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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순자사상의 시대적배경_2013123

 

순 자

 

 

 

10개월여 남짓 쉬지 않고 달려온 2013년 순자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그냥 흘려 버리기엔 너무 아쉬워 숙제 하는 기분으로이 글을 써 봅니다. 학교 역사책에 성악설을 주창한 학자로, 기존 유학자들 사이에서 이단으로 배척당한 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국시대 전통적인 공,맹의 유가적 가치관이 무너져 가며 더 이상 세상을 이끄는 사상으로 한계를 발견하고 복잡 다양화 해 가는 그 시대에 보다 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유학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백가의 많은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개인의 배움과 수양, 사회,경제,정치,문화에 대한 전 부분에 걸쳐 다루어진 사상서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적 바탕으로 그의 제자인 이사와 한비자에게로 전승되었고 이는 또한 최초 통일 국가인 진()부터 명,청에 이르기까지 끼친 사상적 영향이 있었음을 봅니다.

 

시대적 배경    

 

전국시대(403~221)에 태어난 순자(298~238)가 활동하던 시기는 전국칠웅 진(),(),(),(),(),(),()가 이권을 다투며 필요에 따라 합종연횡하여 전쟁을 하던 시기이다. 춘추시대의 전쟁은 정벌후 왕을 다시 세우거나 조공을 받는 개념의 전쟁이라면 전국시대는 전쟁후 왕조를 멸망시키고 복속시키는 형태로 바뀌어 갔다. 순자사상의 시대적 배경은 수백여년 동안 이어온 전쟁의 혼란이 극으로 치달아 가는 전국말, 아래의 서민으로부터 위로는 군주에 이르기까지 크던 작던 전쟁의 영향아래에 있었고 이는 전쟁을 종식을 염원하는 방향으로 사상이 전개되었음을 짐작케한다 . 사상적으로 다른 방향이지만 많은 제자백가들이 부국 강병을 위한 논의를 전개하고 각 나라의 기본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길 바래왔고 유가는 유가 나름의 치국에 관하여 논하였을 것이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중의 삶에서 순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울러 각 제후국의 탐욕을 보았을 것이다. 이에 공,맹으로 이어져온 ()과 성선(性善)을 당시대에 맞는 주장인지에 대하여 고민하였을 것이고, 전국의 이권쟁탈의 모습들보며 순자가 성악을 주장할 수 밖에 없음을 본다.

()에 대한 개인의 욕()으로 출발하여 사,경대부 결국은 제후국간 이권을 서로 탐하게 되었고 전쟁으로 확대됨을 보며 순자의 사상은 성악설과 예를 토대로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이는 순자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을 위해 그치지 않았던 전국 칠웅의 전쟁에서 위정자보다 더 힘들고 고난 하였던 민중의 삶을 보아왔을 것이고 전쟁 중에 나타난 기본적인 생존본능과 인간의 이익 추구와 탐욕이 인간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에대한 욕()을 예()와 법()으로 다스리고 특히 법에 대한 여지를 많이 열어두는 사상의 전개를 볼 수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전국시대에 전쟁 종식의 염원은 일반 민중에서부터 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바래왔던 것이었음을 짐작해본다. 이러한 바램이 순자로 하여금 왕자시대 도래 이후의 준비를 위한 고민과 사색을 하였을 것이다. ()가 오늘날 자본(資本)주의의 자본(資本)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봅니다.

 

 

 

순자의 사상


 

순자 사후 전한 말기에 작성된 순경신서를 바탕으로 나라 양량(楊倞)이 주석을 달아 오늘날에 순자로 전해지는 순자의 사상적 측면에서 편명의 차례를 잡는 다면 천 인간의 인성은 악하다는 성악(性惡)이 가장 먼저 나온후 이를 로서 다스리는고 는 또한 배움을 통하여 몸에 깃들게 (修身)하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가리우는 사상들을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의 신분에 맞는 도를 확립하여 나라를 다스려 부국 강병으로 하여본다



 

성악(性惡)과 예()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중원의 전쟁은 일반 민중의 삶에서 보면 수탈의 연속적인 삶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끝나지 않을 전쟁에서 순자는 파괴된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였을 것이다. 사람의 인성이 악하다는 것은 앞서 기술 한 바와 같이 전국 시대 피폐해진 민중들이 그 전쟁 속에서 살기 위한 이기적인 욕()이 생기고 이는 이()에 대한 탐욕으로 이어져온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지금 현대로 비추어보면 수십여 년 동안 전쟁과 내전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이권을 빼앗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서슴지 않는 모습, 통제 받지 않은 행동들에서 보는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콩고 수단 등 내전을 오래 격은 나라의 소년병의 살기 어린 눈에서 전국시대 상황을 투영해본다. 이러한 것을 미루어 보아 전국시대 상황이 순자로 하여금 인간의 성정은 악하다는 사유를 이끌게 한 것이라 짐작한다.

철기문명 도입이 농경 문화 정착 및 경작면적의 확대 이로 인하여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많이 경작하려는 이()에 대한 욕()이 커지고 이는 제후국 간에 부국(富國)의 열망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서 19년동안 인도 북부 라다크 지방의 원주민들과 살아오면서 문명의 이기가 원주민들의 이익에 대한 탐욕을 불러오고 파괴되어 가는 인성을 그려낸 부분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전국시대 복잡 다양하게 발전되어 가는 사회구조내의 환경이 이()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통제되지 않는 현실이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다. 이를 사법(師法)과 예()로서 다스리려 함을 보여주고 학()을 쌓아 위()을 가함으로 인간의 본성이 선()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의 기원은 상나라 상제à자연신à조상신의 제사 의식에서 이어지며 상제())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불가능하고 이를 최근에 죽은 조상신이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제사를 통해 신고의 교감을 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상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이를 계승하여 상() ()례에서 출발한 예법에서 확장하여 생()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예()로서 확장되었고 공자가 주례(周禮)를 확립하여 따르게 하였고 순자에 이르러 정치 사회 전반에 걸친 철학으로 자리매김 한것이다.



 

凡禮,事生,飾歡也;送死,飾哀也;祭祀,飾敬也


 

무릇 예라하는 것은 살아 모실 때 기쁨으로 꾸미고,죽은이를 보낼 때 슬픔으로하고, 제사를 모실때는 몸을 삼가하는 것이다.



 

()에 대한 욕으로 악하게 된 인성을 예()로서 節度짓게 하는 것이 악한 성이 선()해지는 것이라 주장한 것이다. ()는 모든 편명에 걸쳐 나올 만큼 순자의 기본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무리지어()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성정이 악()하기 때문에 무리에 필요한 질서를 분계()지어(신분귀천에 따른 차등 구별) 욕망을 다스리고 이 분()을 규정하는 것이 예()인 것이다. ()라는 것을 지킴으로서 사회안정을 가져 온다고 말하고 있다. 이 예의 부족한 기능은 류(:관습 규범))과 법()으로 부족함을 메꾸어 나아감을 순자는 말하고 있다. 순자의 이러한 예치 사상은 공자에서 승계되어 왔으나 공자의 편명 한 켠에 나온 글을 보면 예() 이전에 수반되어야 할 것은 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子曰:「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


 

사람이 인하지 않는데 예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예치는 일반 서민에서부터 군주까지 배워 몸에 익힘을 순자는 주장을 하고있다.  


 

배움과 수양


 

學不可以已。青、取之於藍,而青於藍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知明而行無過矣。


 

배움이란 것은 가히 그만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오지만 쪽빛보다 푸르다.


 

군자는 넓게 배우며 하루 자기 성찰을 하면 지혜가 밝아지고 행함에 허물이 없게 된다


 

학교에서 배웠을 당시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가 나오는 것으로 오역이 되어 많이 읽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이 단문으로만 보면 그 해석이 틀리진 않아 보이긴 하나 勸學편 전반에 걸쳐서 이해되는 부분은 배움 즉 학문이란 배워 깊이를 더하다 보면 원래와는 다른 높은 경지에 오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순자는 爲人之學보다 爲己之學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맹자,순자 가장 중요한 요체는 배워서 행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不聞不若聞之,聞之不若見之,見之不若知之,知之不若行之。學至於行之而止矣。


 

博學之,審問之,慎思之,明辨之,篤行之。


 

널리 배우고 자세히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고 독실하게 행하라_____중용

학문을 하고 예를 배워 이 에 대한 사람의 악한 인성을 선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을 쌓고 덕을 이루어 성인의 마음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부국 강병


 

이러한 욕망의 대한 부분은 정치를 결합한 경제 사상으로 전개함을 본다. 순자 부국(富國)에 나타난 경제운용원칙에서 그것을 확인 할 수 있다



 

足國之道:節用裕民,而善臧其餘。節用以禮 ,裕民以政。


 

나라를 넉넉하게 하는 길은 절도에 맞게 써 민을 여유롭게 하고, 남음은 잘 모아두는 것이다. 예로서 절도에 맞게 사용하고 백성을 넉넉하게 함은 정치로서 한다.

또한 순자는 그 실천 방향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고 있고 이는 현 대한민국 위정자들도 경계해야 할 것으로 보여진다.


 

輕田野之賦,平關市之征,省商賈之數,罕興力役,無奪農時,如是則國富矣。夫是之謂以政裕民。


 

세금부과를 가볍게 하고 관세와 시장세금을 공평하게 하고 상인의 수를 작게 하고 공사 부역을 드물게 일으켜 농사짓는 시간을 빼앗지 아니하게 이와 같은 나라는 부유해진다. 무릇 이것을 일러 정치로서 민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순자는 백성의 삶이 궁핍해지지 않은 바를 정치 제도로서 어찌해야 보여주고 있고 민을 부유하게 하는 방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觀國之強弱貧富有徵:上不隆禮則兵弱,上不愛民則兵弱,已諾不信則兵弱,慶賞不漸則兵弱,將率不能則兵弱。上好功則國貧,上好利則國貧,士大夫眾則國貧,工商眾則國貧,無制數度量則國貧。下貧則上貧,下富則上富


 

강하고 약하고 가난하고 부유한 나라를 살펴 보건데.  ….중략
(지배계층) 공만 좋아하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윗사람이 이익만 좋아하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사대부가 많아지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공상인(재벌) 많아지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제도 도량형이 없으면 나라가 가난해 진다. 아래가 가난하면 위도 가난하고, 아래가 부유하면 위도 부유하게 된다.



 

오늘날에 이득없이 공사를 일으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재벌(장사치)독과점과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많은 이익을 남기고 세금은 적게 내려하니 백성과 나라가 가난해지고, 정치 관료(일하지 않는)들이 많아지면 가난해지고, 위정자들이 이익을 탐하여 사익을 취하려 정책을 쓰는 등의 일들이 나라와 국민이 가난하게 되고, 오래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다. 선심성정책 또는 공만 노리는 정책(사대강, 불필요 경전철, 도로 공항)등에 의해 세수가 부족해지면 국민에게 세금을 과도하게 징수하고 이가 부족하면 법을 이용하여 징벌적 벌금을 징수하여 민을 가난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나라의 잘못된 경제 운용원칙이 재벌들을 키워오고 급기야 국가 통제를 벋어난 경제권력이 탄생하고 이는 더욱더 자국민을 수탈 대상으로 삼고 있고,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또는 바른 집행을 방해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순자는 이를 경계함을 2300년전에 보여주고 있음이 참으로 경이로울 뿐이다.


 

왕제(王制)에서 () 국가 통치의 기본이념으로 사상을 확장시킴을 있다. () ()() 제정하여 세상을 분계 지어 다스리고 빈부귀천의 차등을 두어 서로가 만족하도록 계도하는 것이 왕제의 기본이라 이야기 하고 있다. 왕패(王覇)에서는 치국의 근본이 예와 법과 제도에 있음을 명확히 함을 수있다. 이는 ()자가 아니더라도 ()과같이 백성에 믿음을 주는 ()자를 인정하며 중국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용인함을 본다.



 

또한 군도(君道)에서 非制度,,是人物론으로써 제도보다 인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바른 것을 우선한다는 것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 법가의 제도(시스템) 우선 사고와는 대비가 됨을 있다. 현재 성문법을 채택한 한국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들 중의 하나가 관례 또는 일반적인 관습에 맞지 않아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법을 개정 한다는 모습을 보면 법의 운영원칙이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 마저 들게 한다. 이러한 시류가 법망을 피해가려는 세력들에게 악용의 대상으로 되어감을 본다. 신도 치사에서도 예에 기반한 신하의 도리와 선비의 도리에 대한 논리를 전개를 있다.


 

정명(正名) ,명실(名實)



 

성악설을 바탕으로 예를 이끌어내고 이 예로서 나라의 기본 틀을 다지며 보다 더 철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명실론에 나타난다. 이는 공자의 정명론에서 출발함을 볼 수 있다



 

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事不成,則禮樂不興;禮樂不興,則刑罰不中;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이름이 바르지 않은즉 말이 따르지 아니하고, 말이 따르지 아니한즉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략



 

순자의 명() 바로잡기는 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의 난잡한 설과 제멋대로 지칭한 명칭이 실제와 맞지 않아 일어나는 폐단에 대해 말하고 있고 특히 묵가 명가의 비판을 엄히 하고 있다. 정론(正論)에서 제자백가의 잘못된 사상을 비판하고 군주의 치도(治道) 선명하고 바른 것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사람을 벌주는 형법(刑法)에 대한 기본원칙을 다음 글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凡刑人之本,禁暴惡惡,且懲其未也。


 

무릇 사람을 형벌하는 기본원칙은 폭력을 금하게 하고 악을 미워하게 하며 또한 그 미래를 경계하는 것이다라는 것으로 사후 징벌적인 법가의 사유보다 사전 예방적인 형법의 기능을 강조한다. 정명 즉바르게 앎에 대한 중요성을 다음의 글로 들고 있다



 

淺不足與測深,愚不足與謀智,坎井之蛙,不可與語東海之樂


 

얕은 것은 족히 더불어 깊음을 헤아릴 수 없고 어리석음으로 족히 더불어 지혜를 꾀할 수 없고 우물안 개구리와는 가히 더불어 동해의 즐거움을 말 할 수 없음이다.



 

혜폐장은 가리워진 것을 풀어 해침을 말하고 있다. 전국말기 잘못된 사상(통제되지 않고 다스려지지 않는 상황)이 사회에 영향을 주고 그 그릇된 사상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이르기까지 나쁜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전국의 패권국가가 서로 이익 됨을 위해 전쟁을 하고 다스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묵가 명가 등 여러 궤변론자의 주장이 다스리려는 민중과 위정자의 이성과 사고를 가려 정치 사회적인 통합, 그리고 다스림을 어렵게 하는 사상으로 간주하고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훗날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후 군현제 실시와 법령이 전국에 시행되지 않자 일부 허락된 사람 이외의 서적을 갖지 못하게 하는 분서갱유의 구실 즉 사상적 토대가 된 것이다. 이혜폐장에서는 묵자,송자,신자,혜자,장자의 등이 편협한 사상에 가리어 사람 을 보지 못함을 아래와 같이 비판하고 있다



 

皆道之一隅也。夫道者體常而盡變,一隅不足以舉之


 

모두 도의 한 부분이다 무릇 도라 함은 일정한 법칙을 주축으로 하여 모든 변화를 두루 포섭하는것이다. 한 부분으로서 그것을 들어 보이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상기 글로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 일정부분은 순자도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여진다.


 

정명(正名) 즉 바른 이름, 바르게 이름 짓기를 하는 이유로는 사물을 보고 이해하고 사물의 명과 실이 합당하여야 사회혼란,구분,시비를 명확히 할 수 있고 같음과 다름(同異), 가려야 할 바의 기본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최근 정명의 예에 맞지 않는 한국의 정책 중의 하나가 녹색 성장을 들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속에 인간 삶의 질적인 성장이 명()이었다면 그 실()은 자연파괴와 인간 탐욕의 성장만 보여 주는 결과로 다가왔다. 촌락 중심의 구시가지가 많은 한국에서 도로명주소의 사용, 창조경제도 명만 있고 실이 없는 것이다.



 

천론(天論):순자의 유물론적 사고


 

순자 사상중 서양의 유물론과 견주는 것이 천론이다 이는 동양 최초로 유물론적 세계관이 제시됨을 말하고 있다 서양의 신적사관에서 출발한 유물론 과는 달리 기원전 3세기에 순자는 종교적인 하늘 천()과는 결별을 고하고 자연으로서의 하늘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 자연()이 인간을 주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닌 인간이 활용하는 자연으로서 인식의 전환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明於天人之分 ) 전국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인격신()으로서 천()을 배척하고 자연으로서의 천()으로 사고를 전환하여 홍수 가뭄,해충,자연재해, 일월식 등의 자연현상을 신의 암시 계시 징조로 여기고 또 이를 들어 혹세무민하는 무리들을 배격한 것이다. 천론으로 인하여 자연관이 보다 더 넓고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 기술로서 하늘(자연)을 제어하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사상적 배경이 보다 더 많은 기술발전 자연재해환경의 개선을 이룰 수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인류의 처해진 상황에서 보면 오히려 인간의 오만과 통제받지 않은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가 지구 곳곳에서 들리는 듯하다, 무한할 것만 같은 화석 자원의 고갈과 인구의 급팽창이 불러오는 식량의 부족(혹은 잉여) 그리고 자연을 무시한 개발로 인한 증폭되어가는 지구상의 환경재해 등이 공존해야할 자연의 과 인격신으로서의 천()을 무시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는지 의문을 가져 본다.



 

악론樂論


 

순자 악론은 경세(經世)론의 예악형정(禮樂刑政)중 하나요 공자의 사상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확대 발전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이 禮記 포함되어 있는 樂記(혹은 악경의 일부라고도함)에서 완성이 됨을 알 수 있다. 음악에서 일어나는 기본원리를 살피어 에서 부족한 상하좌우간의 조화()으로서 하는 것이 공자 사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와 악은 상호 보완 적인 존재로서 보는 것이다.



 

樂者,天地之和也;禮者,天地之序也



 

음악은 천지의 조화로움이오 예라는 것은 천지의 질서인 것이다.”


 

여기서 예가 사회적으로 엄격한 신분질서의 구분을 말한다면 악은 사회적 정서적 교감 즉 화합을 담당하는 것이다. 순자는 이렇듯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악에 대한 관념을 전개하였고 또 그 관점에서 묵자의 非樂론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통섭을 내세운 순자로서 묵자의 비악에 대한 비판은 시대적 성찰 측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가 판단해본다. 묵자가 음악을 비난한 것은 


 

是故子墨子之所以非樂者,非以大鍾、鳴鼓、琴瑟、竽笙之聲,以為不樂也;非以刻鏤華文章之色,以為不美也;非以犓豢煎炙之味,以為不甘也;非以高臺厚榭邃野之居,以為不安也。雖身知其安也,口知其甘也,目知其美也,耳知其樂也,然上考之不中聖王之事,下度之不中萬民之利。是故子墨子曰:「為樂,非也。」


 

묵자 선생이 음악을 비난한 까닭은 그큰종 북,거문고 우생의 소리가 즐겁지 않아서가 아니고.나무와 쇠에 새긴 모양이 아름답지 않아서도 아니고…. 중략그러한즉 위를 위로는 성왕의 일에 맞지 않고 아래를 헤아려보면 만민의 이익에 맞지 않음인 것이다 이로서 묵자 선생은 음악을 비난한 것이다.



 

묵자는 순자보다 100여년 앞선 삶을 살았으나 비악론을 전개한 이유는 민중의 피폐해진 삶을 먼저 본 것이고 위정자들의 음악이 민중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하는 것이 음악을 비난하게 된 기본적인 배경일 것이다. 또한 맹자도 與民同樂을 말하며 백성과 함께함을 말하고 있다. 일반론적인 입장에서 견지해보면 순자의 악론은 정치사회적인 조화의 도구로서 매우 중시 하였음을 볼 수 있다.

 

순자를 통해 고찰해본 현대


 

2300여년전 동양의 중심인 중국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순자는 에 대한 기본적인 을 기존 제자백가나 낡은 유가의 사상으로 통제되지 못함을 본 것이고 이에 순자 특유의 사상적 친화력(통섭)을 통해 신 사상 체계를 마련한 것이다. 전국 칠웅이 저마다 패권 쟁탈을 위한 전략을 취하였을 것이고 그 위정자들의 처해진 상황에 맞는 제자들의 주장을 채용하였을 것이다. 여기에 기존의 강국 위, , 초 등의 나라를 제압하고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가장큰 특징은 상앙의 법가사상을 중심으로 기존 구습(봉건제)버리고 전국시대에 알맞은 통치 시스템을 먼저 갖추어 나갔음을 볼 수 있다. 봉건 귀족 신분사회에서 능력 신분 사회로 기존 계급파괴를 가져온 인재의 등용이 결과적으로 부국 강병의 나라로 나아 갈 수 있음을 확인 하였다. 진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새로운 시대 변화의 물결을 읽지 못하고 기존 통치 시스템에 안주한 결과 멸망이라는 길로 들어선 것이라 볼 수 있다. 전국시대 철기 문명의 발달과 농경 정착문화, 그리고 가족사회 분화가 가져온 변화가 기존 봉건시스템이 맞지 않았을 것이고 보다 더 강력한 중앙 집권의 군현제가 필요했음을 본다. 이는 인터넷과 물류혁명이 가져다 준 글로벌화(Globalization)경제적인 국경을 무너트리고 세계적인 자본의 이동이 이익을 좇아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약탈하는 모습이 어쩌면 전국시대의 모습과 닮아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2300여년전 칼과 창을 앞세우고 주변국을 복속하고 멸망하게 하는 것이 현재 세계화의 한 단면을 보는 듯하다. 고삐 풀린 세계 금융자본이 경제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금융시장을 개방을 유도하고 개방된 금융시장을 휩쓸어 약소국의 곳간을 털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1997 IMF를 통해 보았다. 그러한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산업장벽마저 무너트리는 FTA라는 것과 합세하여 일반 민중들의 삶을 더욱 곤혹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자본이 이익을 좇아 휩쓸고 간 자리 약소국의 국민들은 가난해지고 그 터널을 벗어날 즈음 비어진 나라의 곳간은 일반 민중들의 세금,부역으로 채워지고 독과점하는 대기업들마저 일반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가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이는 순자 텍스트에서도 나온 바와 같이 이익을 좋아하는 위정자와 자본권력을 독점한 기업이(工商) 나라를 가난하게 백성을 궁핍하게 하는 것이다.전국 칠웅중의 가장 먼저 망한 나라가 韓非子의 나라인 나라이다. 전국패권을 차지하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몸부림 치다가 진나라에 가장 먼저 정복당하여 패망의 길을 걸은 것이다. 230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중국,미국,일본,유럽 등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韓國모습이 어찌 그리도 전국시대 한나라와 닮아있는지 안타깝고 한편으로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닌가 반문해본다.



 

마무리


 

조금은 멀리 나간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순자의 통섭도 생각을 해보았고, 또 순자가 배운 유가를 바탕으로 다른 사상가들의 이론을 차용하여 자신의 사상적 완성에 쓰지 않았나 하는 곳에도 생각이 미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을 이끄는 방식은 순자교양강의(우치야마 도시히코)에서 빌어 왔음을 밝혀 둡니다. 이운구 교수의 순자를 기본 텍스트로 하였으며 해석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왕선겸의 순자집해를 참조하였읍니다. 원래는 각 32편에 대한 개요와 정리한 내용을 글로서 남기었으나 시간과 능력의 부족으로 그냥 공책에만 남기는 것으로 하였읍니다. 각편에 나오는 한자 문구는 정선생님 강의 중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들을 발췌하고 각 편에 실리는 예시는 오늘날 대한민국과 글로벌화된 세계 경제에 패권적인 미국과 일본 유럽 중국 그사이에 끼인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착안을 하여 넣어 본 것입니다. 다소 억측스런 비유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읽으시는 분의 생각에 따라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으리라 보여집니다. 글의 이해나 글 쓰는 능력도 부족하고 거기에 생각을 보태어 글 씀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배움을 확인 하는 심정에서 글을 써내려 왔습니다. 부족하고 어리석은 부분 많이 지적해 주시고 일깨워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가르침주신 정선생님께 거듭 감사말씀 드립니다.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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