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를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게으름에 대한 찬양
폴 라파르그의 1841년 태어나고 191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자이다. 그의 이력 중 특이한 것은 바로 자본론을 쓴 카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그 유명한 "게으를 수 있는 권리"(Right to Be Lazy)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문명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노동(Labor)은 그것을 통해 얻은 재화를 쓰고 남은 잉여를 전사, 사제 집단에게 상납되고(지금은 산업, 금융자본과 국가 대신함) 심지어 착취를 당하는 시대가 되어왔다. 이러한 이런 오랜 사유체계에서 노동은 신성시되고 부지런한 노동은 미덕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고대에서 중세에 있던 노예의 미덕이었다.
1800년대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는 서구 유럽을 산업과 경제, 문화, 철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러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는 인민 대중을 과도한 노동으로 밀어 부쳐 성인의 경우는 15시간, 아동의 경우 12시간이라는 노동에 노출되었다.이에 폴 라파르그는 인간 본성의 회복을 위해 여가와 휴식을 누릴 권리를 주장하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시기 자본가와 성직자들이 결탁하며 들고 나온 중요 논리가 바로 ‘노동의 신성화’이다.나태, 느림, 게으름은 바로 종교적 측면에서 민중의 교화를 목적으로 경도되어 사용된 단어이다. 그에 대비하여 성실함 빠름 부지런함 등의 단어는 인간을 착취하기 위해 교묘하게 변용된 단어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기술발전이 보다 많은 생산이 가능하게 된 시장, 그리고 운송수단의 발달로 더욱 활발해진 교역이 바로 장시간의 노동을 강요하며 인민 대중에게 그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세뇌하고 강요한 것이다.
과도한 노동에 피폐해지는 대중의 삶을 들여다 본 라파르그는 충분한 여가와 휴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사례를 들며 고대 로마와 중세유럽에서도 적절한 휴일이 보장되었음을 예로 들며 과도한 육체노동에 노출된 민중의 삶을 보라 말한다.
그 당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축소하여 하루 3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와 휴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시간의 노동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부족하지 않을 재화를 얻고 그 나머지 시간을 여가와 축제를 즐기는 인간이 행복을 향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폴 라파르그의 주장은 100여년이 지났다. AI, 로봇, 자율주행, 등의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에 깊게 들어와 있는 이 시점에 돌아보면 그의 주장은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단순한 해방을 넘어 보다 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은 라파르그 보다 30년 뒤 1872년 태어나고 1970년 죽음을 맞이한다. 자유주의자이며 사회주의자, 평등주의자인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보다 더 발전시켜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을 저술한다.
기본적인 토대는 라파르그의 주장에 더하여 여가가 인간의 창의적 활동을 촉진하여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돕고, 여가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데 중요한 요소라 말한다. 라파르그 보다 급진적 이진 않지만 그는 하루 4시간의 노동만 할 것을 주장한다.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 필요한 일만하고 그 나머지 시간을 인생의 행복과 환희를 위해 소비하는 삶으로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대가 변하고 기술과 문명이 진보한 만큼 기술 발전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할 수는 없지만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그 혜택에 소수에게 돌아가는 것을 비판한다. 즉 산업자본과 금융 자본에게 그리고 지주에게 돌아가는 이 혜택을 다수에게 적절하게 분배하고 그 분배를 통한 여가를 공평하게 누리는 사회적 구조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10여년전 친구들과 모임에서 은퇴를 주제로 작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많은 친구들은 60세 정년을, 나는 55세를 목표로 은퇴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노동을 위해 소비되는 시간에 대해서도 줄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지금은 55세 은퇴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노동시간보다 최소 2시간 이상은 줄었다. 개인적 상황을 전제로 아침 8시 출근해서 8시 퇴근하던 시간은 8시 출근 6시 퇴근으로 획기적으로 줄었다. 노동시간을 법으로 강제하며 일어난 변화이다.
87년 입사당시 주 6일제 기본 10시간 근무(특근하면 7일 12시간)에서 격주 토요일 반나절 근무, 격주 5일제, 그리고 5일제 근무로 변화를 겪어 왔다. 최근에는 근무시간 총량만 채우면 되는 유연근로제로 변화되어 여가시간 활용은 이전보다 자유롭게 된 것이다. 하루기준 20%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한주 기준 23% 여가가 생긴 것이다. 지금은 그것을 넘어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조종할 수 있는 유연 근로제도 도입되었다. 실로 35년 만의 일이다.
2020년이후 AI와 로봇의 기술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부르고 있다. 인간의 노동력이 덜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은 노동의 종말을 가져온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체하고 AI가 정신노동을 대체하고 있으며 가속화하고 있다. 초 연결성은 그것을 더욱더 가속한다. 이러한 노동의 종말 시대 더 나아가 'AI의 시대 인간으로서 존엄 하려면 무엇을 지녀야 하는가? ' 하는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을 던지고 탐구하며 AI보다 창의적인 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가 시간인 것이다. 노동에서 해방이 아니라 합리적인 노동과 여가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AI시대 초 연결 시대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인류 전체를 덮고 쓸어버릴 쓰나미 앞에서 변할 것과 변화하지 않을 것을 잘 가려야 한다. 변화에 힘을 싣고 그 변화에 잘 대응하며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 변화하지 않을 것에 집중하여 삶의 무게를 실어 통찰하면 또한 하나의 방편이 될 것이다.
앞으로 전개될 미래는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노동은 소멸해갈 것이며 노동에서 자유로워지고 여가는 늘어날 것이다. 반대로 일반 대중의 삶은 경제적으로 여유는 줄어들 것이고 팍팍해질 것이다. 그 준비를 우리는 해야하지 않을까 본다. 지금의 내가 당하지 않을 미래라면 우리 뒤 세대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