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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解老

해노6_세상의 앞에 서지 않는다

1.세상의 앞에 서지 않는다

 

 

近乎,遊於四極;以遠乎,常在吾側;暗乎,其光昭昭;以明乎,其物冥冥;而功成天地,和化雷霆,宇內之物,恃之以成。凡道之情,不制不形,柔弱隨時,與理相應。萬物得之以死,得之以生;萬事得之以敗,得之以成。道譬諸若水,溺者多之即死,渴者適之即生。譬之若劍戟,愚人以行忿則禍生,聖人以誅暴則福成。故得之以死,得之以生,得之以敗,得之以成。

 

(도는) 가깝다고 하면 사방의 끝에 노닐고, 멀다고 하면  나의 곁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어둡다 하면 그 빛은 밝고 ; 밝은가 하면 그 사물은 어둡고그 공은 천지를 이루고 그 조화로운 기운은 천둥과 번개를 이루며, 우주 내의 사물은 그것에 의지하여 이뤄진다. 무릇 도의 실정은 제약도 없고 형식도 없고, 부드럽고 약하고 때에 따라 작용하여 만물의 이치와 서로 상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만물은 그 도를 얻어 사멸하고 그것을 얻어 생겨난다; 만사는 그 도를 얻어 실패하고 그 도를 얻어 성공한다. 도는 비유하 자면 물과 같아서 빠지면 많이 먹어 죽고 갈증 나면 적당이 먹어 살아난다. 도는 비유컨대 칼과 창 같아서 어리석은 자가 분노해 휘두르면 화가 생기지만 성인이 난폭함을 벌주는 것으로 사용하면 복이 생긴다그런 까닭에 도를 얻어서 죽고 태어나고 그것을 얻어 패하고 성공한다.

 

人希見生象也,而得死象之骨,案其圖以想其生也,故諸人之所以意想者皆謂之象也。今道雖不可得聞見,聖人執其見功以處見其形,故曰:「無狀之狀,無物之象。」

 

사람들은 살아있는 코끼리를 본적이 드물고 그 죽은 코끼리의 뼈를 얻어(통해) 그 살아있는 모습을 상상하여 머릿속에 그린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그린 모습을 모두 다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비록 도을 볼 수도 들을 수오 없지만 성인은 처해진 공을 보고 그 형상을 보인다.(성인은 그 단편을 잡아 형상을 소상히 내보인다) 도덕경 14장에 [ 도는 형상 없는 상이고 물체 없는 모습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凡理者,方圓、短長、麤靡、堅脆之分也。故理定而後可得道也。故定理有存亡,有死生,有盛衰。夫物之一存一亡,乍死乍生,初盛而後衰者,不可謂常。唯夫與天地之剖判也具生,至天地之消散也不死不衰者謂常。而常者,無攸易,無定理,無定理非在於常所,是以不可道也。聖人觀其玄虛,用其周行,字之曰道,然而可論,故曰:「道之可道,非常道也。」

 

무릇 이()라고 하는 것은 네모 동그라미, 짧고 긴 것 거칠고 곱고, 단단하고 무른 것의 구분이다이치가 정해진 후에 도를 얻을 수 있다. 이치가 정해지면 존 만과 생사, 성쇠가 있는 것이다무릇 사물이 한때 존재하고 한때 사라지고 한때 죽고 한때 태어나고처음에 융성하다 후에 쇠락하는 것을 항상 함이라 말할 수 없다. 오직 천지개벽과 함께 태어나고 천지와 함께 소멸되는 것에 이르러 죽지 않고 쇠망하지 않는 자를 일러 항상 함이라 한다.그러나 상(항상 함)은 바뀌는 바도 없고 정해진 이치도 없다. 정해진 이치가 없는 것은 항상 하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도하고 할 수 없다. 성인이 그 아득하고 비어있는 곳을 관찰하고  순환하며 널리 행하여지고 있는 점을 들추어내어 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한 연후에 가히 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경 1장에 [도를 가히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하는 도가 하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人始於生而卒於死。始之謂出,卒之謂入,故曰:「出生入死。」人之身三百六十節,四肢,九竅,其大具也。四肢與九竅十有三者,十有三者之動靜盡屬於生焉。屬之謂徒也,故曰:「生之徒也十有三者。」至死也十有三具者皆還而屬之於死,死之徒亦有十三,故曰:「生之徒,十有三;死之徒,十有三。」凡民之生生而生者固動,動盡則損也,而動不止,是損而不止也,損而不止則生盡,生盡之謂死,則十有三具者皆死死地也。故曰:「民之生,生而動,動皆之死地,之十有三。」

 

사람은 태어남으로 시작하고 죽음으로 마친다. 그 시작을 일러 들어감이라 하고 그러므로 도덕경 50장에살아 나와서 죽어 들어간다.]라고 한다. 사람의 신체는 360개의 마디로 이루어지고 사지 아홉 구멍 등이 중요한 갖춤(기관)이다.   사지와 아홉 구멍은 9 개이고 이 13 기관의 움직임과 고요(動靜)가 생존에 속한 것이다. 그것(생존에) 속하는 것을 무리라 한다. 그러므로 도덕경 50장에 [생존의 무리(부속물) 13개 기관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13개 기관이 모두 본래로 돌아가  죽음에 속하게 된다. 죽음의 무리 또한 13개 기관이다. 그러므로 도덕경 50장에 [삶의 무리는 13개 기관이고; 죽음의 무리 또한 개 기관이다] 하는 것이다. 무릇 백성은 살아서 생활하며 활동한다. 활동을 다하면 즉 잃어버리고 그 움직임이 멈추게 되며 이 잃어버림은 그치지 않는다생을 잃어가는 것은 그칠 수 없어 생을 다하는 것이고 생을 다하는 것을 일러 죽음이라 하는 것이다. 13개 기관을 가주고 모두 죽음을 위해 사지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경에 [ 백성들이 태어나고 태어나 활동하고 활동하며 모두 다 죽음의 땅으로 간다고 하고 근본이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         

 

是以聖人愛精神而貴處靜,此甚大於兕虎之害。夫兕虎有域,動靜有時,避其域,省其時,則免其兕虎之害矣。民獨知兕虎之有爪角也,而莫知萬物之盡有爪角也,不免於萬物之害。何以論之?時雨降集,曠野閒靜,而以昏晨犯山川,則風露之爪角害之。事上不忠,輕犯禁令,則刑法之爪角害之。處不節,憎愛無度,則爭之爪角害之。嗜慾無限,動靜不節,則痤疽之爪角害之。好用其私智而棄道理,則網羅之爪角害之。兕虎有域,而萬害有原,避其域,塞其原,則免於諸害矣。

 

이런 까닭에 성인은 그 정신을 아끼고 고요히 처함을 귀하게 여긴다. 이것(몸을 사지로 모는 것)은 들소나 범의 피해도다 더크고다. 무릇 물소와 범이 있는 지역이 있고 동정(움직임과 고요함)의 때가 있다. 그 지역을 피하고 그때를 살핀다면 즉 물소와 범의 해악을 면피할 수 있다. 백성은 단지 물소와 범의 뿔과 발톱이 있다는 것만 알뿐 만물의 발톱과 뿔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만물의 해악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이를 논할 수 있나? 때때로 비가 내려 모이고 거친 들은 고요하나 아침저녁(昏晨)으로 산천을 뛰어넘게 되면침범하여 돌아다님)  바람과 이슬의 발톱과 뿔이 해를 입힌다. 위를 진심으로 모시지 않고 금령을 가볍게 어긴즉 형법의 발톱과 뿔은 해를 입힌다. 시골에 살며 예절이 없고 애증에 기준이 없으면 즉 다툼의 발톱과 뿔이 해를 입힌다. 즉 가고자 하는 욕심이 끝이 없고 동정(움직이고 멈춤)에 절도가 없으면 즉 등창과 부스럼의 발톱과 뿔이 해를 입힌다. 사사로운 지혜를 사용하길 좋아하고 도리를 버리면 즉 법망의 발톱과 뿔이 해를  입힌다. 물소와 범의 영역 내에서 모든 해의 근원이 있고 그 지역을 피하고 그 근원을 막으면 즉 모든 해를 피한다.

 

凡兵革者,所以備害也。重生者雖入軍無忿爭之心,無忿爭之心則無所用救害之備。此非獨謂野處之軍也,聖人之遊世也無害人之心,無害人之心則必無人害,無人害則不備人,故曰:「陸行不遇兕虎。」入山不恃備以救害,故曰:「入軍不備甲兵。」遠諸害,故曰:「兕無所投其角,虎無所錯其爪,兵無所容其刃。」不設備而必無害,天地之道理也。體天地之道,故曰:「無死地焉。」動無死地,而謂之「善攝生」矣。

 

무릇 병기와 갑옷은 해악에 대비하는 것이다. 생명을 중시하는 자는 비록 군에 들어가도 성내고 다투려는 마음이 없다. 성내고 다투는 마음이 없는즉 전쟁의 해로부터 구해주는 대비(병갑)는 쓸모가 없어진다. 이것은 단지  야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의 세상을 노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해함이 없고 사람의 마음을 해함이 없는 즉 반드시 사람이 해하지 않는다. 사람이 해할 마음이 없는 즉 사람을 대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도덕경 50장에 [뭍으로 다니어도 물소와 범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산으로 들어가도 해로부터 구해지는 대비를 의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덕경에 [ 군에 들어가도 갑병을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재해를 멀리하는 것 그러므로 도덕경에 이르길 물소는 그 뿔을 들이받을 곳이 없고 범은 그 발톰을 둘 곳이 없고 병기는 그 칼날을 쓸 곳이 없다] 고하는 것이다. 설치하지 않고 대비하니 않으니 반드시 해가 없는 것은 천지의 도리이다. 천지의 도리를 체득하는 것을 일러 [ 사지가 없다고 ]고 하는 것이다. 사지가 없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일러 [생을 잘 보양한다]고 하는 것이다

  

愛子者慈於子,重生者慈於身,貴功者慈於事。慈母之於弱子也,務致其福,務致其福則事除其禍,事除其禍則思慮熟,思慮熟則得事理,得事理則必成功,必成功則其行之也不疑,不疑之謂勇。聖人之於萬事也,盡如慈母之弱子慮也,故見必行之道,見必行之道則明,其從事亦不疑,不疑之謂勇。不疑生於慈,故曰:「慈故能勇。」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에게 자애롭고 생을 중하게 여기면 그 자신에게 자애로우며 공을 귀하게 여기면 사업(일)을 사랑한다.(힘쓴다). 약한 아들에게 있어서 자애로운 어머니는 그 복에 이르게 힘쓴다복에 이르도록 힘쓴다는 것은 일이 그 화(재앙)를 막는 것이고 그 일이 화를 막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며 생각을 깊게 한즉 일의 이치를 터득하고 일의 이치를 터득하면 즉 반드시 성공하며 성공한즉 그 행동함에 의심이 없고 그 의심하지 않는 것을 용기 하란다. 온갖 사업(일에 있어서 성인은 자애 로운 어미가 그 아들을 생각하듯이 다한다. 그러한즉 행동의 도리를 보고(발견하고행동하는 도리를 발견한즉 밝아지고 그 일을 따른 것 또한 의심이 없게 된다. 의심이 없음을 일러 용기라 한다. 의심하지 않음은 자애로운에서 생기는데 노자 도덕 경장에서자애롭기에 용감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周公曰:「冬日之閉凍也不固,則春夏之長草木也不茂。」天地不能常侈常費,而況於人乎?故萬物必有盛衰,萬事必有弛張,國家必有文武,官治必有賞罰。是以智士儉用其財則家富,聖人愛寶其神則精盛,人君重戰其卒則民眾。民眾則國廣,是以之曰:「儉故能廣。」 

 

주공이 말하길 [ 겨울날에 얼고 닫히지 않아 단단해지지 않으면 즉 봄 여름의 초목의 자람이 무성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천지지도 능히 항상 사치와 낭비를 않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야? 그러 까닭에 만물은 반드시 흥하고 쇠함이 있고 만사는 반드시 긴장과 이완이(느긋함과 급함) 있고 국가는 반드시 문과 무가 있어야 하고 관리의 다스림에는 반드시 상벌이 있어야 한다. 이에 지혜로운 선비는 그 재화를 아껴 쓴즉 집안이 부유해지고 성인은 그 신(정신)을 보물같이 아낀즉 그 정미(정신)함이 왕성해지고, 군주가 전쟁에서 그 병사를 중히 하면 즉 백성이 많아진다. 백성이 많아지면 나라는 넓어지고 이를 들어서 도덕경 67장에 이르길 [ 검소하면 능히 넓게 할 수 있다]라고 한다.

 

凡物之有形者易裁也,易割也。何以論之?有形則有短長,有短長則有小大,有小大則有方圓,有方圓則有堅脆,有堅脆則有輕重,有輕重則有白黑。短長、大小、方圓、堅脆、輕重、白黑之謂理。理定而物易割也。故議於大庭而後言則立,權議之士知之矣。故欲成方圓而隨其規矩,則萬事之功形矣。而萬物莫不有規矩。議言之士,計會規矩也。聖人盡隨於萬物之規矩,故曰:「不敢天下先。」不敢天下先則事無不事,功無不功,而議必蓋世,欲無處大官,其可得乎?處大官之謂成事長,是以故曰:「不敢天下先,故能成事長。」

 

무릇 사물이 형상이 있으면 마름질하기 쉽고 자르기 쉽다. 어째서 그러는가? 모양이 있다는 것은 길고 짧음이 있으며 단장이 있다는 것은 작고 큼이 있다는 것이며 대소가 있다는 것은 네모와 둥근 것이 있다는 것이며 방원 있으면 단단한 것과 무른 것이 있고 무름과 단단함이 있으면 가벼움과 무거움이 있고 경중이 있으면 흑 백이 있는 것이다. 장단,대소 방원, 견액, 경중,흑백을 일러 사리(事理)라고 한다. 사리가(일의 결?) 정해지면 사물은 분할하기 쉽다. 그러므로 큰 조정에서  모여 논의하면 후언(나중의 말)이 즉 서게 되고, 권의 지사(권모술수에 능한) 선비는 이를 훤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방원을 그리고자 할 때 그 구규(자와 컴퍼스)를 따르면 즉 만사가 공을 이루게 된다.  만물은 구규가(기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논의의 말을 하는 선비는 구규(기준)을 잘 살펴야 한다. 성인은 만물의 구규(기준)을 다라서 다하고 그것을 도덕경 67장에 [ 감히 천하의 앞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고 말한 이유다천하의 앞서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즉 되지 않는 일이 없고 이루어지지 않는 공이 없고 논의한 것은 반드시 세상을 덮는 까닭에   큰 관직에 처하려 함이 없더라도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큰 관직에 처함을 일러 일이 크게 이루어 짐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일러 도덕경에 [감히 천하의 앞서지 않으면 능히 일이 크게 된다]

 

慈於子者不敢衣食,慈於身者不敢離法度,慈於方圓者不敢舍規矩。故臨兵而慈於士吏則戰勝敵,慈於器械則城堅固。故曰:「慈於戰則勝,以守則固。」夫能自全也而盡隨於萬物之理者,必且有天生。天生也者,生心也。故天下之道盡之生也,若以慈 衛之也。事必萬全,而無不當,則謂之寶矣。故曰:「吾有三寶,持而寶之。」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는 감히 입는 것과 먹는 것을 끊지 않고 자신을 아끼는 자는 감히 법을 떠나지 않고 원이나 네모를 그리려는 자는 구규를 버리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전쟁에 임해 병사와 관리를 아끼는 자는 전쟁에서 적을 이기고 무기를 아끼면 성을 견고히 지킬 수 있다도덕경 67장에 이르길 [자애로 싸우면 승리하고 그것을 지킴으로서 공고해진다]라고 한다. 스스로 완전할 수 있고 만물의 이치를 따라 다하면 반드시 하늘이 낸 것을 가지게 된데. 하늘이 낸 것이란 생심(생생하게 살아있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천하의 도는 모두가 생으로 가고(지향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것()을 지킨다. 일은 반드시 완전하게 하고 행동거지를 부당함이 없이한 즉 이를 일러 보배라 한다. 그러므로 도덕경 67장에 [ 내가 세 가지 보배 셋이 있다 그것을 유지하며 그것을  소중히 하라]라고 한 것이다.

 

書之所謂大道也者,端道也。所謂貌施也者,邪道也。所謂徑大也者,佳麗也。佳麗也者,邪道之分也。朝甚除也者,獄訟繁也。獄訟繁則田荒,田荒則府倉虛,府倉虛則國貧,國貧而民俗淫侈,民俗淫侈則衣食之業,衣食之業則民不得無飾巧詐,飾巧詐則知采文,知采文之謂服文采。獄訟繁、倉廩虛、而有以淫侈俗,則國之傷也若以利劍刺之。故曰:「帶利劍。」        

 

도덕경에 이른바 대도라는 것은  바른 길이다. 이른바 모시라는 것은 삿된 길이다. 소위  지름길이 큰 것은 좁은 길이 화려해 보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지름길(경도)은 삿된 길의 부분이다. 조정이 심하게  청소되어 먼지 하나 업는 것은 감옥의 송사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감옥 송사가 빈번한즉 논이 황폐해지고 농지가 황폐해지면 즉 창고가 비고 창고가 비면 즉 국가는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해지면 백성의 풍속이 음란해지고 사치하며 백성의 풍속이 사치스럽고 음란하면  먹을 것 입는 것의 일이 끊어진다. 의식(생업) 일이 끊어지면 백성은 백성은 기교를 부려 시기를 치지 않을 수 없고 기교와 꾸밈으로 속인즉 겉모습으로 치장하는 것을 알고, 겉으로 치장을 아는 것을 일러 화려하게 꾸민다는 것이다, 옥고 송사가 빈번하고 창고가 비며 음란과 사치가 풍속이 되어 있으면 즉 나라는 손상되는데 마치 예리한 칼로 찌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도 덕경에 예리한 검을 차고 다닌다]라고 하는 것이다.

 

諸夫飾智故以至於傷國者,其私家必富,私家必富,故曰:「資貨有餘。」國有若是者,則愚民不得無術而效之,效之則小盜生。由是觀之,大姦作則小盜隨,大姦唱則小盜和。竽也者,五聲之長者也,故竽先則鍾瑟皆隨,竽唱則諸樂皆和。今大姦作則俗之民唱,俗之民唱則小盜必和,故服文采,帶利劍,厭食,而貨資有餘者,是之謂盜竽矣。         

대저 지혜를 꾸미는 것은 국가를 상처 입에 이르는 길이고 사가(사사로이 집안)를 부유하게 하고 사가를 부유하게 한즉 도덕경에 이르길 [재화가 여유가 있다] 고 언급한 이유다. 나라에 이런 자가 있다면 즉 어리석은 백성은 그것을 모방하지 않을 수 없고 모방하면 즉 작은 도둑이 생겨난다. 이를 보건대 큰 간사함이 일어나면 작은 도적들이 생기고  큰 간사함이 부르면 작은 도적들이 화답한다. (피리)라는 것은 오성(오음):의 으뜸이고 그러므로 피리()가 먼저 하면 종과 거문고가 모두 따르고 피리가 연주된즉 모든 악기가 화답을 한다지금 크게 간사함이 일어나면 백성의 풍속이 화답하고 백성의 풍속이 부르면 작은 도둑이 반드시 화답한다, 그러므로 문채 나는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차고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재화에 여유가 있으니 이를 일어 도둑의 피리(도적의 괴수)라 하는 것이다.

 

人無愚智,莫不有趨舍。恬淡平安,莫不知禍福之所由來。得於好惡,於淫物,而後變亂。所以然者,引於外物,亂於玩好也。恬淡有趨舍之義,平安知禍福之計。而今也玩好變之,外物引之,引之而往,故曰:「拔。」至聖人不然,一建其趨舍,雖見所好之物不能引,不能引之謂不拔。一於其情,雖有可欲之類,神不動,神不動之謂不脫。人子孫者體此道,以守宗廟不滅之謂祭祀不           

 

사람이 어리석지도 지혜롭지도 않으면  취사의 선택이 있지 않음이 없다. 편안하고 담담하고 평안하면 화복이 오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 좋고 싫음에서 얻고 음란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면 후에 혼란스럽게 된다. 그런 까닭에 외물에 이끌려 애완하는 물건에 이끌린다. 편안하고 담담함은 취사의 도의가 있고 평안은 화복의 헤아림을 안다. 지금 완호 물에 마음이 바뀌고 외물이 마음을 끌고 그것을 끌어당겨 는 것을 도덕경에 54장에 [ 뽑힌다고 ] 언급한 이유이다성인에게 있어 그러하지 않다. 한번 취사의 기준을 세우면 비록 좋아하는 사물을 발견하고 끌리지 않고. 그것에 능히 끌리지 않음을 일러 뽑히지 않는 다고 한다. 그 정(마음)을 하나로 하면 비록 그것을 욕심내는 물건이 있더라도  정신은 움직이지 않고 정신이 움직이지 않은 것을 일러 불탈벗어나지 않음)이라 한다. 사람의 자손들이 되어 이런 도를 체화하고 이로서 종묘를 지키고 그것을 멸망치 않게 하는 것을 일러 제사가 끊어지지 않는 다고 하는 것이다.

 

身以積精德,家以資財德,國天下皆以民德。今治身而外物不能亂其精神,故曰:「脩之身,其德乃。」者,之固也。治家,無用之物不能動其計則資有餘,故曰:「脩之家,其德有餘。」治者行此節,則家之有餘者益眾,故曰:「脩之,其德乃長。」治邦者行此節,則之有德者益眾,故曰:「脩之邦,其德乃。」天下者行此節,則民之生莫不受其澤,故曰:「脩之天下,其德乃普。」脩身者以此別君子小人,治治邦天下者各以此科適觀息耗則萬不失一,故曰:「以身觀身,以家觀家,以,以邦觀邦,以天下觀天下,吾奚以知天下之然也?以此。」

 

자신은 정신을 쌓아서 덕으로 삼고 집안은 재화를 쌓아서 덕으로 삼고 마을과 국가 천하 모두는 백성으로 하여금 덕으로 삼는다. 지금 자신을 다스리면 외물이 그 정신을 어지럽힐 수 없다. 도덕경에 이르길 [ 이 도를 가지고 수신을 하면 그 덕이 이내 진실해진다]고 언급한 이유이다진실됨은 삼감이 단단해진 것이다. 집안을 다스리며 쓸모없는 물건으로 그 집의 계산(집안의 재산) 능히 움직이지 않는다면 재산은 여유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르길 [도를 닦아 집안을 다스리면 그 덕은 남음이 있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다고을을 다스리는 자가 이 절차로 다스리면 즉 집안의 재산은 많아지고 무리는 늘어난다. 그러므로 이르길 [도로서 고을을 다스리면 그 덕이 이내 많아진다]라고 하는 것이다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이런 절차를 행하면 즉 나라의 덕이 있는 자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길 [ 도로서 그 나라를 다스리면 그 덕이 이내 풍요로워진다] 천하를 다스리려는 자가 이 절 차를 행하면 즉 백성의 생이 그 혜택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르길 도로서 천하를 다스리면 그 덕이 넓어진다.] 도로서 몸을  닦은 자는 이로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고 고을과 나라와 천하를 다스린 자는 각기 이것으로 그 좋음과 나쁨을 살펴 알맞게 헤아려보면 만에 하나라도 잃는 것이 없다그래서 도덕경 54장에 [ 몸으로 몸을 집안으로 집안을  고을로서 고을을 나라로서 나라를 천하로서 천하를 살핀다. 내었지 천하가 그런지 알겠는 가? 이것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