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水則載舟水則覆舟
탕(湯) 무(武)의 후대 평가는 둘로 나뉜다. 탕(湯)이라는 시호에 보이듯이 난세를 평정하고 평안을 가져온 군주인 반면 제후의 신분으로 폭군이지만 걸(桀) 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아니하고 군주를 시해한 신하라는 오명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 평가는 난세를 바로잡고 세상을 평안하게 하였다는 역사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주 무(武) 왕도 마찬가지다. 은나라 주왕의 폭정을 바로잡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다는 평가와 군주를 잘 섬기지 못하고 주(紂) 왕의 타락을 방치하여 세상을 혼란하게 하고 군주를 시해하였다는 일부의 평가가 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 있고 배를 뒤집어 침몰 시킬 수 있다’는 경구에서 보듯이 중국 최초의 국가 하(夏)나라의 마지막 군주 걸(桀)의 실정과 폭정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과 제후들이 요즘 말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이는 왕조말기 부패 군주나 어리석은 군주, 폭학한 군주가 나오면 그 세태를 참지 못한 백성과 세력들이 배를 뒤집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이는 은(殷)의 마지막 군주 주(紂) 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주 무(武) 왕이 은 주왕을 토벌하며 외친 일성이 “ 나는 하극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폭정이 도를 넘은 주왕을 처벌하려는 것이다. ….. 조상과 나라 그리고 종친과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 이에 하늘의 뜻을 받들어 그를 징벌할 것이다.”
600여 년 전 은 탕왕이 하의 걸왕을 토벌할 때 선포하였던 것과 유사하다. “ 나는 하나라를 배반하려는 것이 아니라 걸왕이 죄를 지었으니 하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벌하려는 것이다.”
결국 두 왕조 말의 혼군(昏君)의 어리석고 포학한 정치 행위가 민심을 탕왕과 주(周) 무왕으로 돌리게 만든 것이다. 특히 은(殷) 주(紂)왕의 실정은 사기(史記)에 자세히 실려있다.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실정이 있다. “ 주왕은 술과 향락에 빠져 여색을 밝혔는데 특히 달기에 빠져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어 음탕한 곡과 달기(妲己)를 총애하여 달기의 말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다.
사연(師涓)에게 음란한 곡을 작곡하게 하고, 북쪽의 저속한 춤과 퇴폐적인 음악에 빠졌다.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 그 돈을 녹대(鹿臺)에 채우고, 거교(鉅橋)라는 창고를 곡식으로 채웠다. 게다가 개와 말과 기이한 물건을 거둬들여서 궁실을 가득하게 채웠다. 사구(沙丘)의 원대(苑臺)를 더 넓혀 온갖 들짐승과 날짐승을 그 안에 풀어놓았다. 귀신(제사)을 섬기는 일도 우습게 알았다. 사구(沙丘)에 악공과 광대를 잔뜩 불러들이고 술로 연못을 채우고 고기를 걸어둔 숲을 만들어서 벌거벗은 남녀로 하여금 그 사이를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愛妲己(애달기),妲己之言是從(달기지언시종)。於是使師涓作新淫聲(어시사사연작신음성),北里之舞(북리지무),靡靡之樂(미미지악)。厚賦稅以實鹿臺之錢(후부세이실록대지전),而盈鉅橋之粟(이영거교지속)。益收狗馬奇物(익수구마기물),充仞宮室(충인궁실)。益廣沙丘苑臺(익광사구원대),多取野獸蜚鳥置其中(다취야수비조치기중)。慢於鬼神(만어귀신)。大聚樂戲於沙丘(대취악희어사구),以酒為池(이주위지),縣肉為林(현육위림),使男女裸相逐其閒(사남녀나상축기간),為長夜之飲(위장야지음)。
2. 망국의 시작 - 난세의 충신
은 주왕은 태어날 때부터 총명하고 언변이 뛰어났다.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만큼 힘도 용기도 지녔다. 그러나 자신의 재능과 지혜를 과신한 나머지 충신들의 간언을 무시하고 언변으로 자신의 과오를 가렸다. 또한 신하들 앞에서 능력을 뽐내며 모두가 자기 발아래 있다 여겼던 것이다. 이런 천성이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
주왕의 신하 조이가 간언 하며 이르길 “이에 서백이 기국(饑國)을 정벌해 멸망시키자 주왕의 신하인 조이(祖伊)가 이를 듣고는 주(周) 나라를 원망하고, 두려워서 주(紂) 왕에게 달려가 고했다. “하늘이 이미 우리 은나라의 명을 끊으시려는지 앞을 내다보는 지인(至人)과 거북점을 쳐보아도 길한 괘가 나오지 않으니, 선왕께서 우리 후손들을 돕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왕이 음란하고 포악하여 스스로 선왕을 끊고 계셨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를 버리려는 것이며, 백성을 편히 먹이지도 않고,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불변의 규칙도 따르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 백성들은 모두들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어서 말하기를 ‘하늘이 어찌하여 엄한 벌을 내리지 않으며, 천명을 받은 분은 어째서 오지 않는가?’라고 합니다. 이제 왕께서는 어찌하시렵니까?” 주왕이 말했다. “내가 살아 있음은 수명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 아닌가!” 조이가 돌아가서 말했다. “주왕은 바른말이 안 통한다.”
조이(祖伊)의 충간은 紂王의 오만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년이 더 흘러 주왕은 한층 더 미쳐 날뛰며 타락해 갔다. 주왕의 이복동생 미자(微子)가 수없이 충간을 하였지만 그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미자는 사직하고 멀리 떠나 버렸다. 주왕의 숙부 비간(比干)은 일찍이 주왕에게 간언을 해왔는데 이번에는 더욱 직설적으로 바른말을 올리자 주왕은 벼락같이 화를 내었다.
“내 듣기에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나 있다고 하더라.” 하며 비간(比干)을 가르고 그의 심장을 보았다. 기자(箕子)는 두려워서 미친 척하고 남의 노비가 되었는데 주(紂) 왕이 다시 그를 가두었다. 은나라의 태사와 소사는 제사 그릇과 악기를 들고 주(周) 나라로 달아났다. 이에 주 무왕이 마침내 제후를 거느리고 주(紂) 왕을 토벌하러 나섰다.
주 무왕이 맹진에서 제후들을 규합하고 맹서 한 뒤 목야(牧野)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결국 주(紂) 왕은 상나라 수도 조가(朝歌)로 돌아와 보옥을 몸에 두르고 분신자살하였고 두 애첩도 주왕을 따라 목매달아 죽었다. 이렇게하여 무왕(武王)은 상왕조를 멸하고 주(周) 왕조를 세웠다.(기원전 1050년)
개국의 군주는 시호에서 보듯이 보통 현명하거나 훌륭하다 탕(湯) 왕이 난세를 평정하여 시호를 받고 무(武) 왕도 난세의 무도한 왕을 패주 시켜 세상에 평화를 가져왔다. 무(武)를 파자하면 과(戈)와 지(止)이다. 즉 전쟁 전투를 멈추게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왕이 받은 시호는 이런 전쟁의 종식으로 백성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공을 기려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보면 개국 군주가 현명하고 훌륭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왕조의 마지막은 어리석고 어두운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군주가 민심을 잃으면 한순간에 권력과 지위를 잃게 된다.중국 역사 최초에 하나라 걸(桀) 왕은 추방을 당하고 은나라 걸왕이 죽음을 맞이한 것은 좋은 예이기도 하다.
하본기에 넣은 글 중 하나가 눈에 띈다.
鳴呼!王嗣敬民,罔非天繼,常祀毋禮于棄道。(명호! 왕사경민 망비천계 상사무예우기도.)
왕의 직분은 백성을 공경하여 하늘의 뜻을 잇는 것이며, 제사에도 도리가 있으니 버려야 할 도리로 예의를 시행하지 마십시오.
왕의 직분을 분명히 한 것은 백성에 대한 공경 그리고 그것을 넘어선 경외를 말하고 있다. 하본기를 써 내려가며 사마천이 가장 말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본다.
'순자' '王制(왕제)'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君者, 舟也; 庶人者, 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군자, 주야; 서인자, 수야. 수즉재주, 수즉복주.)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싣기도 하지만, 물은 배를 뒤엎기도 한다"는 뜻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너무나 자주 물이 배를 뒤집고 있다. 그것도 부(富)와 자본(資本)에 미혹되어 있는 민중이 군주를 선택하고 뽑는 것이 어찌 천명(天命)이라 할 수 있을까? 먼저 백성이 깨어 있고 어리석지 말아야 할 것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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