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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十過

10_3 십과(女樂,遠遊,聽於忠臣)

 

 

 

女樂 -여자와 음악에 빠지면 나라를 망치는 근본이 된다.

 

진목공과 백리해

 

奚謂耽於女樂?昔者戎王使由余聘於秦,穆公問之曰:「寡人嘗聞道而未得目見之也,願聞古之明主得國失國何常以?」由余對曰:「臣嘗得聞之矣,常以儉得之,以奢失之。」穆公曰:「寡人不辱而問道於子,子以儉對寡人何也?」由余對曰:「臣聞昔者堯有天下,飯於土簋,於土,其地南至交趾,北至幽都,東西至日月之所出入者,莫不賓服。堯禪天下,虞舜受之,作食器,斬山木而財之,削鋸修之跡流漆墨其上,輸之於宮以食器,諸侯以益侈,國之不服者十三。

 

 

舜禪天下而傳之於禹,禹作祭器,墨染其外,而朱畫其內,縵帛茵,蔣席頗緣,觴酌有采,而樽俎有飾,此彌侈矣,而國之不服者三十三。夏后氏沒,殷人受之,作大路,而建九旒,食器雕琢,觴酌刻鏤,四壁堊墀,茵席雕文,此彌侈矣,而國之不服者五十三。

 

 

君子皆知文章矣,而欲服者彌少,臣故曰儉其道也。」由余出,公乃召內史廖而告之,曰:「寡人聞鄰國有聖人,敵國之憂也。今由余,聖人也,寡人患之,吾將奈何?」內史廖曰:「臣聞戎王之居,僻陋而道遠,未聞中國之聲,君其遺之女樂,以亂其政,而後由余請期,以疏其諫,彼君臣有間而後可圖也。」君曰:「諾。」

 

 

乃使史廖以女樂二八遺戎王,因由余請期,戎王許諾。見其女樂而說之,設酒張,日以聽樂,終歲不遷,牛馬半死。由余歸,因諫戎王,戎王弗聽,由余遂去之秦,秦穆公迎而拜之上卿,問其兵勢與其地形,以得之,兵而伐之,兼國十二,開地千里。故曰:耽於女樂,不顧國政,亡國之禍也。

 

 

해위탐어여낙 석자융왕사유여빙어진 목공문지왈 과인상문도이미득목견지야 원문고지명주득국실국하상이 유여대왈 신상득문지의 상이검득지이사실지 목공왈 과인부욕이문도어자 자이검대과인하야 유여대왈 신문석자요유천하 반어토궤,

음어토형 기지남지교지 배지유도 동서지일월지소출입자 막부빈복 요선천하 우순수지 작위식기,참산목이재지,삭거수기적류칠묵기상 수지어궁이위식기 제후이위익치 국지부복자십삼


순선천하이전지어우 우작위제기 묵칠기외 이주화기내 만백위인,장석파연상작유채,이준조유식 차미치의 이국지부복자삼십삼 하후씨몰 은인수지 작위대노 이건구류 식기조탁 상작각루 사벽악지 인석조문 차미치의 이국지부복자오십삼

 

군자개지문장의 이욕복자미소 신고왈검기도야 유여출 공내소내사료이고지 왈 과인문린국,유성인 적국지우야,금유여 성인야 과인환지,오장나하내사료왈 신문융왕지거 벽누이도원 미문중국지성 군기견지녀낙 이난기정 이후위유여청기 이소기간 피군신유간이후가도야 군왈 낙


내사사료이녀낙이팔유융왕 인위유여청기 융왕허낙 견기녀낙이설지 설주장음 일이청낙 종세부천,우마반사 유여귀 인간융왕 융왕불청 유여수거지진 진목공영 이배지상경 문기병세여기지형,기이득지 거병이벌지 겸국십이 개지천리 고왈 탐어녀낙 부고국정 망국지화야

 

 

 

 

 

 

무엇을 일러 여자와 음악에 빠진다고 하는가? 옛날 융왕이 유여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진목공이 물어 이르길 [과인이 일찍이 도를 들은 적이 있으나 눈으로 보지는 못하였소 옛날 현명한 군주의 나라를 얻고 잃음이 항상 무엇으로 하였는지 들어보길 원하오!] 유여 대답하길 [신이 일찍이 들었사온데. 항상 근검하면 얻고 사치로서 잃어 버린다 하였습니다] 진 목공 이르길 [과인은 그대에게 도를 묻는 것을 욕되다 생각지 않는데 그대가 검소함으로 대답을 하니 과인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유여 대답하길 [신이 옛날에 요 임금이 천하에 있을 때 들은 것은 질그릇으로 음식을 먹을 정도로 검소하였으나 그 영토는 남으로 교지(베트남 북부 통킹) 북으로 유도(이승의 마지막 땅) 동서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곳까지 복종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요가 천하를 선양하고 순임금이 받으니(우는 순임금의 姓) 식기를 만들려고 산의 나무를 베어 재료삼고, 깍고 자르고 다듬어서 그 위에 검은 옷칠을 하여 식기를 만드니 궁으로 들여 식기로 사용하니 (이를 본) 제후들이 사치 한다 하여 나라에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13개였습니다.

 

 

순임금이 천하를 선양하여 우임금에게 전할 적 우가 제기를 만듦에 그 밖은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안은 붉은색으로 칠하고 깔개는 비단으로 만들고 풀자리는 선을 둘러 만들고 술잔에 채색하고 나무통과 접시에 채색을 하니 이는 더욱 사치하다 하여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33국이나 되었습니다. 하후씨가 죽고 은나라가 이어 받아 큰 길을 내고(큰 수레가 지나는) 수레에 아홉 개의 술을 다는 깃대를 세우고 식기에 깍고 새긴 문양을 넣고 술잔에 그림을 세기고 장식을 달고 네 벽면에 흰색을 칠하고 깔 자리에 문양을 넣고 이는 더욱 사치스러워서, 나라에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53국이나 되었다.

 

 

군자(귀족들)는 모두 다 문채(아름다움, 사치스러움)을 알아가자 복종하고자 하는 이는 더욱 적어 들어 신이 이런 연유로 검소함이 그 도라 하였습니다. 유여가 물러가고 목공은 이내 내사 요를 불러 말하여 이르길 [과인이 들은바 이웃나라의 성인이 있음은 적국의 우환이라 하였소. 지금 유여는 성인이고 과인의 근심거리이니 내 장차 어찌하면 좋겠소] 내사 요가 이르길 [신이 듣건 데 융왕의 거처가 궁벽하고 비루하며 멀리 떨어져있고 중원의 음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고 군주께서 여자와 악사를 남기시어 그 정치를 혼란케 하시고 그후 유여의 귀국시기를 늦춰 달라하시고 융왕에 간하는 시간을 늦추어 저들 군신에 틈을 있게 한후 계책을 도모하십시오. 군주왈[좋소]

 

 

이내 내사 요로하여 여인들과 악사 28명을 융왕에게 남기어 이로 인해 유여의 귀국시기 늦추는 청을 하자 융왕이 허락하였다 그 여인과 악사를 보고 기뻐하며 술과 음식을 베풀어 날마다 음악을 들었고 그 해가 다 가도록 자리를 옮기지 않자 우마가 반이나 죽었다. 유여가 돌아와 융왕에 간하니 융왕은 들어주지 않자 유여는 마침내 떠나 진나라로 갔고 진목공이 반갑게 맞이하고 상경에 임명하였고 그 융국의 병력과 그 지형에 대해 물어 얻어서 병사를 일으켜 정벌하여 20국을 병합하고 땅을 천리나 넓혔다 그러므로 이르길 여악을 탐하면 국정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잃는 화가 있는 것이다.

 

()은 목()으로도 쓴다. 춘추 시대 진나라의 제9대 군주(재위, 기원전 660-기원전 621). 이름은 임호(任好), 진덕공(秦德公)의 셋째 아들이며,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다. 재위 기간 동안 어진 인재를 힘써 구해 백리해(百里奚)과 건숙(蹇叔) 등을 등용해 모신(謀臣)으로 삼았고, 올바른 정치에 전력을 기울여 국세가 날로 강해졌다. 동으로는 하서(河西)를 빼앗고 서로는 서융(西戎)을 쳐서 패자가 되어 국세가 급격히 발전했다. 일찍이 오랫동안 진()나라의 견제를 받았는데, 진혜공(晉惠公)을 패배시키고 압박하여 태자 어()를 인질로 오게 했다. 또 병사를 동원해 진공자(晉公子) 중이(重耳)가 즉위하도록 도우니, 이가 바로 진문공(晉文公)이다. ()나라를 치려다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패배, 그 실패를 뉘우치고 ‘진서(秦誓)’를 만들어 보복했다. 39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목공 [秦穆公]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遠遊 나라 밖 멀리 여행을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다.

 

 

 

奚謂離內遠遊?昔者田成子遊於海而樂之,號令諸大夫曰:「言歸者死。」涿聚曰:「君遊海而樂之,奈臣有圖國者何?君雖樂之,將安得?」田成子曰:「寡人布令曰言歸者死,今子犯寡人之令。」援戈將擊之。涿聚曰:「昔桀殺關龍逢而紂殺王子比干,今君雖殺臣之身以三之可也。臣言國,非身也。」延頸而前曰:「君擊之矣!」君乃釋戈趣駕而歸,至三日,而聞國人有謀不內田成子者矣。田成子所以遂有齊國者,涿聚之力也。故曰:離內遠遊,則危身之道也

 

 



해위리내원유 석자전성자유어해이낙지,호령제대부왈 언귀자사안탁취왈 군유해이낙지 나신유도국자하 군수낙지 장안득 전성자왈 과인포령왈언귀자사,금자범과인지령 원과장격지 안탁취왈석걸살관룡봉이주살왕자비간,금군수살신지신이삼지가야 신언위국,비위신야 연경이전왈,군격지의 군내석과취가이귀 지삼일 이문국인유모 부내전성자자의 전성자소이수유제국자 안탁취지력야 고왈,리내원유칙위신지도야

 

 

 

무엇을 일러 국내 떠나 멀리 여행한다 하는가? 옛적 전성자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 즐거움에 빠져 대부들에게 호령하길 [돌아가자 말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안탁취가 말하길 [군주께서 바닷가에 노는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 어떤 신하가 나라를 도모(빼앗으려)하려는 자가 있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군주께서 비록 그것을 즐기시나 장차 편안하시겠습니까? 전성자 말하길 [과인이 돌아가자고 말하는 자 죽인다 하였다 지금 그대가 과인의 명을 어기였다] 창을 들어 그를 치려 하자 안탁취 이르길 [옛날 걸은 관룡봉을 죽이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습니다. 지금 군주가 비록 신을 죽여 충신 셋을 만들려 합니다. 신이 나라를 위해 말하는 것이지 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목을 늘이고 앞에서 말하길 [군주는 저를 치십시오] 군주는 창을 놓고 수레를 재촉하여 돌아갔다 3일이 지나 나라사람이 전성자가 성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모의를 하였음을 들었다. 전성자는 마침내 제나라에 있게 된 것은 안탁취의 힘이었다. 그러므로 이르길 국내를 떠나 먼 여행은 자신을 위험하게 하는 길이다.

 

 

 

聽於忠臣 충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이유

 

제환공과 간신들(역아 수조 위공자)

 

奚謂過而不聽於忠臣?昔者齊桓公九合諸侯,一匡天下,五伯長,管仲佐之。管仲老,不能用事,休居於家,桓公從而問之曰:「仲父家居有病,即不幸而不起此病,政安遷之?」管仲曰:「臣老矣,不可問也。雖然,臣聞之,知臣莫若君,知子莫若父,君其試以心決之。」君曰:「鮑叔牙何如?」管仲曰:「不可。鮑叔牙人,剛愎而上悍。剛則犯民以暴,愎則不得民心,悍則下不用,其心不懼。非霸者之佐也。」公曰:「然則豎刁何如?」管仲曰:「不可。夫人之情莫不愛其身,公妒而好內,豎刁自治內,其身不愛,又安能愛君?」

 

公曰:「然則衛公子開方何如?」管仲曰:「不可。齊、衛之間不過十日之行,開方事君,欲適君之故,十五年不歸見其父母,此非人情也,其父母之不親也,又能親君乎?」公曰:「然則易牙何如?」管仲曰:「不可。夫易牙君主味,君之所未嘗食唯人肉耳,易牙蒸其子首而進之,君所知也。人之情莫不愛其子,今蒸其子以膳於君,其子弗愛,又安能愛君乎?」

 

 

公曰:「然則孰可?」管仲曰:「隰朋可。其人也,堅中而廉外,少欲而多信。夫堅中則足以表,廉外則可以大任,少欲則能臨其眾,多信則能親鄰國,此霸者之佐也,君其用之。」君曰:「諾。」居一年餘,管仲死,君遂不用隰朋而與豎刁。刁事三年,桓公南遊堂阜,豎刁率易牙、衛公子開方及大臣亂,桓公渴餒而死南門之寢、公守之室,身死三月不收,蟲出於戶。故桓公之兵橫行天下,五伯長,卒見於其臣,而滅高名,天下笑者,何也?不用管仲之過也。故曰:過而不聽於忠臣,獨行其意,則滅其高名人笑之始也。

 

 



해위과이부청어충신 석자제환공구합제후 일광천하 위오백장 관중좌지,관중노,부능용사 휴거어가 환공종이문지왈 중부가거유병 즉부행이부기차병 정안천지, 관중왈 신노의 부가문야 수연 신문지,지신막야군 지자막야부 군기시이심결지 군왈포숙아하여 관중왈 부가 포숙아위인 강퍅이상한 강칙범민이포 퍅칙부득민심,한칙하부위 용 기심부구 ,비패자지좌야 공왈 ,연칙수조하여 관중왈부가 ,부인지정막부애기신, 공투이호내 수조자분이위치내,신부애 우안능애군,

 

공왈,연칙위공자개방하여?관중왈부가,제위지간부과십일지항 ,방위사군,욕적군지고 ,십오년부귀견기부모 ,차비인정야기부모지부친야,우능친군호 ,공왈 ,연칙역아하여 ,관중왈,부가 부역아위군주미,군지소미,상식유인육이,역아증기자수이진지 군소지야,인지정막부애기자 금증기자이위선 어군 기자불애 우안능애군호



공왈연칙숙가 관중왈 습붕가 기위인야견중이렴외,소욕이다신 부견중칙족이위표렴외칙가이대임 소욕칙능림기중 다신칙능친린국 차패자지좌야 군기용지 군왈 낙거일년여.관중사 군수부용습붕이여수조 조수사삼년,환공남유당부 수조률역아 위공자개방급대신위난,환공갈뇌이사남문지침 공수지실 신사삼월부수 충출어호 고환공지병횡항천하 위오백장 졸견시어기신 이멸고명 천하소자 하야 부용관중지과야 고왈 과이부청어충신 독항기의 칙멸기고명위인소지시야

 

 

무엇을 가리켜 실수하고도 충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르는가? 옛날 제환공이 제후를 아홉 번 모으고 천하를 하나로 하여 오패의 패자가 되었을 때 관중이 보좌하였다 관중이 늙어 일을 행할 수 없고 집집에 쉴 때 환공이 찾아와 문병하며 이르길 [중보께서 병이 있어 집에 기거하니 즉 불행히도 이병으로 일어자지 못하면 정치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습니까? ] 관중이르길 [신이 늙어 물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신이 듣기로 신하를 앎에 군주 따를 자 없고 아들을 아는데 아비만 한자 없다 하였으니 군주는 마음이 결정하는 데로 쓰시기 바랍니다.] 군주 이르길 [포숙아는 어떠하오] 관중 이르길 [불가합니다. 포숙아는 성품이 강직하고 고집이 강해 윗사람에게 사납습니다. 강직한 즉 백성을 난폭하게 다루며 고집 센 즉 민심을 얻지 못하며, 사나운 즉 아랫사람을 쓰지 못하는 것 그 마음이 두려움이 없습니다. 패왕의 보좌역으로는 아닙니다.] 공 이르길 [그러면 수조는 어떠하오?] 관중 이르길[불가합니다. 무릇 사람의 본성은 그 자신을 아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은 질투심이 강하고 여색을 좋아하기에 수조는 스스로 불알을 까고 궁정을 다스리는 내시가 되었습니다. 그 자신을 아끼지 않는데 어찌 군주를 아낄 수 있겠습니까?

 

공이 이르길 [그러면 위공자 개방은 어떠하오] 관중 이르길 [불가합니다. , 위는 십일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군주의 비위를 맞추려 15년 동안 그 부모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닙니다. 그 부모를 친애하지 않는데 어찌 능히 군주를 친애할 수 있겠습니까? 공이 이르길 그러하면 역아는 어떻소] 관중 이르길 [불가합니다. 무릇 역아는 군주의 미각을 위하는데 군주가 일찍이 맛보지 못한 것이 인육이라 하여 역아는 그 아들을 삶아서 드린 것을 군주도 아는 바입니다. 사람의 정리는 그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자식을 삶아 군주의 음식으로(반찬)으로 하는 것은 그 자식을 아끼지 않는데 또한 어찌 그 군주를 아낄 수 있겠습니까]

 

 

공이 이르길 [그러한 즉 누가 가하겠는가] 관중 이르길 [습붕이 가합니다. 그 사람됨은 안으로 견고하고 밖으로 청렴하고 욕심이 작고 신의가 두텁습니다. 무릇 마음이 단단하면 사표가 되기에 족하고 밖으로 청렴하면 큰일을 맡기기에 족하고 욕심이 작은즉 대중을 다스릴 수 있고 믿음이 두터우면 이웃나라와 친교 할 수 있고 이는 패왕를 보좌를 할 수 있으니 군주께서는 그를 등용하십시오.] 군주 이르길 [알겠소] 일 여 년 이지나고 관중이 죽자 환공이 습붕을 등용하지 않고 수조를 기용하였다. 수조가 일을 맡고 삼년 환공이 남쪽 당부로 외유를 떠나자 수조는 역아, 위공자 개방과 대신까지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환공은 굶주려서 남문의 초소에서 죽었다. 환공이 그 방을 지키며 몸이 죽어 3개월이 지나도 수습하지 않아 시체에서 벌레(구더기)가 나왔다. 그러므로 환공의 군사가 천하를 횡행하며 오왕 패자가 되었으나 마침내 그 신하에 시해를 당하고 그 높은 명성이 사라지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무엇인가? 관중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이르길 과실을 범하고 충신의 말을 듣지 않고 그 홀로 마음대로 행한 즉 그 명성은 사라지고 타인의 웃음거리가 시작된 것이다.

 

 

제환공
[
齊桓公 ]

출생 - 사망
미상 ~ BC 643
춘추 시대 제나라의 국군(國君). 성은 강()씨고, 이름은 소백(小白)이다. 양공(襄公)의 동생이다. 처음에 거()로 달아났다가 양공이 피살되자 거에서 귀국해 즉위했다. 관중(管仲)을 재상에 등용하여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시도했다.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명분으로 삼아 북쪽으로 융적(戎狄)을 정벌하고 그들이 중원을 넘보는 것을 막았다. 남쪽으로는 강대국 초()나라를 억제하여 소릉(召陵)에서 회맹하도록 했다. 주왕실(周王室)을 안정시켜 주혜왕(周惠王)이 죽자 태자 정()을 받들어 즉위시키니, 바로 주양왕(周襄王)이다. 여러 차례 제후들을 회합하여 맹약을 세우는 등 위망(威望)을 떨쳤다. 춘추 시대 최초의 패주(覇主). 재위 기간은 43년이고, 시호는 환()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제환공 [齊桓公]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 1. 20., 이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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