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풍우란(馮友蘭)
초기 주(周)나라 봉건사회(封建社會)는 두가지 규범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었다 그하나가 예(禮)요 다른 하나는 형(刑)이다. 예는 귀족들의 행위 규제였으며 형은 서민(庶民)에게만 적용된 것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의 ‘예는 서민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까지 미치지 않는다.' 하였다.
"禮不下庶人,刑不上大夫"
법가(法家)의 사회적 배경(社會的背景)
중국 봉건사회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여 예기(禮記)의 규범이 실현가능함. 천자제후 대부들은 혈연적 인척(姻戚)관계를 맺고 세습적인 특권을 물려받는 사회였고, 주나라가 다스리는 통치권내에 종속된 각국은 사실상 반 독립의 상태였고 이들 국내에도 사병들로 무장한 반독립 가(家)들이있었다.이들 국,가,제후,대부는 서로 인척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적 외교적인 관계를 맺고 사건이 발생하면 군자(君子)의 협약 즉 불문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의 행위는 예에 의해 다스려진 것이다. 천자는 백성을 직접통치하지 않고 대부에게 문제해결을 위임하고 대부는 자기 경내의 백성을 직접 통치하였다.이때 형벌은 자기신하를 복종시키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주나라 말 이러한 유형의 사회가 붕괴되어가고 사회정치적인 변화가 발생되어 군자 소인계급의 사회적인 차별이 예전처럼 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공자시대부터 토지와 직위를 잃은 귀족이 나타나고 재능과 행운으로 사회정치적으로 탁월한 지위에 오른 평민도 나타났다.대국의 영토확장과 정벌로 전쟁 수행을 위한 강대국들의 강력한 행정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정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복잡다양화 해가는 춘추전국시대에 봉건국가가 직면한 문제에 공자의 유가와 많은 제자백가들의 해결책은 실청하기에 요원한 것이었다. 군주가 필요로한 것은 선정(善政)을 펼치기 위한 이상적인 정책이 아니라 보다 현실 문제를 해결할 구체안이었던것이다.이에 나타난이들이 법술지사(法術之士) 재상(宰相)등이었던 것이다.
한비자는 현 호남성 서부에 위치해있던 한나라 명문귀족의 후예이다. 사기(史記)에는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이사(李斯)는 한비자를 시기한 것으로 묘사되어있다. 한비는 유능한 문필가로서 한비자의 저자이고이 한비자의 도를 운용하여 타국을 정복한 나라가 바로 진(秦)나라이고 한비자가 옥사 당한 나라가 바로 이 진나라다. 한비자의 옥사 이유는 이사의 모함과 전국책 진책에 나오는 요고(姚賈)사건으로 인하여 (요고의 외교 잘못을 한비가 시황제에게 고하다 요고의 언변에 시황제가 역으로 한비에 독을 내려 자살케 함)
법가(法家)의3대 사상
-.신도(愼到):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 세(勢) 권위(權威)가 통치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주장
-.신불해(申不害): 일처리 사람다루는 방식 술(術)을 치국의 방책으로 주장
-.상앙(商鞅): 법(法)을통한 통제를 기본 원칙으로 삼음
故明主之行制也天,其用人也鬼。天則不非,鬼則不困。勢行教嚴逆而不違,毀譽一行而不議。故賞賢罰暴,舉善之至者也;賞暴罰賢,舉惡之至者也;是謂賞同罰異。賞莫如厚,使民利之;譽莫如美,使民榮之;誅莫如重,使民畏之;毀莫如惡,使民恥之。然後一行其法,禁誅於私。家不害功罪,賞罰必知之,知之道盡矣。
총명한 군주는 제도를 시행함에 하늘과 같이 공평하고 인물을 등용함에 귀신과 같이 밝았다. 하늘같이 하면 비난 받지 아니하고 귀신같이 하면 곤란해지지 않는다. 위세를 부려 법과 가르침을 엄하게 실시하면 백성들은 그를 거스리려해도 거역할 수 없다. ...중략.... 그런 연후에 법을 시행할 수 있다.
법가(法家)의역사철학(歷史哲學)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경험을 중시한 것은 압도적으로 많은 농업인의 사고 방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농부들은 토지에 그 생활의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경험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는 것이 습관화된 것이다. (논어(論語)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공자는 문왕(文王)과 주공(周公) 묵자(墨子)는공자의 설을 논박하며 우(禹)임금을 맹자(孟子)는 묵가보다 더 나아가 요순(堯舜)에게서 마지막으로 도가(道家)는 유가와 묵가에 대항하여 자기네 사상을 전파하기위해 요순보다 앞선 복희(伏羲) 신농(神農)의 권위에 의탁하여 사상적인 전개를 해 나감을 볼 수 있다.이런 회고(回顧)를 통해 이들 철학자들은 복고적(復古的) 사관(史觀)을 만들어 낸것이다. 이 역사관에 법가는 이의(異議)를 제기하고 시대변화에 요청을 현실적으로 대처한 것이다. 고대인보다 순박하고 어떤 의미에서 더 덕이 많음을 인정하고 본성적으로 선했다기보다는 물질적(物質的)인 환경에 기인한다고 본것이다.
한비자 오두(五蠹)
人民少而財有餘,故民不爭。是以厚賞不行,重罰不用而民自治。今人有五子不為多,子又有五子,大父未死而有二十五孫,是以人民眾而貨財寡,事力勞而供養薄,故民爭,雖倍賞累罰而不免於亂。
사람이 적으며 재물이 여유가 있으면 백성은 다투지 않는다… 지금 백성들은 아들 다섯을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아들이 또 다섯아들을 갖는다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스물다섯명의 손자가 생긴다. 이리하여 백성은 많아지고 재물은 부족하게되고,힘을다해 수고로이 일하여도 공량은 박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서로 다툰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오직 새로운 수법에 의해서만 해결하고 이를 깨닫지 못하는자는 어리석은 자로 본 것이다.
宋人有耕田者,田中有株,兔走,觸株折頸而死,因釋其耒而守株,冀復得兔,兔不可復得,而身為宋國笑。今欲以先王之政,治當世之民,皆守株之類也。
송나라에 밭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받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다 토끼가 달려가다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어버렸다. 그 뒤로 그 괭이를 놓고 그루턱;l를 지키고 앉아 다시 토끼 얻기를 바랬으나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고 그자신은 송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지금 선왕의 정치로 현재의 백성을 다스린다면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는 무리라 할 수 있다.
한비자이전 상앙(商鞅)도 이와 비슷한 걸 상군서에 남기었다
民道弊而所重易也,世事變而行道異也
백성의 도가 피폐해지면 그에 따라 법령도 반드시 바꾸어야 하며 세상사가 변함에 따라 도의 실행도 달리하여야 한다.
통치방법(統治方法)
새로운정치정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법(法)확립이 필요하였다
法者,編著之圖籍,設之於官府,而布之於百姓者也
법이란 펴서 널리 알린 원적(문서)로서 관부에 비치하여 백성에게 공포된 것이다.
법을통하여백성이 해야 할 바와 해서는 안될 것이 무엇인지 알게한다. 법이 공포되고 군주는 백성의 행동을 주시하고 군주는 세(勢)로서 법을 범(犯)하는 자를 벌(罰)주고 법을 준수하는 자를 상(賞)을 주는 것이다. 군주는 법과 세로서 백성을 다스렸다 군주는 특별한 능력 고매한 도덕을 필요치 않으며 유가들이 주장하는 선행을 위한 모범을 세울 필요도 없고 인격적 감화를 통한 다스림도 필요 없다. 군주가 법을 만들고 백성의 행동을 살피기 위해 능력과 지식이 필요하나 이 과정이 간단치 않은 것이다. 군주는 자신이 모든일을 할 필요는 없다. 군주는 술(術)만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만사를 다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법가가 말하는 正名이란 명(名)에 따라서 실(實)을 따지는 것이다 여기서 실(實)이란 관직을 맡은 인물(人物)을 뜻하며 명이란 관직(官職)의 이름을 가르키는 것이다. 명에 따라 실을 따지는 것이란 어떤 관직을 맡고 있는 인물은 그 직위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완수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뜻한다. 군주의 임무는 인물에게 명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 기능은 법에 의해 규정되어 있고 그관직명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군주는 그 일이 진행되는 한 그 진행 방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일이 잘되면 공로자에게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주는 것이다.그러나 어떤 인물이 그 일에 적합한지 알 수 있냐에 대한 질문은 술(術)로서 하는 것이다.
為人臣者陳而言,君以其言授之事,專以其事責其功。功當其事,事當其言,則賞;功不當其事,事不當其言,則罰。
신하된 자가 진언을 하면 군주는 그 말대로 일을 맡기고, 그 공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묻는다. 공로가 그 일에 합당하고 일이 그 말에 합당한즉 상을 주고 공이 그 일에 합당하지 않고 일이 그 말에 맞지 않으면 즉 벌을 내린다.
이런 상벌을 엄격히 시행을 하면 무능력자는 관직을 준다 하여도 감히 그 직책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무능력자는 제거되고 능력자만 남게 되는 것이다. 실(實)이 그 명(名)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군주는 어찌 알 것인가? 이에 대한 법가의 답은 군주가 의심이나면 직접 시험 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리하지 못할 경우는 남을 시켜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엄격히 그 명(名)에 상응되는 책임을 지고 판단을 내릴 수가 있는 것이다. 한비자에서 이야기하는 이병(二柄)이 바로 상벌(賞罰)이다 이 상벌의 권위 즉 세(勢)만 쥐고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무위지치(無爲之治)를 할 수 있다. 인간 본성의 이익추구 손해회피에서 상벌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凡治天下,必因人情。人情者,有好惡,故賞罰可用;賞罰可用則禁令可立而治道具矣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데 반드시 인정에 따라야 한다. 인정이란 좋음과 싫어함이 있으므로 상벌이 적용될 수 있다. 상벌이 적용될 수 있으면 금령이 수립될 수 있고 다스림의 도(방법)이 갖추어 질 수있다.
법가와 도가
無爲而無不爲 함도 없고 하지 않음도 없다.(아무일을 하지 않아도 안되는 일이 없다)
도가,법가의사상이다. 법가에 의하면 군주에게 무위의 덕이 가장 필요한 것이다. 군주는 남에게 일을 시키는 것 외에 어떤일도 스스로 해서는 안된다.
日月所照,四時所行,雲布風動;不以智累心,不以私累己;寄治亂於法術,託是非於賞罰,屬輕重於權衡
해와 달이 비추고 사시가 운행하고 구름이 퍼지고 바람이 일어나듯 군주는 자신의 꾀로 마음을 묶거나 사심으로 자신을 얽매지 않는다. 법과술에 치란을 맡기고 상벌을 통하여시비를 가려지도록하여 저울에다 경중을 달아본다.군주는 국가통치의 도구를 가졌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안되는 일이 없다. 도가와 법가는 중국 사상의 양극(兩極)단인것이다. 도가는 ‘인간은 순박하다’ 법가는‘인간은 악하다는 전제로 논리를 펴 나간것이다. 또한 인간의 절대자유를 도가는 옹호하였고 법가는 극단적 사회 통제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무위(無爲)라는 공통적 기반을 두고 서로 통한 것이다.무위(無爲)와 유위(有爲)의 구분은 무위는 천하를 부리는 길이요( 爲天下用), 유위는 천하에 부림을 당함인 것이다.(天下用) 그러므로 군주가 천하통치를 위해 직책과 직무를 타인에 부여하여 일을 시키는 행위, 이는 군주통치 방식이 無爲로 천하를 부리는 것이다. 신하는 반대로 有爲로서 천하의 부림을 당하는 것이다.
장자의 천도(天道)
必無為而用天下,下必有為為天下用,此不易之道也。故古之王天下者,知雖落天地,不自慮也;辯雖彫萬物,不自說也;能雖窮海內,不自為也
상(군주)는 반드시 무위함으로 천하를 부리나 천하 백성은 유위함으로 천하의 부림을 당한다. 이는 영원 불변의 도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제왕은 지혜가 비록 천하에 떨치더라도 스스로 사려하지 말고 언변이 비록 만물을 아로 새길수 있어도 스스로 말하지 않고 능력이 비록 사해내에 다하더라도 스스로 함이없이 행하지 않는 것이다.
장자에서도 군주는 스스로 함이 아니라 자기 대신 남이 하도록 명령만 내리는 것이다. 이는 실제 아무일도 하지 않으나 하지 되지 않음이 없는 것 즉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 인 것이다.
是故古之明大道者,先明天而道德次之,道德已明而仁義次之,仁義已明而分守次之,分守已明而形名次之,形名已明而因任次之,因任已明而原省次之,原省已明而是非次之,是非已明而賞罰次之。賞罰已明而愚知處宜,貴賤履位,仁賢不肖襲情,必分其能,必由其名。以此事上,以此畜下,以此治物,以此修身,知謀不用,必歸其天,此之謂太平,治之至也
…중략… 상벌이 이미 밝혀지면 우매한자와 지혜로운자가 마땅한 지위에 처하고 귀하고 천한자가 제자리를 찾고, 어질고 현명한사람과 어리석은자는 실정에 따라 쓰이게 되고, 반드시 그 능력에따라 나누어 지고 반드시 그 명(직무)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윗사람을 섬기고 이것으로서 아래를 길러내고 이로서 사물을 다스리고 이로서 몸과 마음을 닦으면 지모가 쓰이질 않게되고 반드시 그 천(하늘)로 돌아갈 것이고 이를 일러 태평이라하고 다스림의 극치라 한다..
古之語大道者,五變而形名可舉,九變而賞罰可言也。驟而語形名,不知其本也;驟而語賞罰,不知其始也。倒道而言,迕道而說者,人之所治也,安能治人!驟而語形名賞罰,此有知治之具,非知治之道;可用於天下,不足以用天下。此之謂辯士,一曲之人也
옛날 대도를 말하는 자 다섯번째 비로소 형명을 거론하였으며 아홉번째 상벌을 말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형명을 말하는 자는 그 근본을 모르며 갑자기 상벌을 말하는 자는 그 시초를 모른다. 이런 사람은 정치의 도구를 알지만 정치의 도리는 모른다. … 중략 …그는 천하에 부림을 당 할 수 있으나 천하를 부릴 줄 모른다.
법가의 통치방식은 치자(治者)측면의 몰이해성(沒利害性)과 공평무사(公平無私)를 요구하는 것이다.친척일 지라도 벌을 주고 적군일 지라도 상을 주는 것 이것을 치자가 어긴다면 전 국가조직이 붕괴되는 것이다.이러한 요구는 보통인물에게는 막중한 부담이고 그 요구를 수행할 수 있는 이는 성인뿐일 것이다.
법가와유가
유가는 법치와는 반대로 덕치를 주장하였다.유가의 문제는 현실 상황 변화의 사실을 인식 못하고 보수적인 전통 공맹의 사상을 유지하려 하였고 전국시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질 못했던 것이다.그러나 유가는 전통적인 우유적(偶有的)인 혈통에 근거를 둔 재래의 계급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공맹이 군자와 소인의 구분을 세습이 아닌 도덕적인 수양에서 결정을 하는 것에서 보여지고 일반 백성도 예에의해 다스려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볼 수있다. 법가도 계급의 구분이 없고 법과 군주 앞에 만인은 평등(平等)하다고 주장하고 유가의 예(禮)는 폐지하고 상벌(賞罰)로서 기존 봉건귀족(封建貴族)을 평민의 자리로 끌어내린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유가는 이상주의적인 사상이고 법가는 현실주의적인 사상인 것이다.
'한비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노5_욕심보다 더 큰 허물이 없다 (0) | 2022.06.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