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비자/姦劫弒臣

간겁시신_2

 

 

전국시대 시대상은 각국의 제후와 왕은 자국의 부국 강병에만 몰두하여 나라를 다스렸고 부국 강병의 논리보다 앞서는 것이 없었다. 이를 대부와 사 일반 서민에 비추어 보면 백성들도 잇것(利)에 대한 욕망이 커져 더 이상 인, 의, 예로 다스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춘추시대부터 수 백 년 동안 지속적인 전쟁으로 민중의 삶은 생존의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였을 것이고 그런 시대상은 이익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장에서도 한비자는 더 이상 유학의 인, 의, 예로서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움을 설파하고 있다. 엄형으로 본보기를 보여 백성들의 사악한 마음과 행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법으로 엄히 다스림으로써 사익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폭란의 무리가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국가의 부국 강병에서 경대부의 민중의 착취 그리고 민중의 사익을 위한 다툼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혼탁해진 세속에서 사람들이 따르지도 않는 유학의 仁義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고 따를 사람도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대체할 통치 철학은 법을 통해서 엄형과 중벌에서 찾는 것이다_(20170103)

 

 

인의와 자애 VS 엄형과 중벌

 

 諺曰:「厲憐王。」此不恭之言也。雖然,古無虛諺,不可不察也。此謂劫殺死亡之主言也。人主無法術以御其臣,雖長年而美材,大臣猶將得勢擅事主斷,而各其私急。而恐父兄豪傑之士,借人主之力,以禁誅於己也,故賢長而立幼弱,廢正的而立不義。故春秋記之曰:「楚王子圍將聘於鄭,未出境,聞王病而反,因入問病,以其冠纓絞王而殺之,遂自立也。齊崔杼,其妻美,而莊公通之,數如崔氏之室,及公往,崔子之徒賈率崔子之徒而攻公,公入室,請與之分國,崔子不許,公請自刃於廟,崔子又不聽,公乃走踰於北牆,賈射公,中其股,公墜,崔子之徒以戈斫公而死之,而立其弟景公。」近之所見:李兌之用趙也,餓主父百日而死;卓齒之用齊也,擢湣王之筋,懸之廟梁,宿昔而死。故厲雖癰腫瘍,上比於春秋,未至於絞頸射股也;下比於近世,未至餓死擢筋也。故劫殺死亡之君,此其心之憂懼、形之苦痛也,必甚於厲矣。由此觀之,雖「厲憐王」可也。

 

 

 

언왈 려련왕 차부공지언야 수연 고무허언 부가부찰야 차위겁살사망지주언야 인주무법술이어기신 수장년이미재 대신유장득세천사주단 이각위기사급 이공부형호걸지사 차인주지력 이금주어기야 고시현장이립유약 폐정적이립부의 고춘추기지왈 초왕자위장빙어정 미출경 문왕병이반 인입문병 이기관영교왕이살지 수자립야 제최저 기처미 이장공통지 삭여최씨지실 급공왕 최자지도가거률최자지도이공공 공입실 청여지분국 최자부허 공청자인어묘 최자우부청 공내주유어배장 가거사공 중기고 공추 최자지도이과작공이사지 이립기제경공 근지소견 리태지용조야 아주부백일이사 탁치지용제야 탁민왕지근 현지묘량 숙석이사 고려수옹종비양 상비어춘추 미지어교경사고야 하비어근세 미지아사탁근야 고겁살사망지군 차기심지우구 형지고통야 필심어려의 유차관지 려련왕 가야

 

 

 

속담에 [문둥이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공손하지 않은 말이다. 비록 그러하나 옛날 말은 아무런 근거 없는 허언이 아니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겁살 사망의(겁박 당하고 살해당해 죽고 망함에 이르는) 군주를 일컫는 말이다.

 

군주가 법술이 없이 신하를 제어하면 비록 나이가 많고 재주가 뛰어나도 대신은 장차 위세를 얻어 일을 마음대로 하고 각자 사적인 일을 함에 급급할 것이다. 그리고 부형 호걸지사가 군주의 힘을 빌려 자신을 금제하고 벌을 줄까 두려워한 까닭에 현명하고 나이 많은 군주를 시해하고 나이 어리고 약한 군주를 옹립하며 적자를 폐하고 불의한자(서자)를 내세운다. 그러므로 춘추에 이르길 : 초나라왕자 어가 정나라에 초빙을 받아 갈 적 국경을 나가기 전 왕의 병을 듣고 돌아와 문병을 구실로 들어와 그 갓끈으로 왕의 목을 졸라 살해하여 결국에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제나라 대부 최저는 그 처가 아름다워 그리하여 장공과 사통하려 자주 최씨의 집안에 드나들었다. 제장공이 최저의 집에 왔을 때 최저의 무리 가거가 최씨의 무리를 이끌고 공을 공격하였다. 공이 집에 들어가 나라를 나누어 주는 것을 청하니 최저가 허락치 않았다. 공이 종묘에서 자결하기를 청하였으나 최저는 또 듣지 않아 장공이 이내 북쪽의 담을 넘어 도망하였으나 가거가 장공을 쏘아 그 허벅지를 맞추어 공이 떨어지니 최저의무리가 장공을 창으로 베어 죽였다. 그리하여 그 아우 경공이 왕위에 올랐다. ] 가까운 근래를 살펴보면 이태는 조나라에서 권력을 쥐자 주부(군주의 아버지:조무령왕)을 백일만에 굶겨 죽였다. ; 탁치가 제에서 중용되었을 때. 제민왕의 힘줄을 뽑고 종묘의 들보에 매달아 하룻밤에 죽었다.

 

그러므로 문둥이는 비록 몸에 종기가나 고름이 흐르고 몸이 썩어가지만 상고시대의 춘추에 비교해보면 목이 졸리고 허벅지에 화살이 쏘이는 것에 미치지 아니하고; 아래로 근세에 비교하면 굶어 죽고 힘줄이 뽑히는 것이 미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신하에게 겁박,살해,사망에 이르는 군주는 그 마음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형상(육체)의 고통은 반드시 문둥이보다 더 심했다. 이를 보건데 비록 문둥이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옳은 것이다.

 

 

世之學術者說人主,不曰「乘威嚴之勢以困姦邪之臣」,而皆曰「仁義惠愛而已矣」。世主美仁義之名而不察其實,是以大者國亡身死,小者地削主卑。何以明之?夫施與貧困者,此世之所謂仁義;哀憐百姓不忍誅罰者,此世之所謂惠愛也。夫有施與貧困,則無功者得賞;不忍誅罰,則暴亂者不止。國有無功得賞者,則民不外務當敵斬首,內不急力田疾作,皆欲行貨財、事富貴、私善、立名譽以取尊官厚俸。故姦私之臣愈眾,而暴亂之徒愈勝,不亡何待?

 

 

夫嚴刑者,民之所畏也;重罰者,民之所惡也。故聖人陳其所畏以禁其邪,設其所惡以防其姦。是以國安而暴亂不起。吾以是明仁義愛惠之不足用,而嚴刑重罰之可以治國也。無捶策之威,銜之備,雖造父不能以服馬。無規矩之法,繩墨之端,雖王爾不能以成方圓。無威嚴之勢,賞罰之法,雖堯、舜不能以治。今世主皆輕釋重罰、嚴誅,行愛惠,而欲霸王之功,亦不可幾也。故善主者,明賞設利以勸之,使民以功賞,而不以仁義賜;嚴刑重罰以禁之,使民以罪誅而不以愛惠免。是以無功者不望,而有罪者不幸矣。託於犀車良馬之上,則可以陸犯阪阻之患;乘舟之安,持楫之利,則可以水江河之難;操法術之數,行重罰嚴誅,則可以致霸王之功。治國之有法術賞罰,猶若陸行之有犀車良馬也,水行之有輕舟便楫也,乘之者遂得其成。

 

 

伊尹得之湯以王,管仲得之齊以霸,商君得之秦以。此三人者,皆明於霸王之術,察於治之數,而不以牽於世俗之言;適當世明主之意,則有直任布衣之士,立卿相之處;處位治國,則有尊主廣地之實;此之謂足貴之臣。湯得伊尹,以百里之地立天子;桓公得管仲,立五霸主,九合諸侯,一匡天下;孝公得商君,地以廣,兵以。故有忠臣者,外無敵國之患,內無亂臣之憂,長安於天下,而名垂後世,所謂忠臣也。若夫豫讓智伯臣也,上不能說人主使之明法術、度數之理,以避禍難之患,下不能領御其眾,以安其國;及襄子之殺智伯也,豫讓乃自黔劓,敗其形容,以智伯報襄子之仇;是雖有殘刑殺身以人主之名,而實無益於智伯若秋毫之末。此吾之所下也,而世主以忠而高之。古有伯夷、叔齊者,武王讓以天下而弗受,二人餓死首陽之陵;若此臣者,不畏重誅,不利重賞,不可以罰禁也,不可以賞使也。此之謂無益之臣也,吾所少而去也,而世主之所多而求也。

 

세지학술자설인주 부왈 승위엄지세이곤간사지신 이개왈 인의혜애이이의 세주미인의지명이부찰기실 시이대자국망신사 소자지삭주비 하이명지 부시여빈곤자 차세지소위인의 애련백성부인주벌자 차세지소위혜애야 부유시여빈곤 칙무공자득상 부방주벌칙포난자부지 국유무공득상자 칙민부외무당적참수 내부급력전질작 개욕항화재 사부귀 위사선 립명예이취존관후봉 고간사지신유중 이포난지도유승 부망하대?

 

 

부엄형자 민지소외야 중벌자 민지소악야 고성인진기소외이금기사 설기소악이방기간 시이국안이포난부기 오이시명인의애혜지부족용 이엄형중벌지가이치국야 무추책지위 함궐지비 수조부부능이복마 무규구지법 승묵지단 수왕이부능이성방원 무위엄지세 상벌지법 수요 순부능이위치 금세주개경석중벌 엄주 항애혜 이욕패왕지공 역부가기야 고선위주자 명상설리이권지 사민이공상 이부이인의사 엄형중벌이금지 사민이죄주이부이애혜면 시이무공자부망 이유죄자부행의 탁어서거량마지상 칙가이륙범판조지환 승주지안 지즙지리 칙가이수절강하지난 조법술지삭 항중벌엄주 칙가이치패왕지공 치국지유법술상벌 유야륙항지유서거량마야 수항지유경주변즙야 승지자수득기성

 

 

이윤득지탕이왕 관중득지제이패 상군득지진이강 차삼인자 개명어패왕지술 찰어치강지삭 이부이견어세속지언 적당세명주지의 칙유직임포의지사 립위경상지처 처위치국 칙유존주광지지실 차지위족귀지신 탕득이윤 이백리지지립위천자 환공득관중 립위오패주 구합제후 일광천하 효공득상군 지이광 병이강 고유충신자 외무적국지환 내무난신지우 장안어천하 이명수후세 소위충신야 야부예양위지백신야 상부능설인주사지명법술 도수지리 이피화난지환 하부능령어기중 이안기국 급양자지살지백야 예양내자검의 패기형용 이위지백보양자지수 시수유잔형살신이위인주지명 이실무익어지백야추호지말 차오지소하야 이세주이위충이고지 고유백이 숙제자 무왕양이천하이불수 이인아사수양지능 야차신자 부외중주 부리중상 부가이벌금야 부가이상사야 차지위무익지신야 오소소이거야 이세주지소다이구야

 

 

 

세상의 술법을 배운 자가 군주를 설득할 때 [군주의 위엄한 세위를 타고 간사한 신하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인의와 은혜와 사랑만일 뿐입니다] 라고 말한다. 세상의 군주가 인의의 명성만 아름답게 여기고 그 실정을 살피지 않으면 이는 크게는 나라가 망하고 자신이 죽고, 작게는 국토가 깎이고 군주가 위세가 낮아지는 것이다. 무엇으로 이것을 아는가? 무릇 빈곤한 자들에게 베푸는 것 이것은 세상이 인의라 이르는 바이다.; 백성을 가엽게 여겨 차마 벌주지 못하는 것 이것을 세상은 은혜와 사랑이라 말한다, 무릇 빈곤한 자에게 베푸는 것은 즉 공이 없는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차마 벌을 주지 아니하는 것은 폭난(난폭과 어지러움)을 그치지 못하게 한다. 나라에 공이 없이 상을 받는 자가 있으면 즉 백성은 밖에서 적을 맞이하여 싸울 때 힘쓰지 아니하고 안으로 밭을 갈 때 빠르게 짓는 일을 애써 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 돈을 써서 부귀한자를 섬기려 하며 사사로이 선행을 하여 명예를 높여서 관직을 높이고 후한 봉록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간사한 신하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난폭한 무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니 어찌 망하지 않음을 기다리디 않을 수 있겠는가?

 

 

무릇 엄형이란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중벌은 백성이 싫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인은 그 두려워하는 바를 펼치어 그 삿된()것을 금지하고 그 싫어하는 바를 베풀어 그 간사함을 막는 것이다. 이로서 나라가 평안하고 난폭함은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이것으로 인의와 은혜는 쓰기에 부족함을, 엄형과 중벌은 나라를 다스림에 옳은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채찍의 위엄이과 재갈의 준비 없으면 비록 조보라 할지라도 말을 복종시킬 수 없다. 자와 콤파스의 법(모형)과 승묵(먹줄)의 바름이 없다면 비록 왕이라도 사각형과 원을 그릴 수 없다. 위엄의 권세와 상벌의 법도가 없으면 비록 요순이라 할지라도 능히 다스릴 수 없다. 지금 세상의 군주 모두가 중벌과 엄한 주살을 가벼이 풀고 은혜를 행하며 패왕의 공을 이루려 한다면 또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됨을 잘하는 것은 상을 밝히어 이익을 베풀어서 그들을 권장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공으로서 상을 주는 것이지 인의로서 주지 않는 것이다. 엄형과 중벌로서 그것을 금지시키고 백성으로 하여 죄를 벌주고 아낌과 은혜로 사면을 받지 않게 한다. 이로서 공이 없는 자는 바라지 않고 죄가 있는 자는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튼튼한 수레와 좋은 말에 의탁하면 즉 험한 고갯길도 가뿐이 넘는다; 배의 안전함에 올라타고 노의 잇점을 유지하면 물로서 끊긴 흐르는 강하의 어려움도 가히 건널 수 있다. 법술의 수단을 잡고 중형 엄주(무거운 벌과 엄한 벌)를 행하면 즉 패왕의 공을 이룰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법술과 상벌에 있으니 마치 육지를 갈 때 튼튼한 수레와 좋은 말이 있는 것이고 물 위를 갈 때 가벼운 배와 편리한 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타는 자(이용하는 자) 마침내 그 성공할 것이다.

 

 

이윤이 그것(치술)을 얻어 탕왕이 된 것이고 관중이 그것을 얻어 제(환공)가 패권국이 되었고 상앙이 그것을 얻어 진나라가 강대국이 되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패왕의 치술에 밝았고 치강지수(다스려 강해지는 술수)을 잘 살피고 세속의 여론에 이끌리지 않았다; 당시 세상의 명군의 뜻에 맞추어 즉 포의지사(무명의 선비)를 직접 임명하고 경대부와 재상의 위치가 되어 서 있는 것이다.(???) ; 나라를 다스리는 지위가 되어 즉 군주를 높이고 국토를 넓히는 실적이 있다.; 이를 귀한 신하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르는 것이다. 탕왕이 이윤을 얻어 백리의 땅에서 천자가 되어 섰으며 ;환공이 관중을 얻어 오패의 군주가 되어 제후를 아홉 번 회맹을 하여 일거에 천하를 바로잡았다; 효공이 상군을 얻어 땅을 넓히고 군대를 강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충신이 있으면 밖으로 적국의 걱정거리가 없고 안으로 난신의 우환이 없으며 천하가 오랫동안 평안하고 명성은 후세에 드리우고 이른바 충신이라 한다.

 

무릇 예양이 지백의 신하가 되어 위로는 군주 설득해 법술을 밝히고 도수(제도와 규칙)의 이치로 화난의 우환을 피하게 하는 공을 세우지 못하였고, 아래로 그 무리를 능히 제어하여 그 나라를 안정시키지 못하였다; 이에 양자가 지백을 죽이자 예양은 이내 스스로 얼굴에 문신을 하고 코를 잘라 그 용모를 흉하게 하여 지백을 위해 양자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이는 비록 형을 받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서 군주의 명성을 위하는 일이지만 실정은 터럭만큼도 지백에게 무익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를 아래로 한 이유이나 세상의 군주가 충성스럽다 여기고 그를 높이는 것이다. 옜날 백이 숙제는 무왕이 천하를 양이하려 했으나 받지 않고 두 사람은 수양산 언덕에서 굶어 죽었다. 이와 같은 신하는 무거운 벌도 두려워 않으며 후한 상도 달가워하지 않아서 상벌로서 할 수 없다. 상을 내려 부리지 못하면 이들은 무익한 신하라 말한다. 내가 작게 여기고(경시하고) 물리치는 까닭이나 세상의 군주가 좋게 여기며() 구하려는 것이다

 

 

 

문둥이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옳은 것이다

 

 

 

諺曰:「厲憐王。」此不恭之言也。雖然,古無虛諺,不可不察也。此謂劫殺死亡之主言也。人主無法術以御其臣,雖長年而美材,大臣猶將得勢擅事主斷,而各其私急。而恐父兄豪傑之士,借人主之力,以禁誅於己也,故賢長而立幼弱,廢正的而立不義。故春秋記之曰:「楚王子圍將聘於鄭,未出境,聞王病而反,因入問病,以其冠纓絞王而殺之,遂自立也。齊崔杼,其妻美,而莊公通之,數如崔氏之室,及公往,崔子之徒賈率崔子之徒而攻公,公入室,請與之分國,崔子不許,公請自刃於廟,崔子又不聽,公乃走踰於北牆,賈射公,中其股,公墜,崔子之徒以戈斫公而死之,而立其弟景公。」近之所見:李兌之用趙也,餓主父百日而死;卓齒之用齊也,擢湣王之筋,懸之廟梁,宿昔而死。故厲雖癰腫瘍,上比於春秋,未至於絞頸射股也;下比於近世,未至餓死擢筋也。故劫殺死亡之君,此其心之憂懼、形之苦痛也,必甚於厲矣。由此觀之,雖「厲憐王」可也。

 

 

언왈 려련왕 차부공지언야 수연 고무허언 부가부찰야 차위겁살사망지주언야 인주무법술이어기신 수장년이미재 대신유장득세천사주단 이각위기사급 이공부형호걸지사 차인주지력 이금주어기야 고시현장이립유약 폐정적이립부의 고춘추기지왈 초왕자위장빙어정 미출경 문왕병이반 인입문병 이기관영교왕이살지 수자립야 제최저 기처미 이장공통지 삭여최씨지실 급공왕 최자지도가거률최자지도이공공 공입실 청여지분국 최자부허 공청자인어묘 최자우부청 공내주유어배장 가거사공 중기고 공추 최자지도이과작공이사지 이립기제경공 근지소견 리태지용조야 아주부백일이사 탁치지용제야 탁민왕지근 현지묘량 숙석이사 고려수옹종비양 상비어춘추 미지어교경사고야 하비어근세 미지아사탁근야 고겁살사망지군 차기심지우구 형지고통야 필심어려의 유차관지 려련왕 가야

 

 

 

속담에 [문둥이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공손하지 않은 말이다. 비록 그러하나 옛날 말은 아무런 근거 없는 허언이 아니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를 겁살 사망의(겁박 당하고 살해당해 죽고 망함에 이르는) 군주를 일컫는 말이다.

 

군주가 법술이 없이 신하를 제어하면 비록 나이가 많고 재주가 뛰어나도 대신은 장차 위세를 얻어 일을 마음대로 하고 각자 사적인 일을 함에 급급할 것이다. 그리고 부형 호걸지사가 군주의 힘을 빌려 자신을 금제하고 벌을 줄까 두려워한 까닭에 현명하고 나이 많은 군주를 시해하고 나이 어리고 약한 군주를 옹립하며 적자를 폐하고 불의한자(서자)를 내세운다. 그러므로 춘추에 이르길 : 초나라왕자 어가 정나라에 초빙을 받아 갈 적 국경을 나가기 전 왕의 병을 듣고 돌아와 문병을 구실로 들어와 그 갓끈으로 왕의 목을 졸라 살해하여 결국에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제나라 대부 최저는 그 처가 아름다워 그리하여 장공과 사통하려 자주 최씨의 집안에 드나들었다. 제장공이 최저의 집에 왔을 때 최저의 무리 가거가 최씨의 무리를 이끌고 공을 공격하였다. 공이 집에 들어가 나라를 나누어 주는 것을 청하니 최저가 허락치 않았다. 공이 종묘에서 자결하기를 청하였으나 최저는 또 듣지 않아 장공이 이내 북쪽의 담을 넘어 도망하였으나 가거가 장공을 쏘아 그 허벅지를 맞추어 공이 떨어지니 최저의 무리가 장공을 창으로 베어 죽였다. 그리하여 그 아우 경공이 왕위에 올랐다. ] 가까운 근래를 살펴보면 이태는 조나라에서 권력을 쥐자 주부(군주의 아버지: 조무령 왕)을 백일만에 굶겨 죽였다. ; 탁치가 제에서 중용되었을 때. 제민왕의 힘줄을 뽑고 종묘의 들보에 매달아 하룻밤에 죽었다.

 

그러므로 문둥이는 비록 몸에 종기가나 고름이 흐르고 몸이 썩어가지만 상고시대의 춘추에 비교해보면 목이 졸리고 허벅지에 화살이 쏘이는 것에 미치지 아니하고; 아래로 근세에 비교하면 굶어 죽고 힘줄이 뽑히는 것이 미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신하에게 겁박,살해,사망에 이르는 군주는 그 마음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형상(육체)의 고통은 반드시 문둥이보다 더 심했다. 이를 보건데 비록 문둥이가 왕을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옳은 것이다.

'한비자 > 姦劫弒臣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겁시신_1  (0) 201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