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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담론(談論)_ 20170103

담론(談論)

 

 

흔히들 아는 글월 문()을 고대 중국 문자로 미루어 보면무늬 문양등 옛날의 문자화 이전에서는 그림의 개념이 강하였고 그 출발이 상형 문자인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그림()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문채난다라는 표현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자는 논어의 옹야(雍也)』편에문질빈빈(文質彬彬)’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조야해지고(거칠고 막되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사(꾸밈만 있고 실속이 없음)해진다.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여기서 내적 수양 또는 공부의 출발을 바라봅니다. 흔히들 문사철(文史哲)과 시서화(詩書畵)로 알고 있는 인문학 공부는 어찌 보면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며 수양을 해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공부를 한다면 내면에서 묻어 나오는 문채남 즉 꾸밈과 바탕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사람으로의 성장하여 그 자체의 기품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 바라보아도 이런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최근의 우리들의 모습에 과도하게 문사철에 매몰된 생각으로 인하여 인식의 틀(이데올로기, 관념)에 갇혀서 그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시사화((詩書畵)인 것입니다 즉 문사철은 이성(理性) 공부이고 시서화는 감성(感性) 공부인 것입니다. 이 두가지 공부가 조화로운 것이문질 빈빈이라는 공자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문사철을 깨우치면 추상력(복잡함을 간단히 압축하는 능력) 시서화를 깨우치면 상상력을 통한 작은 현상에서 미루어 큰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시적 사유가 세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우리 삶 자체를 대단히 아름답게 해준다고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시의 배움을 통해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작년 가을 만남을 가진 채현국 선생님의 말이 다시 떠오릅니다. “ 당신이 세상에서 얻은 지식이 당신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것이 고정관념화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관념에 머물지 말고 항상 다른 것이 있는지 머리와 가슴을 열고 세상을 대하라.” 즉 내 머리 속에 들어온 작은 지식으로 세상 모든 것을 재단하지 말고 그 지식에 갇히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완고한 인식의 틀 이것이 고정관념인 것입니다. 급변하는 세계의 지식은 항상 맞는 것이 아닐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의 틀을 깨는 시서화악 이라는 공부를 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시를 3년 전부터 새로이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맨 처음 접한 시집은 김주대 시인의 그리움넓이를 읽었습니다 옛날에 처음으로 시를 접했을 때는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고 읽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를 국어 선생님이 해석을 해주실 때도 외우기 위한 문법으로서 가르쳐 주셨지 시의 감흥을 일깨워주신 분은 많지 않으셔서 시가 어렵고 접근하기 힘든 분야 였던 것입니다. 시를 자주 접하며 해설도 같이 읽어보고 동양고전인문학을 통해 형성된 관조 능력으로 시를 바라보니 조금씩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어렴풋하게나마 보였습니다. 그리고 읽은 시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면 인터넷도 뒤져보아 아 이것이 그런 뜻이구나 하였습니다. 어느 정도 훈련이 되고 나서 시를 읽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운동할 때 근육에 힘을 풀고 임팩트를 하듯이 머리에 힘을 풀고(경직된 사고를 풀고 편히) 읽어 내어보니 시가 새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인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보이고 나에게 미루어 어떠한 감흥이 일어나는지도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특히 회사를 다니는 많으신 분들은 복잡 다양한 현상들을 압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보고서 같은 것들을 만드는 능력은 대단히 탁월합니다. 그러나 작은 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들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창의적인 사고라 볼 수도 있습니다. 점점 더 굳어가는 머리를 말랑하게 하는 것은 시적 감흥 그림을 통한 예술적 감성 소설을 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입니다.

 

                             봄이오는 길목에서

                                                                   

                                                                    임 동확

내 예를 다하여 그대들에게 묻노니

어느새 돋아난 흰머리처럼 늘어가는 비애에도

마음만은 왜 따라 늙지 못하는지

춘삼월 뒷산 등산길옆 산비탈 받두덩에서

지심 매는 한 늙은 아낙을 바라보노라니

그 외진 가슴 자락에도 한줌

꽃처럼 붉은 순정이 남아 있었던가

간밤의 꽃비에 복숭아 꽃잎 떨어진 그 자리

망연자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차마 호미질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채

또 다른 밭고랑으로 건너간다

여직 변치 않아 아름다운 세월의 다짐들인 양

수줍은 듯 그 둘레만큼 남겨둔채

봄비 젖은 흙 속에 옥수수 씨앗을 밀어 넣는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어찌하여 그러함인가.

저 늙은 아낙처럼 차마 어쩌지 못하는 것들일랑

애써 건성처럼 건너뛰어 떠나 보내지 못하나니

애오라지 침묵하는 거기 하나의 꿈만은

저문 봄밤의 소쩍새 울음처럼 더욱 깊어 뚜렷함이여

그날만은 온종일 말을 잊어도

단 한마디 말조차 그립지 않더라

그날따라 해묵은 기억의 술독에서 어찌하여 천리향이 퍼져오는지

제아무리 궁리해봐도 짐작조차 못하겠더라

 

* 2년전 어느 봄날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고 쓴 글입니다. 보고싶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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