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30. 內儲說上

내저설_상_ 칠술_참관 (參觀)

반구저기 2024. 8. 6. 18:50

30篇 《內儲說上》

내저설 상하는 한비자의 법() () ()중 정치술을 논하는 장이다. 이 군주의 정치술은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 전술의 내용을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장이다. 그중 일곱 가지 술법의 활용과 여섯 가지 기미를 잘 살피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칠술 (七術)

참관 (參觀): 여러 신하의 말을 참조하고 관찰하라.

필벌 (必罰): 죄 있는 자는 반드시 벌하라.

상예 (賞譽): 상을 주고 칭찬하라.

일청 (一聽): 하나하나 들어라.

궤사 (詭使): 계책을 쓰라.

협지 (挾智): 모르는 척 물어라.

도언 (倒言): 반대되는 말을 하라.

 

 

 

 

主之所用也七術(주지소용야칠술), 所察也六微(소찰야륙미)。七術(칠술): 一曰衆端參觀(일왈중단참관), 二曰必罰明威(이왈필벌명위), 三曰信賞盡能(삼왈신상진능), 四曰一聽責下(사왈일청책하), 五曰疑詔詭使(오왈의조궤사), 六曰挾知而問(륙왈협지이문), 七曰倒言反事(칠왈도언반사)。此七者(차칠자), 主之所用也(주지소용야)

 

군주가 신하를 거느리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수법이 있고, 그들을 관찰하는 데는 여섯 가지 기미가 있다. 일곱가지 수법이란 첫째, 신하의 여러 가지 말을 서로 비교하며 관찰한다. 둘째, 죄 있는 자는 반드시 벌하여 군주로서의 위력을 보여 준다. 셋째, 공을 세운 자는 반드시 상을 주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게 한다. 넷째, 신하의 말을 한 번 들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것을 실행하여 성공하도록 강구한다. 다섯째, 신하에게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고 모략에 의해서 그를 사용한다. 여섯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신하에게 묻는다. 일곱째, 생각과는 반대되는 말을 하여 반대되는 일을 행한다. 이상 일곱 가지 사항은 군주가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2. 七術: 參觀一

 

한 신하에게 힘이 몰려서는 안 된다

신은 반대 의견을 없앤다

한 사람의 말만 믿지 마라

모든 사람에 대비하라

같은 세력으로 견제하게 하지 마라

이구동성이면 믿게 된다

 

觀聽不參則誠不聞(관청부참칙성부문),聽有門戶則臣壅塞(청유문호칙신옹새)。其說在侏儒之夢見灶(기설재주유지몽견조),哀公之稱莫眾而迷(애공지칭막중이미)。故齊人見河伯(고제인견하백),與惠子之言亡其半也(여혜자지언망기반야)。其患在豎牛之餓叔孫(기환재수우지아숙손),而江乙之說荊俗也(이강을지설형속야)。嗣公欲治不知(사공욕치부지),故使有敵(고사유적)。是以明主推積鐵之類(시이명주추적철지류),而察一市之患(이찰일시지환)。

 

사람의 말을 관찰하고 받아들일 때, 여러 사람의 말을 참작하지 않으면 진실은 군주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신하의 말을 들음에 문이 있다면 신하는 군주의 총명을 막아 흐리게 할 수 있다. 이상에 대한 예로 난쟁이가 꿈에 아궁이를 보았다고 하여, 위나라 영공을 풍자한 것과 노나라의 애공이 많은 사람과 함께 꾀하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여 공자에게 비난당한 일이 있다. 또 제나라 사람이 하백을 왕에게 보여준 일이나, 혜자가 군주가 일을 꾸밀 때는 진실을 말하는 신하와 허위를 말하는 신하가 제각기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니 그 때문에 절반을 잃게 된다고 하는 예들이 있다. 그 해악은 수우가 숙손자를 굶겨 죽인 일이나, 강을이「남의 나쁜 짓을 말하지 않는 풍속이 있었기 때문에 백공이 난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초나라 풍속을 논하였고, 위나라 사군이 나라를 다스리겠다면서 사람의 말들을 두루 참작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지 않은 백성이 그와 대립하는 인물과 결탁하게 만들어 결국 적을 만들었다는 일에서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현명한 군주는 철판으로 담을 쌓아 올려 화살을 막듯 신하를 의심하여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나라 안 시장의 문제를 살핀다.

 

 

衛靈公之時(위령공지시),彌子瑕有寵(미자하유총),專於衛國(전어위국),侏儒有見公者曰(주유유견공자왈):「臣之夢踐矣(신지몽천의)。」公曰(공왈):「何夢(하몽)?」對曰(대왈):「夢見灶(몽견조),為見公也(위견공야)。」公怒曰(공노왈):「吾聞見人主者夢見日(오문견인주자몽견일),奚為見寡人而夢見灶(해위견과인이몽견조)?」對曰(대왈):「夫日兼燭天下(부일겸촉천하),一物不能當也(일물부능당야)。人君兼燭一國(인군겸촉일국),一人不能壅也(일인부능옹야),故將見人主者夢見日(고장견인주자몽견일)。夫一人煬焉(부조일인양언),則後人無從見矣(칙후인무종견의)。今或者一人(금혹자일인)、有煬君者乎(유양군자호)?則臣雖夢見灶(칙신수몽견조),不亦可乎(부역가호)!

 

위나라 영공 때 미자하가 영공의 총애를 받으며 위나라 정치를 전횡하고 있었다. 한 난쟁이가 영공에게 말했다. “제 꿈이 맞았습니다.” 그러자 영공이 물었다. “어떤 꿈이었느냐?” 난장이가 대답했다. “꿈에 아궁이를 보았는데 그것이 군주님을 만나게 될 징조였습니다. 영공이 노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듣기에 군주를 배알 하는 자는 태양을 꿈꾼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를 만나는데 하고많은 물건 가운데서 하필이면 아궁이를 보았 다니 무슨 뜻이냐.” 난쟁이가 대답했다. “원래 태양이라는 것은 천하를 두루 비추는 것으로서 한 사물을 가지고 그 빛을 막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군주께서는 나라 안의 모든 사람을 두루 비추고 계시므로 단 한 사람만을 가지고는 그 빛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주를 만날 자는 태양을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궁이의 불이라는 것은 한 사람만 그 앞에서 불을 쬐고 있어도 뒤에 선 사람은 불빛을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군주 앞에서 불을 쬐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꿈에 아궁이를 본 것도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魯哀公問於孔子曰(로애공문어공자왈):「鄙諺曰(비언왈):莫眾而迷(막중이미)。今寡人事(금과인거사),與群臣慮之(여군신려지),而國愈亂(이국유란),其故何也(기고하야)?」孔子對曰(공자대왈):「明主之問臣(명주지문신),一人知之(일인지지),一人不知也(일인부지야)。如是者(여시자),明主在上(명주재상),群臣直議於下(군신직의어하)。今群臣無不一辭同軌乎季孫者(금군신무부일사동궤호계손자),舉魯國盡化為一(거로국진화위일),君雖問境內之人(군수문경내지인),猶不免於亂也(유부면어란야)。

 

노나라 애공이 공자를 방문해서 물었다. “속담에 「많은 사람과 상의를 하면 미혹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일을 도모하면서 신하들과 상의를 하는데도 나라가 더욱 혼란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현명한 군주가 신하에게 물어보면 한 신하만이 이것을 알고 있고, 다른 신하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명한 군주는 위에서 추기(樞機)를 장악하고, 신하들은 아래에서 생각을 숨기지 않고 의논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신하들은 모두 자기들의 의견이나 행동을 대부인 계손의 비위를 맞추고 있습니다. 노나라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있는 까닭에 국내의 사람에게 물어보셔도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을 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집단 지성이 장점 도드라진다 그러나 집단지성이 잘못되며 일어나는 사회적 혼란은 그만큼 더 크게 나타난다. 노 애공당시 정치 상황을 미루어보면 집단 내에서 비판적 사고가 억제되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 그 조직은 망해가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一曰(일왈)。晏子聘魯(안자빙로),哀公問曰(애공문왈):「語曰(어왈):莫三人而迷(막삼인이미)。今寡人與一國慮之(금과인여일국려지),魯不免於亂何也(로부면어란하야)?」晏子曰(안자왈):「古之所謂莫三人而迷者(고지소위막삼인이미자),一人失之(일인실지),二人得之(이인득지),三人足以眾矣(삼인족이위중의),故曰莫三人而迷(고왈막삼인이미)。今魯國之群臣以千百數(금로국지군신이천백수),一言於季氏之私(일언어계씨지사),人數非不眾(인수비부중),所言者一人也(소언자일인야),安得三哉(안득삼재)?

 

 

다른 설에 의하면 이렇다. 제나라의 안영이 노나라를 예방했을 때, 애공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세 사람이 모이면 미혹되지 않는다는데 지금 나는 세 사람은커녕 나라 안의 사람과 상의를 하는 데도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어찌 된 영문인가.” 안자가 대답했다. “옛말에「세 사람이 모이면 미혹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그중 한 사람이 그르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이 그르지 않으므로, 세 사람이 있어도 많은 사람과 같은 힘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모이면 미혹되지 않는다」 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노나라 신하들은 몇 천 몇 백이 되나 입을 모아 계씨에게 이익이 되는 말만을 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는 많지만 한 사람이 말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齊人有謂齊王曰(제인유위제왕왈):「河伯(하백),大神也(대신야)。王何不試與之遇乎(왕하부시여지우호)?臣請使王遇之(신청사왕우지)。」乃壇場大水之上(내위단장대수지상),而與王立之焉(이여왕립지언)。有閒(유한),大魚動(대어동),因曰(인왈):「此河伯(차하백)。」

 

제 나라의 어떤 사람이 제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물의 신 하백은 훌륭한 신입니다. 임금님께서 잠깐 만나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제단을 큰 강가에 마련하고 왕과 함께 그곳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큰 물고기가 나타나자. “저것이 하백입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張儀欲以秦(장의욕이진)、韓與魏之勢伐齊(한여위지세벌제)、荊(형),而惠施欲以齊(이혜시욕이제)、荊偃兵(형언병)。二人爭之(이인쟁지),群臣左右皆張子言(군신좌우개위장자언),而以攻齊(이이공제)、荊利(형위리),而莫惠子言(이막위혜자언),王果聽張子(왕과청장자),而以惠子言不可(이이혜자언위부가)。攻齊(공제)、荊事已定(형사이정),惠子入見(혜자입견),王言曰(왕언왈):「先生毋言矣(선생무언의)。攻齊(공제)、荊之事果利矣(형지사과리의),一國盡以然(일국진이위연)。」惠子因說(혜자인설):「不可不察也(부가부찰야)。夫齊(부제)、荊之事也誠利(형지사야성리),一國盡以利(일국진이위리),是何智者之眾也(시하지자지중야)?攻齊(공제)、荊之事誠不利(형지사성부리),一國盡以利(일국진이위리),何愚者之眾也(하우자지중야)?凡謀者(범모자),疑也(의야)。疑也者(의야자),誠疑(성의),以可者半(이위가자반),以不可者半(이위부가자반)。今一國盡以可(금일국진이위가),是王亡半也(시왕망반야)。劫主者固亡其半者也(겁주자고망기반자야)。

 

장의가 위나라에 있으면서, 진나라와 한나라 그리고 위나라의 군대로 제나라와 초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그 당시 혜시는 제나라와 초나라를 끌어들여 진나라와 한나라의 내습을 멈추게 하려 하고 있었으므로 둘이서 논쟁을 하게 되었다. 여러 신하와 왕의 근신은 모두가 장의를 위하여 찬성을 하고 제나라와 초나라를 공략하는 것이 유익하다 하여 혜시의 의견에는 찬성하는 자가 없었다. 왕은 마침내 장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혜시의 주장을 거부하고 제나라와 초나라를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혜시가 왕에게 충고하고자 왕을 만나러 갔더니 왕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 이제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제나라와 초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나라 안 여론이 모두 좋다고 한 것이오.” 혜시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말은 충분히 검토하셔야 합니다. 제나라와 초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실제로 유리한 것이고, 또 나라 안 사람 모두가 유리하다고 한다면 얼마나 지혜 있는 자가 많은 것입니까. 또 제나라와 초나라를 공략하는 일이 정말 불리한데 나라 안 사람 모두가 유리하다고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미련한 자가 많은 것입니까? 본래 남과 상의한다는 것은 의심스럽기 때문이며, 의심스럽다 하는 것은 정말 의심스러운 것이어서 그 일이 좋다고 생각하는 자가 반수이며, 그 일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가 그 절반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나라 안 사람 전부가 그 일을 옳다고만 한다니, 왕께서는 상의한 사람의 절반을 잃은 셈입니다. 본래 군주를 위협하는 간신은 그 반수의 인원을 제거하는 법입니다.

 

叔孫相魯(숙손상로),貴而主斷(귀이주단)。其所愛者曰豎牛(기소애자왈수우),亦擅用叔孫之令(역천용숙손지령)。叔孫有子曰壬(숙손유자왈임),豎牛妒而欲殺之(수우투이욕살지),因與壬游於魯君所(인여임유어로군소),魯君賜之玉環(로군사지옥환),壬拜受之而不敢佩(임배수지이부감패),使豎牛請之叔孫(사수우청지숙손),豎牛欺之曰(수우기지왈):「吾已爾請之矣(오이위이청지의),使爾佩之(사이패지)。」壬因佩之(임인패지),豎牛因謂叔孫(수우인위숙손):「何不見壬於君乎(하부견임어군호)?」叔孫曰(숙손왈):「孺子何足見也(유자하족견야)。」豎牛曰(수우왈):「壬固已數見於君矣(임고이수견어군의)。君賜之玉環(군사지옥환),壬已佩之矣(임이패지의)。」叔孫召壬見之(숙손소임견지),而果佩之(이과패지),叔孫怒而殺壬(숙손노이살임)。

壬兄曰丙(임형왈병),豎牛又妒而欲殺之(수우우투이욕살지),叔孫丙鑄鐘(숙손위병주종),鐘成(종성),丙不敢擊(병부감격),使豎牛請之叔孫(사수우청지숙손),豎牛不請(수우부위청),又欺之曰(우기지왈):「吾已爾請之矣(오이위이청지의)。使爾擊之(사이격지)。」丙因擊之(병인격지),叔孫聞之曰(숙손문지왈):「丙不請而擅擊鐘(병부청이천격종)。」怒而逐之(노이축지)。丙出走齊(병출주제),居一年(거일년),豎牛謝叔孫(수우위사숙손),叔孫使豎牛召之(숙손사수우소지),又不召而報之曰(우부소이보지왈):「吾已召之矣(오이소지의),丙怒甚(병노심),不肯來(부긍래)。」叔孫大怒(숙손대노),使人殺之(사인살지)。二子已死(이자이사),叔孫有病(숙손유병),豎牛因獨養之而去左右(수우인독양지이거좌우),不內人(부내인),曰(왈):「叔孫不欲聞人聲(숙손부욕문인성)。」因不食而餓殺(인부식이아살)。叔孫已死(숙손이사),豎牛因不發喪也(수우인부발상야),徙其府庫重寶空之而奔齊(사기부고중보공지이분제)。夫聽所信之言(부청소신지언),而子父為人僇(이자부위인륙)此不參之患也(차부참지환야)。

 

숙손자가 노나라 재상이 되자 국정을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그가 총애하는 수우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 또한 숙손자의 명령을 멋대로 행하고 있었다. 숙손자에게는 임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수우는 그 아들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래서 임을 데리고 노나라 군주의 궁전을 방문하였다. 군주는 임에게 옥환을 선물했다. 임은 큰절을 하며 그것을 받았는데 부친의 허가가 없었기 때문에 그 패용을 삼가고 수우에게 부탁하여 부친에게 허가를 받아달라고 했다. 수우는 임을 속여 이렇게 말했다. “부친께 이미 말씀을 드렸는데 패용해도 좋다고 하셨다.” 임은 옥환을 패용했다. 한편 수우는 숙손자에게 말했다. “왜 아직까지 임을 군주에게 인사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배알 하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숙손자가 말했다. “그 애는 아직 어리다. 그렇게까지 할 것 없다.” 수우가 말했다. “모르시는 모양인데, 사실 아드님께서는 이미 여러 번 군주를 만났습니다. 군주께서 아드님께 옥환을 내리시고 아드님은 그것을 패용하고 있습니다.” 숙손자가 임을 불러들여 보니 수우가 말한 그대로였기 때문에 숙손자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옥환을 패용한데 노하여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에게는 병()이라는 형이 있었다. 수우는 그도 미워하여 제거하려 벼르고 있었다. 그 즈음 숙손자가 병()을 위하여 종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병은 종을 치는 것을 삼가고, 수우에게 부탁하여 종을 칠 수 있도록 부친의 허락을 받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수우는 또 병()을 속여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부친께 말씀드렸다. 종을 쳐도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병은 종을 쳤다. 숙손자는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병이란 놈이 내 허락도 없이 멋대로 종을 치는구나. 그리고는 병을 쫓아냈다. 병은 제나라로 도망쳐 달아났다. 그 후 1년 뒤에 수우는 숙손자에게 자기 잘못을 실토하게 되었고, 숙손자는 수우를 시켜 병을 불러오게 했으나 수우는 병을 불러오지 않고 숙손자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병에게 귀국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화를 내며 귀국을 거부했습니다.” 숙손자는 크게 노하여 사람을 시켜 병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하여 숙손자의 두 아들은 죽게 되었다. 얼마 후 숙손자도 병석에 눕게 되었다. 수우는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숙손자는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꺼려한다」 고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하여 숙손자는 굶어 죽고 말았다. 그가 죽은 다음에도 초상이 났다는 것을 숨기고, 수우는 그 집의 창고에 있던 귀중한 보물을 싣고 제나라로 도망하고 말았다. 숙손자가 자기가 신용하고 있는 자의 말만 믿고 있다가 부자가 다 함께 죽음을 당하고 웃음거리가 된 것은 한 사람의 말만 믿고 다른 사람의 말을 참작하지 않은 데서 일어난 재난이었던 것이다.

 

江乙為魏王使荊(강을위위왕사형),謂荊王曰(위형왕왈):「臣入王之境內(신입왕지경내),聞王之國俗曰(문왕지국속왈):君子不蔽人之美(군자부폐인지미),不言人之惡(부언인지악),誠有之乎(성유지호)?」王曰(왕왈):「有之(유지)。」「然則若白公之亂(연칙약백공지란),得庶無危乎(득서무위호)!誠得如此(성득여차),臣免死罪矣(신면사죄의)。

 

강을이 위나라 왕의 명을 받고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강을이 초왕에게 말했다. “제가 왕의 영내에 들어와서 그 풍속을 보니 「군자는 남의 선한 일을 숨기지 않고, 남의 악한 일을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초왕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강을은 또 말했다. “백공의 반란과 같은 불상사가 그로 인해 일어났는데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남의 나쁜 일을 말하지 않게 되면 제가 나쁜 일을 저지르더라도 말하는 사람이 없어 죽을 죄를 면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衛嗣君重如耳(위사군중여이),愛世姬(애세희),而恐其皆因其愛重以壅己也(이공기개인기애중이옹기야),乃貴薄疑以敵如耳(내귀박의이적여이),尊魏姬以耦世姬(존위희이우세희),曰(왈):「以是相參也(이시상참야)。」嗣君知欲無壅(사군지욕무옹),而未得其術也(이미득기술야)。夫不使賤議貴(부부사천의귀),下必坐上(하필좌상),而必待勢重之鈞也(이필대세중지균야),而後敢相議(이후감상의),則是益樹壅塞之臣也(칙시익수옹새지신야)。嗣君之壅乃始(사군지옹내시)。

 

위나라 사군은 대부인 여이(如耳)를 중히 여기고 또한 세희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이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기화로 음모를 하지 않을까 하여, 박의라는 신하로 하여금 여이를 견제하게 하는 한편 위희를 시켜 세희를 견제하고 사군은 말했다. “이와 같이 짝을 지워 서로 견제하도록 하면 안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군에게는 자기 사람을 보는 총명이 흐려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신분이 낮은 자에게 신분이 높은 자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은 상사의 죄를 모르고 있으면 연좌하게 되므로 상사를 고발하지 못하고, 세력이 같은 자를 두 패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하면 이것은 군주의 총명을 흐리게 하는 세력을 늘리는 결과가 된다. 군주의 총명이 흐리게 되는 것은 이에서 비롯된다.

 

夫矢來有鄉(부시래유향),則積鐵以備一鄉(칙적철이비일향);矢來無鄉(시래무향),則為鐵室以盡備之(칙위철실이진비지)。備之則體不傷(비지칙체부상)。故彼以盡備之不傷(고피이진비지부상),此以盡敵之無姦也(차이진적지무간야)。

 

일정한 방향으로 날아오는 화살은 철판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날아오는 방향을 막으면 된다. 만일 화살이 일정한 방향이 없이 날아오게 되면 쇠로 방을 만들어 모든 방향을 막아야 한다. 그리하면 몸에 상처를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날아오는 방향을 모르는 화살에 대해서 대비를 하듯 군주가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비하면 간신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龐恭與太子質於邯鄲(방공여태자질어감단),謂魏王曰(위위왕왈):「今一人言市有虎(금일인언시유호),王信之乎(왕신지호)?」曰(왈):「不信(부신)。」「二人言市有虎(이인언시유호),王信之乎(왕신지호)?」曰(왈):「不信(부신)。」「三人言市有虎(삼인언시유호),王信之乎(왕신지호)?」王曰(왕왈):「寡人信之(과인신지)。」龐恭曰(방공왈):「夫市之無虎也明矣(부시지무호야명의),然而三人言而成虎(연이삼인언이성호)。今邯鄲之去魏也遠於市(금감단지거위야원어시),議臣者過於三人(의신자과어삼인),願王察之(원왕찰지)。」龐恭從邯鄲反(방공종감단반),竟不得見(경부득견)。

 

위나라의 신하 방공과 태자 인질이 되어 조나라의 邯鄲(한단)으로 출발하려고 할 때 위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어 시장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소리를 지르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믿지 않을 것이다.” 방공이 말했다. “그러면 두 사람이 나타나서 시장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믿지 않겠다.” 방공이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세 사람이 나타나서 시장에 호랑이가 나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믿게 될 것이다. 그러자 방공이 말했다. 시장에 호랑이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있는 것이 됩니다. 지금 제가 가려고 하는 邯鄲(한단)은 그 거리가 위나라의 시장보다 훨씬 먼 곳에 있고, 또한 제가 없는 동안 이러쿵저러쿵 제 얘기를 할 사람은 세 사람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아무쪼록 왕께서는 현명하게 살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훗날 방공이 한단에서 귀국해 보니, 왕은 여러 사람의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끝내 그는 왕을 배알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