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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본기

하본기_선양(禪讓)과 공천하(公天下)

 

1. 요,순,우의 선양

 

()는 제곡 고신의 아들로 이름은 방훈(放勳)이며, 당요(唐堯) 또는 제요도당(帝堯陶唐)으로도 부른다. 이는 요가 당() 지방을 다스렸기 때문에 붙은 칭호이다. 요는 도당씨(陶唐氏)라고도 부르는데, 요가 처음에 도()라는 지역에 살다가 당()이라는 지역으로 옮겨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양(禪讓)은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이고 공천하(公天下) 군주의 덕목 중 하나이다. 왕의 자리를 사적 소유로 여기지 않고 인품과 능력이 있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다. 그 역사기록상 최초의 인물이 堯임금이다.물론 한비자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의 견해에서 세위가 순(舜)임금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권력이 넘어갔다고 기술하는 학자도 있다. 이를 현대 정치에서 보자면 민의(民意)에 의한 대통령의 선출방식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민심이 세를 이루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을 보면 세위의 이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임금의 덕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인간적인 구절이 富而不驕,貴而不舒(부이불교, 귀이불서)’이다. ‘부유하나 교만하지 않았고 고귀하지만 게으르지 않았다.’ 많은 내용이 신화적인 요소가 들어 있으나 그중 가장 인간적인 부분 중 하나이고, 제왕으로 갖추어야 될 덕성을 이야기한다.

 

요임금이 군주로서 천하를 바라보는 사유중 가장 후대에 알려진 것이 바로 공천하(公天下)의 사상이다. 요임금이 즉위한지70여 년이 넘어 제위(帝位)를 넘겨줄 적임자를 대신들과 논의하였다. 대신들이 단주에게 양위를 건의하자 단주의 흉포함과 어리석음을 발하며 다른 이를 추천하라 명한다. 이에 대신들은 평민인 순()을 추천한다. 순을 추천한 이유는 아비는 완고하고 어미는 어리석으며 동생은 교만하지만 순은 효(孝)를다해 집안을 화목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에 요임금은 두 딸을 순()에게 출가시켜 그의 집안의 다스림을 살펴보고, 선양하여 국가의 정사를 맡겨 20년 동안의 치적을 살피니 양위할만하다 여긴 것이다.

 

사기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요임금의 생각인지 아님 후대의 해석인지 정확하진 않으나 공천하(公天下)에 대한 내용이

 

…. 중략 순에게 제위를 물려주면 즉 천하가 그 이득을 얻고 단주 혼자 손해를 보고, 단주에게 제위를 물려 주면 즉 천하에게 해롭고 단주만이 이로울 뿐이다. …..

 

堯知子丹朱之不肖,不足授天下,於是乃權授舜。授舜,則天下得其利而丹朱病;授丹朱,則天下病而丹朱得其利 (요지자단지불초 , 부족수천하 , 어시내권수순. 수순, 즉천하득기리이단주병 ; 수단주, 즉천하병이단주득기리)

 

즉 개인적인 이익으로 자식인 단주가 제위를 물려받는 것이 좋을 수 있으나 천하를 위해서는 순임금이 제위를 물려받는 것이 옳다고 여긴 까닭에 대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순임금에게 양위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후대에 태공망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태공망이 지은 육도(六韜 )에 주 문왕과 태공 망의 대화에 나오는 글에도 이런 말이 있다.  ‘천하비일인지천하(天下非一人之天下) 내천하지천하야(乃天下之天下也) 천하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늘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뜻이다.

 

사마천이 사기 요임금의 역사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비단 군주뿐만 아니라 위정자 또는 회사를 그리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덕목이 이처럼 공천하(公天下)에 바탕을 두는 다스림과 일처리를 말하는 것이다.  

 

2. ()_인간의 기본적인 덕성 효제(孝悌)

 

성은 우() 또는 유우(有虞), 이름은 중화(重華)이다. 순이 어렸을 때 아비와 계모로부터 온갖 핍박과 멸시를 이겨내며 효제(孝悌)스러움이 한결같았다.사마천이 이 순임금의 일화를 소개 한 내용 중 일부 소경인 아비가 순임금을 두 번이나 죽이려 하였던 일화 등이 다분히 작위적일 수 있다. 합당한 이유가 없이 舜을 죽이려 한 것에 순임금은 그것을 허물 삼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련과 요임금이 맡긴 치수사업과 정사를 잘 처리하여 천명을 받아 제위에 올라 최후의 승자가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의 능력은 용인에서도 나타난다. 팔개(八愷: 고양씨(高陽氏, 전욱(顓頊))에게 재덕을 갖춘 아들 8명)와 팔원(八元: 고신씨(高辛氏. 제곡(帝嚳))에게 재덕(才德)이 있는 아들 여덟 8)을 등용하여 토지를 관장하는 일과 오륜을 가르치게 하여 나라 전체가 화목하고 평화롭게 한 것이다.

 

요임금이 제위 70년 순임금에 양위하여 시험한 지 그동안 곤(), 공공(共工), 환도(驩兜), 삼묘(三苗)등 사악(四惡)등을 제거하여 권위를 강화시켜 나갔으며. 요임금이 죽고 제위에 오르자 현인을 등용하고 우()를 사공(司空)에 임명해 홍수를 다스리게 하고  ()와 설(), 고요(皐陶), (), (), 백이(伯夷), (), () 등에게 민사(民事)를 맡겨 천하가 잘 다스려졌다. 정치를 잘함이란 이렇듯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의 기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인재를 통한 국정을 운영하여 순임금은 함도 없고 그렇다고 이루지 못한 功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논어 태백과 안연 그리고 위령공에 나온다.

 

태백편: 舜有臣五人而天下治 (순임금은 다섯 신하(우禹,직稷, 설契, 고요皐陶, 백익伯益을 가리킨다.)를 두고 천하를 다스렸다.)

 

안연편: 舜有天下,選於眾,皋陶,不仁者遠矣。(순이 천하를 다스리며 뭇 신하들 중에서 고요를 등용하여 불인한 자들을 멀리하였다.)

 

헌문편: 子曰:「無而治者,其舜也與?夫何哉,恭己正南面而已矣。(자왈 : 함이 없이 다스린 분은 순임금이다, 무슨 일을 하겠는가? 공순하게 스스로를 바로 하고 남쪽을 향해 계셨을 뿐이다.)

 

3. 치수(治水)의 대명사_우(禹)임금

  

요순우 임금 당시 가장 중요한 국가사업 중 하나는 치수(治水)였다. 아버지 곤이 요(堯) 임금으로부터 치수(治水)를 명 받고 한 사업이 물길을 막는 제방으로 물을 막는 방법을 취하였다. 그러나 9년이 지나도 치수를 성공하지 못하자. 순임금이 곤()을 죽이고 그의 아들 우()로 하여금 사업을 잇게 한다.

 

우임금의 덕성을 사기에 표현된 것으로 본다면 성실이란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다. 순임금의 신하가 되어서도 순의 선양에 의해 우임금이 되었어도 그 백성을 위한 성실성은 사기에 기록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사마천이 위정자와 군왕의 덕성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실증사례로 사마천 당대와 후대에 위정자에게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임금은 치수 사업을 이어받고13년 동안 자신의 문 앞을 지나도 발을 들이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그러한 이유에서 후대에 대우(大禹)라는 칭호를 받았던 것이다.

 

사기의 기록에 그의 사람됨이 대해 살펴보면

 

‘우의 사람됨은 민첩하고 부지런하다 ; 그의 덕성은 어김이 없었고 그 인자함은 능히 친할 수 있었으며, 그의 말은 믿을 수가 있었다 ; 말소리는 음률처럼 조화롭고, 그 몸가짐은 법도에 맞고 일을 잘 처리했다. 부지런하고 온화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다.’

 

禹為人敏給克勤(우위인민급극근);其德不違(기덕불위),其仁可親(기인가친),其言可信(기언가신);

聲為律(성위률),身為度(신위도),稱以出(칭이출); 亹亹穆穆(미미목목),為綱為紀(위강위기)。

 

4. 대우(大禹)와 관련된 숫자  9

 

하나라 구주지도

구주(九州)

중국 고대 전적에 기록되어있는 하상주 시대의 지역 구획 명칭으로 우가 중국을 다스릴 당시 중국 전역을 예주(豫州)와 이를 중심으로 하여 둘러싼 기주(冀州), 연주(兗州), 청주(), 서주(徐州), 양주(揚州), 형주(荊州), 양주(梁州), 옹주(雍州) 9개의 주로 나누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본기에 그 고장의 특징과 산물 기후 등이 설명되어 있다.

 

구정(九鼎)

고대 중국의 왕권의 상징이다. 정은 냄비와 솥에 해당하는 고대 중국의 세 개의 발을 가진 금속 기구로 제기로서도 이용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하나라의 시조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에 명해 모은 청동을 가지고 주조한 것이라고 한다

 

구덕(九德)

서경(書經) 우서(禹書) 고요모(皐陶謨)에 원문이 있고 사시 하본기에도 들어 있는 내용인 구덕은 사람이 닦아야 할 기본적인 덕성을 말한다 이는 순임금의 신하이며 우임금의 신하였던 고요(皐陶)가 말한 것으로 위정자의 기본적인 덕성을 말한다. 아마도 禹임금은 이런 덕성을 모두 다 겸비하였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선양을 하였고. 우 또한 고요에게 선양을 하려 했던 것이다.(사마천 사기 하본기에 인용)

 

“구덕(九德)은 모든 일을 시작함에 있어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이 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이 있고, 성실하면서도 공손하고, 다스리면서도 공순하고, 순종하면서도 굳세고,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 간결하면서도 구차하지 않으며, 굳세면서도 착실하고, 강하면서도 의로운 것이니, 이러한 덕에 항상 밝은 사람은 길하게 되는 것입니다.

 

「始事事(시사사),寬而栗(관이율),柔而立(유이립),願而共(원이공),治而敬(치이경),擾而毅(요이의),直而溫(직이온),簡而廉(간이렴),剛而實(강이실),彊而義(강이의),章其有常(장기유상),吉哉(길재)

 

 

3. 숫자 5의 시작오행(五行)

 

순임금 편에 오전(五典)이라는 글이 나온다 이 글은 후대의 오륜(五倫)과 서로 통하는 단어로서 부자 군신 부부 형제 친구 간의 관계성을 말한다. 이것이 오교(五敎)로 나타나며 부의(父義: 부친은 의롭고), 모자(母慈: 모친은 자애롭고), 형우(兄友: 형제는 우애롭고), 제공(弟恭: 아우는 공경하며), 자효(子孝: 아들을 효성스러워야 한다)를 말한다. 이것이 후대에 오행(五行)으로 개념의 확장을 가져왔다. 다소간 의미가 다를 수 있으나 오제(五帝), 오행(五行), 오곡(五穀), 오전(五典), 오형(五刑), 오관(五官)의 개념이 있었다.

 

 

음양오행은 다분히 도가적 사유이다. 그리고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의 순임금의 평가 중 무위이치 와 남면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도덕경의 ‘무위 무불위’와 맞닿아있다. 즉 인재를 잘 등용하여 일을 시킨다면 스스로는 조정에 나아가 남면하고 함이 없이 있어도 나라의 다스림이 스스로 잘 되어 감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로 보면 잘 갖추어진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리더가 간섭을 하지 아니하여도 잘 돌아간다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생성과 소멸을 유위(有爲) 하지 않더라도 잘 돌아가게 만든 것이 바로 성군(聖君)이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행위와 같이 본 것이지 않을까 본다. 

 

()도 요와 같은 양위를 한다. 천하를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제위22년 만에 우()에게 양위를 하고17년 뒤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하나라는 우(禹) 임금은 '선양(禪讓)'방식의 왕위 계승 제도에 따라 동이 부락의익()'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익은 3년 상이 끝난 후 우()의 아들 계()에게 양위를 하였다. 양위한 이유는 계가 현명하고 천하 백성의 민심이 계에게로 향했으며 백성들이 익()의 능력을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가장 이상적인 왕위 계승 제인禪讓' 방식은 사라지고 혈연에 의해 왕위가 계승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