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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30. 內儲說上

내저설_ 상 七術:一聽-

七術:一聽-

 

각자의 말을 듣고 책임을 지워라

자기 위주로 말한다

떼어놓고 보아라

떠볼 수 없게 하라

두 갈래 말을 못하게 하라

돌려 말하지 못하게 하라

 

 

 

 

一聽則智愚不分(일청칙지우부분),責下則人臣不參(책하칙인신부참)。其說在索鄭與吹竽(기설재색정여취우)。其患在申子之以趙紹(기환재신자지이조소)、韓沓嘗試(한답위상시)。故公子氾議割河東(고공자범의할하동),而應侯謀弛上黨(이응후모이상당)。 

 

한쪽 말만 들어서는 현명하고 어리석음이 구별되지 않는다. 아랫사람을 꾸짖기만 하면 하면 신하들은 의견을 내어 참여하지 않는다. 그 예는 정 나라에서 여럿이 함께 피리를 불면 그중 누가 잘 불고 못 부는지 알 수 없는 것 등이 있다. 그 신하를 채찍질하지 않은 폐해로는 신자가 조나라를 위해서 한나라에서 군사 원조를 받을 셈으로, 조소와 한답으로 하여금 조나라와 한나라 왕의 의향을 시험한 일이다. 또 한나라의 공자가 하동을 분할하여 3국과 화해를 맺으려 할 때 두 갈래의 말을 하였고, 응후가 상당의 군사를 옮겨 상당을 넘보려고 짐짓 그 계획을 말하지 않고 왕의 의향을 떠본 일 같은 것이 있다.

 

 

魏王謂鄭王曰(위왕위정왕왈):「始鄭(시정)、梁一國也(량일국야),已而別(이이별),今願復得鄭而合之梁(금원복득정이합지량)。」鄭君患之(정군환지),召群臣而與之謀所以對魏(소군신이여지모소이대위),鄭公子謂鄭君曰(정공자위정군왈):「此甚易應也(차심역응야)。君對魏曰(군대위왈):以鄭為故魏而可合也(이정위고위이가합야),則弊邑亦願得梁而合之鄭(칙폐읍역원득량이합지정)。」魏王乃止(위왕내지)。 

 

위왕이 정왕에게 말했다. “원래 정과 양은 같은 나라였으나 훗날 나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정나라를 얻어 양나라와 합치려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정나라 왕은 걱정을 하며 위나라 왕에게 어떻게 회답을 할 것인지 신하들을 모아 상의했다. 정나라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매우 쉽습니다. 임금께서는 위나라에 대해서 「우리 정나라가 본디 위나라 땅이었기 때문에 위나라에 합병시키겠다면,우리도 양을 얻어 그것을 정나라에 합병시키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리하여 위나라는 계획을 중지했다.

 

 

 

齊宣王使人吹竽(제선왕사인취우),必三百人(필삼백인),南郭處士請為王吹竽(남곽처사청위왕취우),宣王說之(선왕설지),廩食以數百人(름식이수백인)。宣王死(선왕사),湣王立(민왕립),好一一聽之(호일일청지),處士逃(처사도)。

一曰(일왈)。韓昭侯曰(한소후왈):「吹竽者眾(취우자중),吾無以知其善者(오무이지기선자)。」田嚴對曰(전엄대왈):「一一而聽之(일일이청지)。」

  

제나라 선왕이 악공들에게 피리를 불게 할 때면 항시 300명을 합주하게 했다. 성밖 남쪽에 살고 있는 풍각쟁이들이 왕을 위해서 퉁소를 불겠다고 나서게 되자 선왕이 기뻐하며 쌀을 주어 초청을 했더니 피리 부는 사람이 수 백 명이나 되었다. 세월이 흘러 민왕이 군주가 되었는데 독주를 좋아했다. 그러자 퉁소를 불던 자들이 모두 도망치고 말았다. 그들 가운데 엉터리가 많았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한나라의 소후가 이렇게 말했다. “피리를 부는 자는 많은데 누가 잘 부는지 알 수 없구나.” 전엄이 말했다. “한 사람씩 불도록 시켜보십시오.

 

 

趙令人因申子於韓請兵(조령인인신자어한청병),將以攻魏(장이공위),申子欲言之君(신자욕언지군),而恐君之疑己外市也(이공군지의기외시야),不則恐惡於趙(부칙공악어조),乃令趙紹(내령조소)、韓沓嘗試君之動貌而後言之(한답상시군지동모이후언지),內則知昭侯之意(내칙지소후지의),外則有得趙之功(외칙유득조지공)。 

 

조나라는 사람을 시켜, 한나라의 신하인 신불해를 통해 한나라에서 군사를 빌려다 위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신불해는 한나라 왕에게 조나라의 부탁을 전하려고 했으나 그것을 전달하게 되면 외국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을 걱정하는 한편 또 전달하지 않으면 조나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조나라의 공족인 조소와 한나라의 공족인 한답에게 군주의 눈치를 살피게 한 다음 조나라의 부탁을 전달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소후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밖으로는 조나라의 (환심을 사는) 공을 얻게 된 것이다.

 

 

三國兵至韓(삼국병지한),秦王謂樓緩曰(진왕위루완왈):「三國之兵深矣(삼국지병심의),寡人欲割河東而講(과인욕할하동이강),何如(하여)?」對曰(대왈):「夫割河東(부할하동),大費也(대비야);免國於患(면국어환),大功也(대공야)。此父兄之任也(차부형지임야),王何不召公子氾而問焉(왕하부소공자범이문언)?」王召公子氾而告之(왕소공자범이고지),對曰(대왈):「講亦悔(강역회),不講亦悔(부강역회)。王今割河東而講(왕금할하동이강),三國歸(삼국귀),王必曰(왕필왈):三國固且去矣(삼국고차거의),吾特以三城送之(오특이삼성송지)。不講(부강),三國也入韓(삼국야입한),則國必大舉矣(칙국필대거의),王必大悔(왕필대회),王曰(왕왈):不獻三城也(부헌삼성야)。臣故曰(신고왈):王講亦悔(왕강역회),不講亦悔(부강역회)。」王曰(왕왈):「為我悔也(위아회야),寧亡三城而悔(녕망삼성이회),無危乃悔(무위내회)。寡人斷講矣(과인단강의)。」

 

, , 한나라 등 3국이 진나라로 공격해 오자 진(秦) 나라 왕이 루완에게 말했다. “세 나라 군사가 우리나라 깊숙이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나는 하동을 나눠주고 강화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루완이 대답했다. “하동을 割讓(할양)한다는 것은 큰 손해입니다. 그러나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훌륭한 공적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결정은 장로의 책임이니 공자를 불러서 상의해 보십시오.” 그래서 왕이 공자를 불러 사실을 말하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강화를 하셔도 후회하실 것이고, 강화를 하지 않아도 후회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지금 하동 땅을 내놓으면 세 나라는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왕께서는 반드시 「세 나라는 자발적으로 철수할 작정이었는데 공연히 땅을 갈라 주었구나」 하고 후회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강화를 하지 않아 세 나라가 침입해 오면 국토를 사실상 빼앗긴 셈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왕께서는 반드시 「하찮은 하동 땅을 내주지 않아서 이 모양이 되었다」 하고 후회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왕께서 강화하여도 후회하실 것이고, 강화를 하지 않아도 후회하실 것이다」 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왕이 말했다. “어찌되든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하동을 주어 버리고 후회하자.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후회한다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應侯謂秦王曰(응후위진왕왈):「王得宛葉(왕득완엽)、藍田(람전)、陽夏(양하),斷河內(단하내),因梁(인량)、鄭(정),所以未王者(소이미왕자),趙未服也(조미복야)。弛上黨在一而已以臨東陽(이상당재일이이이림동양),則邯鄲口中虱也(칙감단구중슬야)。王拱而朝天下(왕공이조천하),後者以兵中之(후자이병중지)。然上黨之安樂(연상당지안악),其處甚劇(기처심극),臣恐弛之而不聽(신공이지이부청),奈何(내하)?」王曰(왕왈):「必弛易之矣(필이역지의)。」

 

진나라의 재상 응후가 진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초나라의 원, 남전, 양하를 얻으셨고, 위나라의 하내를 점령하고, 위나라의 서울인 양과 한나라의 서울인 정을 쳐서 괴롭히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왕업이 달성되지 않는 것은 조나라가 항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당을 포위하기 위한 군사를 이동하여 조나라의 동양을 공략한다면 한단은 입안의 이()처럼 쉽게 으깨 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조나라가 망하면 왕께서는 팔짱을 끼시고 앉아서 제후들을 부르시게 될 것이며, 늑장을 부리고 늦게 오는 자가 있으면 군대를 보내어 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이라는 안락한 곳이 살기 힘든 곳이 되지 않을까 하여 그곳에 있는 수비병을 이동했으면 하는 신의 청을 왕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 걱정이 됩니다.” 왕이 말했다. “반드시 포위를 풀고 군대를 이동시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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