리)조차 속일 수가 없다.

 

夫新砥礪殺矢(부신지려살시),彀弩而射(구노이사),雖冥而妄發(수명이망발),其端未嘗不中秋毫也(기단미상부중추호야),然而莫能復其處(연이막능복기처),不可謂善射(부가위선사),無常儀的也(무상의적야);設五寸之的(설오촌지적),引十步之遠(인십보지원),非羿(비예)、逢蒙不能必全者(봉몽부능필전자),有常儀的也(유상의적야);有度難而無度易也(유도난이무도역야)。有常儀的則羿(유상의적칙예)、逢蒙以五寸為巧(봉몽이오촌위교),無常儀的則以妄發而中秋毫為拙(무상의적칙이망발이중추호위졸),故無度而應之則辯士繁說(고무도이응지칙변사번설),設度而持之雖知者猶畏失也不敢妄言(설도이지지수지자유외실야부감망언)。今人主聽說不應之以度(금인주청설부응지이도),而說其辯不度以功(이설기변부도이공),譽其行而不入(예기행이부입관),此人主所以長欺(차인주소이장기)、而說者所以長養也(이설자소이장양야)。

 

무릇 새로이 갈고닦아 날카로운 화살을 쏠 때, 비록 어두운 곳에서 마구 쏘아도, 이 화살이 때로는 가을에 자란 터럭만큼 작은 물건에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곳에 두 번씩이나 맞출 수는 없을 것이므로 훌륭한 사수라 할 수 없는데, 이는 일정한 과녁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섯 치의 표적을 설치하고, 열 걸음 물러나서 쏘게 되면, 예나 봉몽이 아닌 이상, 온전히 맞추지 못하는 것은 일정한 표적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법도가 있으면 하기 어렵고, 법도가 없으면 하기 쉽다. 일정한 표적이 있으면, 예나 봉몽이 다섯 치의 표적을 맞추어도 활을 명수라 할 수 있지만 일정한 표적이 없으면 아무렇게나 쏘아 터럭 같이 작은 물건을 맞추었다 할지라도 서툴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법도가 없이 대응하면 변설가들은 멋대로 떠들지만 법도가 있으면 그것을 지키묘 비록 지혜로운 변설가라 할지라도 실언하지 않을까 두려워 망령되이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군주가 말을 듣는 태도는 법도에 따라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설만 좋아하고 또 공로를 헤아리지 않으며 그 행위만 칭찬하고 기준()에 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주는 언제나 변설가의 거짓을 기르는 이유가 되고, 변설가들은 언제까지나 군주에게 녹을 먹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을 믿어 신하를 죽이다.

 

客有教燕王為不死之道者(객유교연왕위부사지도자),王使人學之(왕사인학지),所使學者未及學而客死(소사학자미급학이객사)。王大怒(왕대노),誅之(주지)。王不知客之欺己(왕부지객지기기),而誅學者之晚也(이주학자지만야)。夫信不然之物(부신부연지물),而誅無罪之臣(이주무죄지신),不察之患也(부찰지환야)。且人所急無如其身(차인소급무여기신),不能自使其無死(부능자사기무사),安能使王長生哉(안능사왕장생재)?

 

연나라 왕에게 죽지 않는 도를 가르쳐 주겠다는 빈객이 있었다. 왕은 사람을 시켜 그 도를 배우도록 했다. 그런데 다 배우기도 전에 그 나그네가 죽어버렸다. 왕은 화가 나서 배워오도록 보냈던 자를 죽여버렸다. 왕은 나그네가 자기를 기만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배우러 간 사람이 늦음을 처벌한 것이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을 믿어 죄 없는 신하를 처벌한 것은 사태를 볼 줄 아는 총명함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몸이다, 그런데 자기 몸도 불로장생하지 못하면서 어찌 왕에게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말을 섞지 말아야 할 대상

 

鄭人有相與爭年者(정인유상여쟁년자),一人曰(일인왈):「吾與堯同年(오여요동년)。」其一人曰(기일인왈):「我與黃帝之兄同年(아여황제지형동년)。」訟此而不決(송차이부결),以後息者勝耳(이후식자위승이)。

 

정나라 사람 중에 자기가 연장자라고 서로 우기는 자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요임금과 동갑이다.”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황제의 형과 동갑이다.” 이 일로 소송까지 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마지막까지 우기는 자가 승리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귀신을 그리는 것이 쉽다

 

客有為周君畫莢者(객유위주군화협자),三年而成(삼년이성),君觀之(군관지),與髹莢者同狀(여휴협자동상),周君大怒(주군대노),畫莢者曰(화협자왈):「築十版之牆(축십판지장),鑿八尺之牖(착팔척지유),而以日始出時加之其上而觀(이이일시출시가지기상이관)。」周君為之(주군위지),望見其狀盡成龍蛇禽獸車馬(망견기상진성룡사금수차마),萬物之狀備具(만물지상비구),周君大悅(주군대열)。此莢之功非不微難也(차협지공비부미난야),然其用與素髹筴同(연기용여소휴협동)。

주왕을 위해서 꼬투리에 그림을 그린 나그네가 있었다.  3년만에 완성되었는데 주왕이 그것을 보니 옻칠한 꼬투리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크게 노했다. 그 나그네가 이렇게 말했다. “높이 두 길의 담을 쌓으시고 그곳에 여덟 자 폭의 창문을 내어 해 뜰 무렵이 되거든 이 꼬투리를 창문에 비추어 보십시오.” 주왕은 나그네가 시키는 대로 만들어 꼬투리에 그린 무늬를 보았더니, 그것은 용, 금수, 거마의 모양을 하고 있어 만물이 모조리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왕은 무척 기뻐했다. 이 꼬투리와 같은 작은 것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미묘하고 어려운 일이기는 했지만 실용적인 면으로 볼 때에는 옻칠한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客有齊王畫者(객유위제왕화자),齊王問曰(제왕문왈):「畫孰最難者(화숙최난자)?」曰(왈):「犬馬最難(견마최난)。」「孰最易者(숙최역자)?」曰(왈):「鬼魅最易(귀매최역)。夫犬馬(부견마)、人所知也(인소지야),旦暮罄於前(단모경어전),不可類之(부가류지),故難(고난)。鬼魅(귀매)、無形者(무형자),不罄於前(부경어전),故易之也(고역지야)。」

 

제나라 왕을 위하여 그림을 그리는 나그네가 있었는데 제왕이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가장 그리기 어려운가.” 나그네가 대답했다. “개나 말이 가장 어렵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엇이 가장 그리기 쉬운가.” 나그네가 대답했다. “귀신을 그리기가 가장 쉽습니다. 개나 말 따위는 누구나 아침저녁으로 보고 있는 짐승이기 때문에 꼭 그대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귀신은 형체가 눈에 뜨이지 않으므로 아무렇게나 그려도 되니 아주 쉽습니다.

 

구멍 뚫을 수 없는 표주박은 쓸모가 없다

 

齊有居士田仲者(제유거사전중자),宋人屈穀見之曰(송인굴곡견지왈):「穀聞先生之義(곡문선생지의),不恃仰人而食(부시앙인이식)。今穀有樹瓠之道(금곡유수호지도),堅如石(견여석),厚而無竅(후이무규),獻之(헌지)。」仲曰(중왈):「夫瓠所貴者(부호소귀자),謂其可以盛也(위기가이성야)。今厚而無竅(금후이무규),則不可剖以盛物(칙부가부이성물),而任重如堅石(이임중여견석),則不可以剖而以斟(칙부가이부이이짐),吾無以瓠為也(오무이호위야)。」曰(왈):「然(연),穀將棄之(곡장기지)。今田仲不恃仰人而食(금전중부시앙인이식),亦無益人之國(역무익인지국),亦堅瓠之類也(역견호지류야)。」

 

제나라에 전중이라는 은자가 있었다. 송나라 사람인 굴곡이 그를 만나서 말하였다. “제가 알기로 선생께서는 남에게 의지하며 먹고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표주박을 기르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으로 기른 표주박은 단단하기가 돌과 같고 두터워 구멍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드리겠습니다.” 전중이 대답했다. “표주박의 귀한 쓸모는 물건을 넣어야 쓸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터워 구멍을 뚫을 수 없는 즉 쪼개어 물건을 채울 수 없으며, 무거운 짐을 지탱하는 것이 돌처럼 단단하다면, 쪼개서 사용할 수 없으니, 나는 이 호리병박을 쓸 수 없습니다.” 굴곡이 말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그것을 버릴 작정이었습니다.” 어쨌든 전중은 남의 덕택에 먹고 살기를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렇다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없다. 이것은 돌 같은 표주박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전문가의 말을 들어라

 

虞慶為屋(우경위옥),謂匠人曰(위장인왈):「屋太尊(옥태존)。」匠人對曰(장인대왈):「此新屋也(차신옥야),塗濡而椽生(도유이연생)。」虞慶曰(우경왈):「不然(부연)。夫濡塗重而生椽撓(부유도중이생연요),以撓椽任重塗(이요연임중도),此宜卑(차의비)。更日久則塗乾而椽燥(경일구칙도건이연조),塗乾則輕(도건칙경),椽燥則直(연조칙직),以直椽任輕塗(이직연임경도),此益尊(차익존)。」匠人詘(장인굴),為之而屋壞(위지이옥괴)。

 

우경이 새로 집을 지었는데 거의 완성될 무렵 목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이 너무 높다.” 목수가 대답했다. “이것은 새집입니다. 바른 흙이 아직 마르지 않았고 서까래가 생생합니다.” 그러나 우경이 다시 말했다. “그렇지 않다. 축축한 흙은 무거운 법이며, 서까래는 굽는 법이다. 굽은 서까래로 무거운 흙을 지탱하고 있으니 지금은 낮은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해가 뜨게 되고 날씨가 가물게 되면 바른 흙도 마를 것이고, 서까래도 마르게 된다. 흙이 마르면 가벼워지고, 서까래가 마르면 곧게 선다. 반듯해진 기둥이 가벼운 흙을 지탱하게 되면 집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목수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우경이 시키는 대로 손질을 하였더니 마침내 집이 무너지고 말았다.

 

一曰(일왈)。虞慶將(우경장위옥),匠人曰(장인왈):「材生而塗濡(재생이도유)。夫材生則撓(부재생칙요),塗濡則重(도유칙중),以撓任重(이요임중),今雖成(금수성),久必壞(구필괴)。」虞慶曰(우경왈):「材乾則直(재건칙직),塗乾則輕(도건칙경)今誠得乾(금성득건),日以輕直(일이경직),雖久必不壞(수구필부괴)。」匠人詘(장인굴),作之(작지),成(),有間(유간),屋果壞(옥과괴)

 

일설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우경이 집을 신축하려고 하는데 목수가 이렇게 말했다. “재목은 생생하고 흙은 축축합니다. 재목이 생생한 경우에는 굽어지고 흙이 축축하면 무거운 법입니다. 굽은 재목으로 무거운 흙을 지탱하게 되면 집이 완성된 뒤에도 오래가지 않고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우경이 말했다. “재목은 마르면 반듯해질 것이고, 흙이 마르면 가벼워진다. 집이 완성되어 마르게 되면 날이 갈수록 흙은 가벼워질 것이며, 나무도 반듯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래되어도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목수는 어쩔 수 없이 집을 세우게 되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무너지고 말았다.

 

范且曰(범저왈):「弓之折必於其盡也(궁지절필어기진야),不於其始也(부어기시야)。夫工人張弓也(부공인장궁야),伏檠三旬而蹈弦(복경삼순이도현),一日犯機(일일범기),是節之其始而暴之其盡也(시절지기시이폭지기진야),焉得無折(언득무절)。」范且曰(범차왈),「不然(부연)。伏檠一日而蹈弦(복경일일이도현),三旬而犯機(삼순이범기),是暴之其始而節之其盡也(시폭지기시이절지기진야)。」工人窮也(공인궁야),為之(위지),弓折(궁절)。

 

범저가 말했다. “활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완성될 무렵이지 만들기 시작할 때가 아니다. 활을 만드는 사람이 활을 만들 때 30일 동안이나 나무를 틀에 넣어 둔 다음, 발로 밟고서 줄을 걸며, 하루 두었다가 곧 활을 쏜다. 이것은 처음에 천천히 하다가 나중에 거칠게 다루는 격이 된다. 어찌 부러지지 않겠는가? 내가 활을 만드는 법은 그와는 달리 틀에는 하루 넣어두고, 발로 밟아 줄을 건 다음, 30일 두었다가 활을 쏘아보는 것이다. 이 경우는 처음에는 거칠게 하되 나중에는 천천히 하는 격이 된다.” 활 만드는 사람은 할 말이 없어 그가 말한 대로 하였더니 활은 부러지고 말았다.

 

실정에 맞지 않는 말은 막아라

 

范且(범저)、虞慶之言皆文辯辭勝而反事之情(우경지언개문변사승이반사지정),人主說而不禁(인주설이부금),此所以敗也(차소이패야)。夫不謀治強之功(부부모치강지공),而豔乎辯說文麗之聲(이염호변설문려지성),是卻有術之士而任壞屋折弓也(시각유술지사이임괴옥절궁야)。故人主之於國事也(고인주지어국사야),皆不達乎工匠之搆屋張弓也(개부달호공장지구옥장궁야),然而士窮乎范且(연이사궁호범차)、虞慶者(우경자),為虛辭(위허사)、其無用而勝(기무용이승),實事(실사)、其無易而窮也(기무역이궁야)。人主多無用之辯(인주다무용지변),而少無易之言(이소무역지언),此所以亂也(차소이란야)。今世之為范且(금세지위범차)、虞慶者不輟(우경자부철),而人主說之不止(이인주설지부지),是貴敗折之類而以知術之人為工匠也(시귀패절지류이이지술지인위공장야)。不得施其技巧(부득시기기교),故屋壞弓折(고옥괴궁절)。知治之人不得行其方術(지치지인부득행기방술),故國亂而主危(고국란이주위)。

 

범저나 우경의 논리는, 말재간이 좋고 훌륭하지만 실정에 맞지 않는데도, 군주는 그런 의논을 좋아하며 금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패의 원인이 된다. 대체로 국가를 다스리고, 나라를 강하게 하는 공을 도모하지 않고, 화려한 말솜씨에 빠지며, 정치술를 터득한 현명한 인사를 배척한다는 것은 집을 부수고 활을 부러뜨리는 부류에게 국가 경영을 맡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군주는 국정에 있어서, 모두 집을 짓고 활을 당기는 장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정치를 터득한 인사가 범저나 우경과 같은 사람에게 꼼짝 못 하는 것(), 허황한 말을 하고 그 소용없는 것이 승리하기 때문이며, 실제로는 무용무능한 것이다. 군주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변설을 찬양하고, 명확한 말을 적게 하면 이는 국정이 문란해지는 이유다.

그런데 요즘 우경이나 범저와 같은 인물이 계속 나타나며, 더욱이 군주가 이것을 좋아하여 그치지 아니하니 이는 집을 무너뜨리고 활을 부러뜨리는 웅변을 귀하게 여기고, 정치술을 터득한 인사를 목수나 활을 만드는 장인으로 만드는 일과 같다. 목수나 활을 만드는 사람이 기술을 실천할 수 없게 되므로 집은 파괴되고 활은 부러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치를 터득한 자가 전문적인 방법을 행하지 못하게 되므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군주는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소꿉장난으로는 배부를 수 없다_ 한비자의 자신의 조국 韓나라에 대한  평가

 

夫嬰兒相與戲也(부영아상여희야),以塵為飯(이진위반),以塗為羹(이도위갱),以木為胾(이목위자),然至日晚必歸饟者(연지일만필귀양자),塵飯塗羹可以戲而不可食也(진반도갱가이희이부가식야)。夫稱上古之傳頌(부칭상고지전송),辯而不愨(변이부각),道先王仁義而不能正國者(도선왕인의이부능정국자),此亦可以戲而不可以為治也(차역가이희이부가이위치야)。夫慕仁義而弱亂者(부모인의이약란자),三晉也(삼진야);不慕而治強者(부모이치강자),秦也(진야);然而未帝者(연이미제자),治未畢也(치미필야)

 

아이들이 모여서 놀 때에는 흙을 밥으로 하고 구정물을 국물로 하며, 나뭇조각을 고기로 한다. 그러나 날이 저물면 집에 돌아가서 식사를 하는 것은 흙이나 구정물이나 나뭇조각은 소꿉장난일 뿐 식사 대신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고대부터 전승해 온 것을 칭송하고 변설한다고 하여 성실하다고 할 수 없으며, 또 선왕의 인의를 말한다 하여 국정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것은 소꿉장난은 될지 몰라도 실제로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못 되는 것이다. 생각건대 인의를 숭상하여 나라가 약화되고 혼란에 빠진 것은 한나라와 위나라와 초나라였는데, 인의를 소중히 여기지도 않고 나라가 부강해진 것은 진(秦)나라였다. 그러나 그러한 진나라가 아직도 황제가 되지 못한 것은 정치(政治)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비자 > 32. 外儲說左上 '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外儲說左上》_ 經 四  (1) 2024.11.24
《外儲說左上》_ 經 三  (13) 2024.11.05
외저설좌상 《外儲說左上》_이야기의 바다  (3) 2024.10.27
七術:挾智  (0) 2024.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