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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初見秦

1 한비자를 시작하며

한비자를 시작하며

 

년 한해 순자를 마무리하고 그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한비자를 공부하려 책을 잡았습니다. 한비자를 잡은 이유는 전국말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나라의 상황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미루어보면  어쩜 이리도 닮아있을 수가 있나?’ 생각하게 됩니다. 전국시대 말 한()나라의 상황은 진() 4(,,,)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오늘날 중국,일본,미국,유럽 강대국의 나라 사이에 끼인 대한민국을 보게 합니다. 공교롭게도 전국시대의 한()나라와 한국(韓國)의 한()자가 같음을 봅니다. 이때 한비자는 조국 한나라를 바라보며 부국강병의 바램을 사상으로 완성하여 간 것입니다. 그 사상적 배경은 상앙의 법(), 신불해(申不害)의 술(), 신도(愼到)의 세()를 하여 한비자란 책을 쓴 것입니다. 전국시대 말 전쟁 종식의 염원은 순자와 한비자, 그리고 일반 민중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이 전란의 시기에 진()나라의 동진 정책의 처음 희생양은 당연히 인접국인 한()과 위()나라였을 것입니다. (),(),(),()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인 한()나라의 공자였던 한비자는  한나라 말 혜왕(재위 272~253)부터 안()(재위238 ~ 230)초기 봉건적 구습과 구법제의 속박을 벗어나고 군권강화를 위한 국정개혁을 변법을 통하여 하고자 하였으나 채택되지 아니 하였습니다. 결국에 한왕 안() (BEC230)에 이르러 한나라는 전국칠웅중 가장 먼저 패망의 길로 걸어간 것입니다. 이 한비자의 사상은 사후에 진시황과 이사(李斯)에 채택되고 통일 진나라의 법률에 입각한 전제정치의 요체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법에 기반한 전제주의 통치법은 그 한계를 드러내고 결국
()나라와 함께 그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뒤를 이어 나타난 한(
)나라는유학을 통치기본이념을 삼고 법을 수단 삼아 나라를 다스렸고 2300여년이 지난 지금의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사상에 깃들어 내려오고 있음을 봅니다.
능력이 모자라 원전을 통한 내용의 전체적인 이해가 부족할 것이 염려되어 대학자들의 생각을 잠시 들여다 보고자 예습하는 심정으로 풍우란의 중국 철학사 중 한비자편을 먼저 정리하여 봅니다. 공부하는 늦깍이 학생입니다.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충해 주시고 곡해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면 감사히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