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삼불여_ 중국 최고의 명장 한신

반구저기 2024. 8. 9. 15:21

3 한신

 

 

한고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중의 하나가 능신(能臣)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평민이었던 그의 삶을 통해 깨달은 겸손의 자세로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의 책략을 수용해서 그의 무리를 이끌어 갔다. 항우는 이와 반대였다. 스스로 검술로는 일기당천(一騎當千)을 전쟁에서는 백전(百戰)필승(必勝)을 하여 스스로 우월하고 오만함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참모들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았던 것이다. 한고조 유방은 장량의 책략과 한신의 병법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어 연전연승을 하고 결국 중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다. 

 

한신을 대표하는 유명한 고사는 과하지욕 표모반신 국사무쌍, 토사구팽 다다익선 배수의 진등 이루 다 말하기가 어렵다. 그중 국사무쌍(國士無雙)은 소하가 장량을 추천하면서 쓴 성어로 천하에 한신 만한 장수가 둘도 없다는 말이다. 소하를 통해 유방의 대장군이 되고 그의 병법에 의해 유방의 군사력은 배가되어 천하통일에 일조를 한다. 그리고 이런 한신을 죽게 만든 것 또한 소하이다. 유방의 천하 통일후 무신(武臣) 세력들은 토사구팽을 당한다. 그러던 차에 위기를 느낀 한신은 모반의 혐의로 여태후와 소하의 꾐에 빠져 함양으로 끌려가 죽음을 당한다. 

 

항우는 장수의 리더십에서 유방은 군주의 리더십에서 더 탁월하였다. 그러나 전장의 말 위에서 천하 경영을 할 수 없듯이 항우는 장수로서의 면모는 탁월하였지만 국가 경영의 패자로서는 한참 모자랐다. 즉 천하를 경영하는 것은 말 위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초한 전쟁 동안 유방은 항우에게 매번 참패하였다. 그러나 유방은 그의 장수와 참모를 이끄는 리더십이 탁월하였다. 인재등용기술의 탁월함이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이와 반대로 리더십의 부재가 큰 수고로움으로도 결국 유방에 패하고 죽어간 것이다.

 

한고조 유방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잘 못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知己). 그리고 두 번째 더 큰 장점은 인재를 알아보는 통찰력에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인재의 능력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이를 믿고 신뢰하여 쓰는 능력이 있다. (知彼) 세번째가 일의 맡김에 있다. 믿고 쓰는 인재 용인술이다. 소하로 하여금 국가의 안살림을 맡기고, 장량으로 하여금 계책을 세우게 하고, 한신으로 하여 전권을 부여하여 전쟁을 치르게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용력이다.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 하여 질투하지 않고 부족하다 하여 내치지 않는 포용력이다. 이것이 유방을 황제에 자리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漢) 제국의 토대를 닦아놓은 것이다.

 

소하와 장량을 손에 넣은 유방의 마지막 인재 등용은 바로 한신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신을 추천한 인물은 소하이다. 회음현에서 무직으로 친구집에서 빌어 먹던 한신은 진시황 사후 전국에서 변란이 발생하자 항우의 군대로 들어가 낭중이 되었다. 한신은 자신의 계략을 자주 항우에게  말했으나 채용되지 아니하자 초나라를 떠나 유방의 한나라로 도망가 유방의 수하에 들어가나 마찬가지로 중용되지 않자 다시 떠나게 된다. 이를 늦게 안 소하가 한신을 따라잡아 설득하고 한 고조 유방에게 설득하면서 한 말이 국사무쌍(國士無雙)이다. 이후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 삼아 천하 통일에 나서는 것이다.

 

한 고조 2년 유방이 거병하여 함곡을 나와 삼진(三秦)을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위, 하남, , 은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제나라와 조나라와 군대를 연합하여 초나라를 치러하였으나 대패하고 병사들이 달아나 흩어졌다. 이때 한신이 등장하여 한신의 군대와 유방의 남은 병사를 규합하여 형양에서 만나 경()과 색()에서 승리하니 초나라 군대는 서쪽으로 진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한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한 첫 전투였던 것이다. 그러나 초나라와의 패전은 유방과 연합관계이던 여러 나라를 초나라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 위나라 왕표 등이 그러하였다.

 

  배수의 진_천하 통일의 토대 정형전투

 

 

초나라를 치려면 북동쪽에 있는 조나라와 대나라 제나라를 먼저 복속시켜야 했다 이에 한 고조 유방은 한신으로 하여금 장이와 더불어 조와 대를 치려 했다. 이때 한신의 군대는 정예군이 아닌 승전 도중에 항복한 병사들과 농민들이었다. 그리고 정형을 치려면 좁은 협곡을 지나야 되는데 매복과 기습에 한나라 군대에는 불리한 지형이었다. 이런 지리 군사적 이점을 잘 알고 있던 광무군 이좌거가 계책을 주청하나 조왕 헐과 성안군 진여는 채택하지 않는다. 세작을 통해 이를 알아차린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정형 어귀에 진을 친다. 이런 군세를 이끌고 조나라를 치기는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한신은 이 위기를 기회로 삼는 전술을 사용한다. 바 배수의 진이었던 것이다.

 

韓信使人閒視(한신사인한시),知其不用(지기부용),還報(환보),則大喜(칙대희),乃敢引兵遂下(내감인병수하)。未至井陘口三十里(미지정형구삼십리),止舍(지사)。夜半傳發(야반전발),選輕騎二千人(선경기이천인),人持一赤幟(인지일적치),從閒道萆山而望趙軍(종한도비산이망조군),誡曰(계왈):「趙見我走(조견아주),必空壁逐我(필공벽축아),若疾入趙壁(약질입조벽),拔趙幟(발조치),立漢赤幟(립한적치)。」令其裨將傳飱(령기비장전손),曰(왈):「今日破趙會食(금일파조회식)!」諸將皆莫信(제장개막신),詳應曰(상응왈):「諾(낙)。」謂軍吏曰(위군리왈):「趙已先據便地為壁(조이선거편지위벽),且彼未見吾大將旗鼓(차피미견오대장기고),未肯擊前行(미긍격전행),恐吾至阻險而還(공오지조험이환)。」信乃使萬人先行(신내사만인선행),出(출),背水陳(배수진)。趙軍望見而大笑(조군망견이대소)。平旦(평단),信建大將之旗鼓(신건대장지기고),鼓行出井陘口(고행출정형구),趙開壁擊之(조개벽격지),大戰良久(대전량구)。於是信(어시신)、張耳詳棄鼓旗(장이상기고기),走水上軍(주수상군)。水上軍開入之(수상군개입지),復疾戰(복질전)。趙果空壁爭漢鼓旗(조과공벽쟁한고기),逐韓信(축한신)、張耳(장이)。韓信(한신)、張耳已入水上軍(장이이입수상군),軍皆殊死戰(군개수사전),不可敗(부가패)。信所出奇兵二千騎(신소출기병이천기),共候趙空壁逐利(공후조공벽축리),則馳入趙壁(칙치입조벽),皆拔趙旗(개발조기),立漢赤幟二千(립한적치이천)。趙軍已不勝(조군이부승),不能得信等(부능득신등),欲還歸壁(욕환귀벽),壁皆漢赤幟(벽개한적치),而大驚(이대경),以為漢皆已得趙王將矣(이위한개이득조왕장의),兵遂亂(병수란),遁走(둔주),趙將雖斬之(조장수참지),不能禁也(부능금야)。於是漢兵夾擊(어시한병협격),大破虜趙軍(대파로조군),斬成安君泜水上(참성안군지수상),禽趙王歇(금조왕헐)。

 

정형 어귀로 나가서 배수진(背水陣)을 치게 했다. 조의 군대가 이를 바라보고 크게 비웃었다. 새벽에 한신이 대장 깃발과 북을 세우고 북을 치면서 정형 어귀로 나가니, 조나라가 성벽을 열고 공격하였으며한동안 격렬히 싸웠다. 이때 한신과 장이가 거짓으로 북과 깃발을 버리고 강가의 진지로 달아났다. 강가의 진지에서 문을 열어 그들을 맞아들이고 다시 격렬하게 싸웠다.

 

조나라는 과연 성벽을 비워놓고한나라의 북과 깃발을 다투어 차지하고한신과 장이를 뒤쫓았다한신과 장이가 이미 강가의 진지로 들어온 뒤에는 모두 필사적으로 싸웠으므로 패배시킬 수 없었다. 한신이 앞서 보냈던 기습병 2천 명은 조나라가 성벽을 비우고 전리품을 쫓는 틈을 엿보아곧 조의 성벽 안으로 달려 들어가 조나라의 깃발을 다 뽑아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 2천 개를 세웠다. 조나라 군사들이 이기지도 못하고 한신 등을 사로잡지 못하고 성벽으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성벽에 모두 한나라의 붉은 깃발이 세워져 있자 매우 놀라 한나라가 이미 조왕의 장군들을 모두 사로잡았다고 생각하여 혼란에 빠져 도망쳐 달아났다. 조의 장군들이 달아나는 군사를 베어 죽이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이에 한나라의 군대가 협공하여 조나라의 군대를 대파하고 병사를 사로잡았고, 지수(泜水가에서 성안군 진여의 목을 베고조왕 헐을 사로잡았다.

 

 

군대를 이끌고 정형땅 어귀에 진을 친 한신을 두고 조나라 군대는 병법을 모르는 장수라 비웃으며 한신을 쉬운 상대라 생각한다. 그를 역이용한 전술을 사용하는데 그 첫째가 기수병 2000명을 적의 성이 빈틈을 타 점령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가 적을 유인하여 정형 어귀의 본진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치르자는 것이었다. 이 배수의 진에 있는 한신의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을 하니 한신을 사로잡을 수도 승기를 잡을 수도 없었던 조나라 군대는 퇴각을 하나 한신의 명령을 받은 기병 2000명이 비워진 성루에 올라 조나라 깃발을 뽑고 한나라 기를 꽂은 것이다. 이에 전의 상실한 조나라군대는 대패하고 만다. 한신은 또한 책사인 광무군을 사로잡아 극진히 예우하며 스승으로 모시고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이는 유방에게 장량처럼 한신이라는 호랑이가 날개를 얻은 것과 같았다. 광무군은 연나라를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말하고 한신은 이를 따라서 실행하니 연나라는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한나라로 들어왔다. 그 유명한 일화가 한 편의 소설처럼 사기에 들어 있다.

 

 

信乃令軍中毋殺廣武君(신내령군중무살광무군),有能生得者購千金(유능생득자구천김)。於是有縛廣武君而致戲下者(어시유박광무군이치희하자),信乃解其縛(신내해기박),東鄉坐(동향좌),西鄉對(서향대),師事之(사사지)。諸將效首虜(제장효수로),(休(휴))畢賀(필하),因問信曰(인문신왈):「兵法右倍山陵(병법우배산릉),前左水澤(전좌수택),今者將軍令臣等反背水陳(금자장군령신등반배수진),曰破趙會食(왈파조회식),臣等不服(신등부복)。然竟以勝(연경이승),此何術也(차하술야)?」信曰(신왈):「此在兵法(차재병법),顧諸君不察耳(고제군부찰이)。兵法不曰(병법부왈)『陷之死地而後生(함지사지이후생),置之亡地而後存(치지망지이후존)』?且信非得素拊循士大夫也(차신비득소부순사대부야),此所謂(차소위)『驅市人而戰之(구시인이전지)』,其勢非置之死地(기세비치지사지),使人人自戰(사인인자위전);今予之生地(금여지생지),皆走(개주),寧可得而用之乎(녕상가득이용지호)!」諸將皆服曰(제장개복왈):「善(선)。非臣所及也(비신소급야)。」

 

한신이 이에 군중에 명령을 내려 광무군(廣武君)을 죽이지 말고 사로잡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광무군을 결박해 휘하로 끌고 오는 자가 있었으며, 한신이 그의 결박을 풀어주고 동쪽을 향해 앉게 한 뒤에, 자신은 서쪽을 향해 마주 대하며 스승으로 모셨다. 여러 장수들이 수급(首級)과 포로를 바치며 축하한 뒤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서는 오른쪽과 뒤에는 산과 언덕을 두고, 앞과 왼쪽에는 물과 못을 두라 하였는데, 이번에 장군께서는 저희들에게 오히려 물을 등지는 배수진을 치라고 명령하시고, 조를 격파하고 회식하자고 하셨으니, 저희들은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이겼으니 이것은 어떤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이는 병법에 있는 것인데 단지 그대들이 살피지 못하였을 뿐이오. 병법에서죽을 곳에 빠진 뒤에야 살고, 망할 땅에 놓인 뒤에야 보존된다.’라고 말하지 않았소? 또한 내가 평소 어루만져 복종하게 한 일반 장수와 병사들을 얻은 것이 아니니, 이른바 ‘시장 바닥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이오. 그 형세가 그들을 사지에 두어 각자 자신을 위해 싸우도록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만일 그들을 생지에 두었다면 모두 달아날 것인데, 어찌 그들을 쓸 수 있었겠소!”

여러 장수들이 모두 탄복하며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저희들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천하 삼분지계

 

유방의 용병술의 실패를 보여주는 일화가 회음후 열전에 또 나온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지만 사마천이 회음후 열전을 통해 한 고조 유방의 무능을 다시 한번 보여 주는 것이다. 초패왕 항우의 군대에 패하여 성도 잃고 군대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한신과 장이가 승전을 하고 군세를 불려놓은 진지에 몰래 들어와 그들의 군권을 빼앗고 정예병력마저 탈취해 가는 내용이 들어있다.

 

한신은 훈련되지 않은 조나라 병사를 모아 연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고 그 여세를 몰아 제나라로 향한다. 이때 제나라에는 유방이 파견한 역이기가 제왕 전광을 설득해 연합을 이끌어내나 괴통의 전략으로 제나라 역할에 주둔하던 제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임치로 들어선다. 한신은 달아난 제 전광과 초나라 용저는 연합군을 격파하고 제나라를 평정한다.

 

이때 유방으로부터 미움이 시작되는 실수를 한다. 유방은 초 항우의 본진과 전쟁에서 변변한 승리를 올리지 못하고 패하고 만 있는 상황에서 한신은 제나라의 왕으로 만들어 줄 것을 주청한다. 이에 유방은 격노를 하나 장량과 진평이 만류하며 한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을 간한다. 이것이 바로 유방의 신임이 견제로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용저가 죽자 초패왕 항우는 한신이 두려워 우이 출신 무섭으로 하여금 한신을 천하삼분지계로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과의 의리를 중시하며 사양한다.

 

楚數使奇兵渡河擊趙(초수사기병도하격조),趙王耳(조왕이)、韓信往來救趙(한신왕래구조),因行定趙城邑(인행정조성읍),發兵詣漢(발병예한)。楚方急圍漢王於滎陽(초방급위한왕어형양),漢王南出(한왕남출),之宛(지완)、葉閒(엽한),得黥布(득경포),走入成皋(주입성고),楚又復急圍之(초우복급위지)。六月(륙월),漢王出成皋(한왕출성고),東渡河(동도하),獨與滕公俱(독여등공구),從張耳軍修武(종장이군수무)。至(지),宿傳舍(숙전사)。晨自稱漢使(신자칭한사),馳入趙壁(치입조벽)。張耳(장이)、韓信未起(한신미기),即其臥內上奪其印符(즉기와내상탈기인부),以麾召諸將(이휘소제장),易置之(역치지)。信(신)、耳起(이기),乃知漢王來(내지한왕래),大驚(대경)。漢王奪兩人軍(한왕탈량인군),即令張耳備守趙地(즉령장이비수조지)。拜韓信相國(배한신위상국),收趙兵未發者擊齊(수조병미발자격제)。

 

초나라가 자주 기습 병사를 출동시켜 황하를 건너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왕 장이와 한신이 오가면서 조를 구원했으며, 그 기회에 가는 곳마다 조의 성읍을 안정시켰으며, 병사를 징발해 한나라로 보냈다. 초나라가 급습해 한 왕(漢王)을 형양에서 포위하여, 한왕이 남쪽으로 달아나다가 완()과 섭() 사이에 이르러서 경포(黥布)를 만나 성고(成皐)로 함께 들어갔다. 초나라가 또다시 성고를 급습해 포위했다.

 

한왕 3년 6월에 한왕이 성고에서 도망쳐 나와 동쪽으로 황하를 건너 등공(滕公) 하후영 만을 데리고 수무(修武)에 있는 장이의 주둔지를 찾아갔다. 수무에 이르자 객관(客館)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자신을 한나라 사자라고 칭하면서 말을 달려 조나라의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장이와 한신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들의 침실로 들어가 그들의 인수와 부절을 빼앗고 휘하의 여러 장군들을 소집해 직책을 바꾸어놓았다. 한신과 장이가 일어난 후 한왕이 와 있는 것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한왕이 두 사람의 군대를 빼앗아 장이로 하여금 조 땅을 지키게 하고, 한신을 상국(相國)에 임명하고 조 병사 가운데 아직도 징발되지 않은 자를 거두어 제를 공격했다.

 

 

楚已亡龍且(초이망룡차),項王恐(항왕공),使盱眙人武涉往說齊王信曰(사우이인무섭왕설제왕신왈):「天下共苦秦久矣(천하공고진구의),相與力擊秦(상여력격진)。秦已破(진이파),計功割地(계공할지),分土而王之(분토이왕지),以休士卒(이휴사졸)。今漢王復興兵而東(금한왕복흥병이동),侵人之分(침인지분),奪人之地(탈인지지),已破三秦(이파삼진),引兵出關(인병출관),收諸侯之兵以東擊楚(수제후지병이동격초),其意非盡吞天下者不休(기의비진탄천하자부휴),其不知厭足如是甚也(기부지염족여시심야)。且漢王不可必(차한왕부가필),身居項王掌握中數矣(신거항왕장악중수의),項王憐而活之(항왕련이활지),然得脫(연득탈),輒倍約(첩배약),復擊項王(복격항왕),其不可親信如此(기부가친신여차)。今足下雖自以與漢王為厚交(금족하수자이여한왕위후교),為之盡力用兵(위지진력용병),終為之所禽矣(종위지소금의)。足下所以得須臾至今者(족하소이득수유지금자),以項王尚存也(이항왕상존야)。當今二王之事(당금이왕지사),權在足下(권재족하)。足下右投則漢王勝(족하우투칙한왕승),左投則項王勝(좌투칙항왕승)。項王今日亡(항왕금일망),則次取足下(칙차취족하)。足下與項王有故(족하여항왕유고),何不反漢與楚連和(하부반한여초련화),參分天下王之(참분천하왕지)?今釋此時(금석차시),而自必於漢以擊楚(이자필어한이격초),且為智者固若此乎(차위지자고약차호)!」韓信謝曰(한신사왈):「臣事項王(신사항왕),官不過郎中(관부과랑중),位不過執戟(위부과집극),言不聽(언부청),畫不用(화부용),故倍楚而歸漢(고배초이귀한)。漢王授我上將軍印(한왕수아상장군인),予我數萬眾(여아수만중),解衣衣我(해의의아),推食食我(추식식아),言聽計用(언청계용),故吾得以至於此(고오득이지어차)。夫人深親信我(부인심친신아),我倍之不祥(아배지부상),雖死不易(수사부역)。幸為信謝項王(행위신사항왕)!」

 

초나라는 용저(龍且) 죽자 항왕(項王:항우)은 두려워하여 우이(출신 무섭(武涉)을 제왕(齊王한신에게 보내어 설득하게 하니 무섭이 한신에게 말했다. “온 천하가 함께 진(秦) 나라에 괴로움을 당한 지가 오래되어 서로 힘을 합해 진을 공격했습니다. 진이 격파된 후 공을 헤아려 땅을 나누고 나눈 땅에 왕을 봉해 병사들을 쉬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왕(漢王)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진격해 남의 땅을 침범하여 그 땅을 빼앗았으며, 이미 삼진(三秦)을 깨뜨리고 군대를 이끌고 함곡관을 빠져나와 제후의 군대를 거두면서 동쪽으로 초나라를 공격하고 있으며, 그의 뜻은 천하를 삼키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이니그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이렇게 심합니다.

 

또한 한왕은 믿을 수가 없는 자로 몸이 항왕의 손에 여러 번 쥐어졌지만, 그를 가엾게 여겨 살려주었으나  위기를 벗어나면 번번이 약속을 파기하고다시 항왕을 공격했으니그를 가깝게 여기고 믿을 수 없음이 이와 같습니다. 지금 족하께서는 비록 스스로 한왕과 두터운 교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를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군대를 지휘하지만 끝내는 그의 포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족하께서 지금까지 잠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항왕이 아직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왕과 항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저울추는 족하에게 있습니다. 족하께서 추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한왕이 이기고왼쪽으로 기울이면 항왕이 이길 것입니다. 항왕이 오늘 망하면 다음에는 족하를 없앨 것입니다. 족하는 항왕과 옛 교분이 있으신데 왜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연합하여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왕께서 되려 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 기회를 버리고 스스로 한나라를 믿고 초나라를 치고자 하니 이것이 어찌 지혜로운 자가 할 일이겠습니까!

 

 

後數日(후수일),蒯通復說曰(괴통복설왈):「夫聽者事之候也(부청자사지후야),計者事之機也(계자사지기야),聽過計失而能久安者(청과계실이능구안자),鮮矣(선의)。聽不失一二者(청부실일이자),不可亂以言(부가란이언);計不失本末者(계부실본말자),不可紛以辭(부가분이사)。夫隨廝養之役者(부수시양지역자),失萬乘之權(실만승지권);守儋石之祿者(수담석지록자),闕卿相之位(궐경상지위)。故知者決之斷也(고지자결지단야),疑者事之害也(의자사지해야),審豪氂之小計(심호리지소계),遺天下之大數(유천하지대수),智誠知之(지성지지),決弗敢行者(결불감행자),百事之禍也(백사지화야)。故曰(고왈)『猛虎之猶豫(맹호지유예),不若蜂蠆之致螫(부약봉채지치석);騏驥之跼躅(기기지국촉),不如駑馬之安步(부여노마지안보);孟賁之狐疑(맹분지호의),不如庸夫之必至也(부여용부지필지야);雖有舜禹之智(수유순우지지),吟而不言(음이부언),不如瘖聾之指麾也(부여음롱지지휘야)』。此言貴能行之(차언귀능행지)。夫功者難成而易敗(부공자난성이역패),時者難得而易失也(시자난득이역실야)。時乎時(시호시),不再來(부재래)。願足下詳察之(원족하상찰지)。」韓信猶豫不忍倍漢(한신유예부인배한),又自以為功多(우자이위공다),漢終不奪我齊(한종부탈아제),遂謝蒯通(수사괴통)。蒯通說不聽(괴통설부청),已詳狂為巫(이상광위무)

 

무섭(武涉)이 떠난 후 제나라 사람 괴통(蒯通)이 천하의 권력이 한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기이한 계책으로 감동시키고 싶어 관상에 대하여 한신을 설득하려고 말했다. “제가 일찍이 관상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한신이 말했다. “선생이 관상술은 어떤 것입니까?” 괴통이 대답하였다. “부귀함과 빈천함은 골상에 달려 있고걱정과 기쁨은 얼굴모양과 빛깔에 달려 있으며, 성공과 실패는 결단에 달려 있으니이것을 참고하면 만의 하나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한신이 말했다. “좋소선생은 과인의 관상을 어떻게 보시오?” 괴통이 대답하였다. “잠시 사람들을 물리쳐주십시오.” 한신이 말했다. “다들 물러가라.” 괴통이 말했다.

 

“장군의 얼굴을 보면 제후의 상에 불과하며게다가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장군의 등을 보면 귀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한신이 말하였다. “무슨 말이오?” 괴통이 말하였다. “천하가 처음 봉기하였을 때는 영웅호걸들이 왕이라고 칭하고 한번 소리치자, 천하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물고기 비늘처럼 북적거리고 불길과 바람처럼 일어났습니다. 당시에는 걱정은 오직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게 되자천하의 죄 없는 사람들의 간과 쓸개가 땅바닥에 널려 있게 하고, 아비와 자식의 해골이 들판에 널려있는 경우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초나라 사람 항우가 팽성에서 일어나 여기저기서 전투를 하며 달아나는 적을 쫓아다니다 형양(滎陽)에 이르러그 승세를 타고 각지를 석권하자 그 위세가 천하를 진동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군사는 경()과 삭(사이에서 곤경에 빠지고 서산(西山)에 가로막혀 전진할 수 없게 된 지가 벌써 3년이나 되었습니다. 한왕(漢王)은 수십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공()과 낙(사이에서 험준한 산세와 황하를 끼고 하루에 몇 차례 싸웠지만 조그만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패배해도 구원해 주는 사람이 없어 형양에서 패하고성고에서 군사를 잃은 채 마침내 완()과 섭(사이로 달아났으니이것이 이른바 지혜로운 자와 용맹스러운 자가 모두 곤경을 당한 경우입니다. 무릇 날카로운 기세는 험준한 요새에서 꺾이고양식은 창고에서 바닥나고, 백성들은 매우 피폐해져서 원망하니 민심은 동요되어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형세는 천하의 성현이 아니면 그 천하의 재앙을 그치게 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왕과 항왕의 운명은 족하에게 달려 있습니다. 족하께서 한나라를 위하면 한나라가 이길 것이요초나라와 함께하면 초나라가 이길 것입니다. 신은 속마음을 터놓고 간과 쓸개를 드러낸 채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족하께서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진실로 족하께서 저의 계책을 써 주신다면한과 초를 이롭게 하고 두 임금을 존속시켜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솥의 다리처럼 버티게 하면 그 형세는 누구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 후 족하처럼 현명한 분이 수많은 무장 병사를 거느리고 강대한 제나라를 점거하여 연과 조를 따르게 하고주인이 없는 땅으로 나아가 한과 초의 후방을 제압하고, 백성들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진격해서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면, 천하가 바람처럼 달려오고 메아리처럼 호응할 것이니누가 감히 족하의 명을 듣지 않겠습니까!

 

큰 나라를 나누고 강한 나라를 약화시켜 되어 제후를 세우시고제후를 세운 후에는 천하가 복종하며 그 은덕을 제나라에 돌릴 것입니다. 제나라의 옛 땅인 것을 감안해 교()와 사()의 땅을 보유하고 덕으로써 제후들을 회유하시고두 손 모아 읍하면서 겸양하면 천하의 군주들이 서로 좇아와 제나라에 입조 할 것입니다. 듣건대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허물을 받고때가 왔을 때에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라고 합니다. 족하께서는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주는 것을 취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허물을 받고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행하지 아니하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다

 

 한신의 죽음 토사구팽

 

한신의 죽음

 

BC 196년 장안에서 한신은 죽음을 당한다. 한 三傑(삼걸)중 전투의 신으로 유방이 연전연패할 때 할 때 한신은 연전연승하였다. 西河(서하)를 건너 위(魏) 나라를 점령하여였고, 하열(夏說)을 생포하고 정형전투에서 승리하여 초한쟁패에서 우위를 점하였다. 성안군을 주살하여 조나라를 빼앗고, 연나라를 핍박하여 항복을 받아내고, 제나라를 평정하였다. 북상한 초나라 20만 대군을 꺾고 항우의 대장군 용저를 죽음으로 몰았다. 이렇듯 항우가 전국을 통일하는데 공적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신의 크나큰 실수는 세 가지이다.그 첫째가 치열한 전쟁 중 제나라 왕의 자리를 탐내 유방의 미움을 산 것이다. 두 번째는 무섭과 괴통이 제안한 천하삼분지계를 사양한 것이다. 이는 나중에 유방의 귀에 들어가며 유방의 미움은 그 도를 넘어 한신의 제거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항우로부터 도망친 장수 종리매를 숨겨주고 유방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한신은 회음후로 강등당한다. 한고조 10년 많은 무장(武將)들이 제거를 당하던 중 자신의 신변에 위험을 느낀다. 거록 태수 진희와 반란하고 그에게 호응하려 한 모반이 들켜 결국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한신을 천거한 소하의 계략에 의해  한신과 그의 삼족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